(2004. 10. 2) 설악산 정기산행
설악산 다녀오다....
조 황 래
지난 9월 오대산 산행하고 내려오면서 다음 달에는 설악산으로 하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설악산.
우리 같은 초보에게는 꿈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산. 중, 고교 학교 교가나 응원가에 가장 많이 애용되고 있는 우리의 명산 설악산...
9월 넷째 주. 청마 산악회 홈페이지에 신청자 모집 안내문이 실렸다. 무박 2일이라....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겨우 서너 시간만 산을 타면 무릎관절이 아파오는 부실한 몸으로 과연 12시간 이상 소요된다는 설악산을 정복할 수 있을는지.... ‘그래, 설악산에서 죽자..’ 이런 심정으로 신청을 하였다. 마누라도 기꺼이 동참하겠단다.
10월 2일. 토요일이라 조금 일찍 퇴근하여 산행준비를 하였다. 날씨마저 갑자기 추워져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혼돈스러웠지만, 도시락 싸고, 슈퍼 가서 간식 몇 가지 사고, 버스 안이 추울지도 모르니 사용하지 않던 담요도 한 장 챙겨 넣고... 뭐 빠진 게 없나 싶어 다시 컴퓨터를 켜서 준비물을 살펴보았다. 20시라.. 20시.. 아니, 그러면 저녁 8시네.. 이런, 큰일 날 뻔 했구먼. 집이 마산역에서 5분 거리라, 저녁 식사하고 밤 9시 45분 쯤 집을 나설 생각이었다. 밤 10시에 모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으니까.... 서둘러 저녁 식사를 하고 마산역으로 갔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볼 때마다 반갑다.
8시 조금 지나 우리의 애마 신흥여객 관광버스가 도착하였고 8시 10분에 설악산을 향해 출발했다. 도란도란 얘기 소리에 깊은 잠은 자지 못하고 새벽 2시에 한계령을 지나고, 2시 10분에 오색 매표소에 도착했다. 통상 새벽 3시가 되어야 입장을 시켰지만, 일요일이라 워낙 많은 산꾼들이 들이닥쳐서 그런지 2시 30분부터 산행을 할 수가 있었다. 손에 손에 후렛시를 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청봉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의 행렬은 정말 장관이었다. 새벽 3시도 안됐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다니... 도로는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버스로 몹시 붐볐다. 이런 경험이 처음인 내 눈에는 모든 것이 놀라왔다. 세상에... 이런 세계도 있었네....
오색에서 대청봉 정상까지는 5Km. 계속 급경사의 오르막이었다. 초행이라 또 밤이라 안보이니까 그냥 올랐지만, 한 번 더 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악산이었다. 6시 20분경 해오름을 감상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나는 정상 300m 정도 앞두고 뜨는 해를 맞이해야만 했다. 10분만 더 쉬지 않고 빨리 올랐으면 그 유명한 대청봉 해맞이를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구름 바로 위에서 웅장하게 빛을 발하는 태양을 우러러 볼 수 있는 것으로도 만족스럽다. 주변 경관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 찍었다. 대청봉에서 내려다보이는 대청호(?)는 너무 아름다웠다. 구름이 산에 갇혀서 마치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을 이루는 모습이란.....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청마 동료들을 만나서 같이 식사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 바로 밑에 보이는 중청대피소에서 찬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였다. 희운각 대피소까지 내려가는 길은 엄청 혼잡스러웠다. 병목현상이 나타나는 곳이 몇 군데 있었고, 나이 드신 할머니, 발목을 다친 아주머니들 때문에 500m 정도 내려오는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처음부터 공룡능선은 생각도 못하고 천불동 계곡으로 마음을 먹었는데, 이제는 그마져도 제시간에 도착할 지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희운각 대피소에서 총무가 이끄는 후미팀과 조우하여 점심 식사를 하고 계속 하산하였다. 지난 오대산 산행 때도 계곡의 멋에 흠뻑 취해 내려오는 길이 즐거웠는데, 설악산도 마찬가지다. 비선대까지 내려가는 계곡은 한 모퉁이 돌아서면 웅장한 기암괴석이 우뚝 서있고, 여러 형태의 바위가 우리를 맞아준다. 바위가 갈라진 틈새로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습이란.... 모든 것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나는 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사우디 나가서 2년을 지내고 왔다. 중동지방은 산에 나무가 없다. 진갈색의 바위만 멋없이 솟아 있고, 살아 있는 생명이란 지네와 팔뚝만한 도마뱀과 가시가 달린 회색 나무들... 이런 곳은 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철마다 색을 달리하는 아름다운 산이 있어 얼마나 복 받은 나라인지 모른다. 후손에게서 빌려온 이 강산을 고이 간직하여 다시 후손에게 물려줄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비선대에서 찬물에 발을 담구고 잠시 쉬었다가 설악동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장장 16Km의 설악산 산행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A코스 공룡능선을 탄 팀과 합류하여 5시가 조금 지나 마산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오늘 뒤풀이는 버스 안에서 이루어졌다. 진로 포도주와 안주를 좌석마다 분배하고 즐겁게 한잔 나누었다. 모두 피곤하여 코를 고는 회원들이 많았고, 관록(?)이 많은 분들이 잠시 분위기를 띄워보려 했지만,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조용해졌다. 마산역에는 11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였고, 무사히 이번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보통 하는 말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운명대로, 타고난 복대로 산다고들 한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하며 또, 자기 운명은 자기가 조금씩은 바꿔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터넷 품을 팔아 청마방을 찾게 되었고, 같이 산행을 하면서 오늘과 같은 이런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하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 청마방 동료들과 함께 이런 기쁨을 나누게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