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20) 12시간대를 격파한 지리산 당일종주
12시간대를 격파한 지리산 당일종주
조 황 래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생각해 보아도 정말 꿈만 같다.
청마산악회에 가입하지 않은 3년여 전만 하여도 도저히 불가능한 일로만 여겼던, 아니 그런 행사가 있는 줄도 몰랐던 지리산 당일종주를 큰맘 먹고 실천에 옮겨 완수한 것만 해도 나에게는 대단한 사건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욕심이 생기더니, 작년에는 마누라도 동행하여 완주해 낸 것은 우리 부부에게는 큰 은총이었다. 그리고 산행 할 때마다 기록을 단축하기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평소에 그런 열정이 쌓이고 누적이 되어야 이런 결과를 얻을 수 있음을 잘 알기에....
올해도 지리산 당일종주는 연초에 작성하는 연간 산행 계획에 들어있었다.
창단 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청마산악회가 이제는 떳떳하게 우리 자체 행사로 지리산 종주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크게 작용하였다. 지리산 종주는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아니기에 회원님들의 호응이 얼마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많았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가족행사가 많은 달이다. 5월초 울릉도 1박2일 산행도 적지 않은 무리를 하여 성사시켰는데, 지리산 종주를 하기 위하여 일요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산행 준비를 해야 하는 회원님들 입장을 고려하면 정말 쉽지 않은 행사였다.
5월 7일 산행대장이 ‘지리산 당일종주’를 정기산행 코너에 올렸다.
일번으로 참가신청을 한 사람은 감사이신 산꾼님. 작년에 11시간대를 돌파했지만, 올해는 10시간대로 기록을 세우고 싶다는 굳은 결의(?)도 보였다. 이어서 2번과 3번으로 내가 마누라와 같이 신청을 했다. 나는 12시간 벽을 허무는 것이 목표라고 적었다. 작년에 12시간 40분을 기록했으니 올해는 40분 정도 기록을 단축할 수 있으리라.... 참가 신청자가 꾸준하게 늘기는 하였지만, 한 차를 채우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할 수 없이 정보지 ‘교차로’신세를 지기로 했다. 교차로를 통해서 몇 명 충원이 되었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회원님들, 너무 망설이는 것 같다.
‘행여나 중간에서 퍼지면 어떡하나?’
‘나 때문에 여러 사람 고생시킬 수는 없지’ 등등
출발시간도 일부러 늦추어 새벽 4시에 창원 시청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하고, A코스뿐만 아니라 B코스, C코스까지 만들어 회원님들의 참석을 유도하였지만, 모두 합쳐서 26명만 참석하는 것으로 종료되었다. 나도 회사 직원을 동참시켰다가 일이 생겨서 못 가게 되고, 마누라는 목감기에 시달리다가 회복을 못하는 바람에 불참할 수밖에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참내~~~ 이번 산행은 41명 정원인 버스에 26명만 타고 가는, 가장 적은 인원이 참석하는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새벽 4시에 창원 시청을 출발한 버스는 4시 25분에 마산역에 도착했다. 인원이 적으니까 출석 점검하기는 수월하네... 중리역에서는 겨우 두 명만 태웠나? 마지막으로 함안에서 여총무 영미씨를 태우고 지리산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날이 훤하게 밝아온다. 산행 출발할 때는 랜턴은 필요 없겠다. 하산시간이 늦어지면 필요하니까 배낭에 챙겨오기는 했지만...
모두 잠을 설치는 바람에 버스 안은 고요하다. 너무 조용히 자고 있으니까, 우리 총무님들 회비도 수금을 못하고 후불로 미뤘다.
6시 조금 지나서 중산리에 도착했다. 매표소까지는 대형 버스가 올라가지 못하게 되어있지만, 걷는 거리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그냥 올라갔다. 매표소 직원의 인상이 굳어진다.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새벽이면 좀 나은데, 연속으로 승용차들이 올라오는데 대형 버스가 길을 막으니 짜증 날만도 하지... 차를 돌려 내리막길에 세워놓고 속히 하차를 했다. 매표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정각 6시 20분 지리산 정상 천왕봉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자!!! 아자!!! 아자자자자!!!!
나도 컨디션이 매우 좋다. 새벽에 밥을 한 술 뜨고 나왔더니 배도 든든하고 발걸음이 가볍다. 법계사까지 3.2km를 1시간 10분에 돌파했다. 그리고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 2.2km를 1시간 만에 도달한 것이다. 작년에는 2시간 20분 걸렸는데, 여기서 10분을 당겼으니까 출발은 성공적이다. 천왕봉 정상에는 회장님이 벌써 와계셨다. 1시간 50분 만에 올라오셨다고 한다. 총무 박규성씨도 같이 왔다가 먼저 내려갔다고 한다. 박총무도 산을 잘 타는 줄은 알지만 회장님의 속도에 맞추었다면 over pace인데... 저러다가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는지... (오늘 최고 기록을 작성한 산꾼님의 걱정)
여기까지 박자를 맞춰서 같이 왔던 산꾼님은 먼저 내려간다. 내려가는 폼을 보니 내가 보조를 맞추려다가는 나도 문제가 생기겠다. 내 체질에 맞게 속도 조절을 해야지... 회장님은 회원들 상태를 점검하기 위하여 정상에 남고 나는 산꾼님의 뒤를 쫓아 장터목을 향해 내려갔다.
재석봉은 그냥 그 모습이다. 1년, 2년이라는 세월이 이곳 재석봉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까.... 얼마나 원한이 사무쳤기에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저렇게 고사목으로 남아있을까? 장터목 산장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칠 때까지 우리 회원님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 갈 길을 열심히 가는 수밖에 없다.
산행을 하다보면 여러 모습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힘든 산행을 왜하느냐고 짜증내는 내모습도 보이고, 이렇게 상쾌한 자연 속에 몸을 맡기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데 이 정도의 투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도 있다.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으로 귀착된다. 세계적인 운동선수들만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 내재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리라...
오늘 날씨는 너무 좋다. 지리산 종주에 이보다 더 좋은 날씨를 기대할 수는 없을 정도로...
왼쪽 산허리를 타고 운무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오른쪽에는 새파란 하늘이 높이 떠 있다. 적당한 햇살과 구름이 교대로 우리를 지켜주면서 무사히 종주에 성공하라고 응원을 해주고 있고.... 녹색으로 단장한 나무와 싱싱한 풀과 바람소리가 어우러져서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자동차 운전연수를 받아도 처음 운전할 때는 백미러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핸들만 불끈 쥐고 앞만 보고 운전을 하다가 어느 정도 운전에 숙달되어야 사이드 거울도 보게 되고 뒤에 오는 차도 보이게 되는 법. 내가 이제 초보운전을 막 벗어난 운전기사 같다. 세 번째 지리산 종주를 해보니까 구름도 보이고, 바람소리도 들리고, 나무도 풀도 눈에 보이는구나....
장터목에서 세석산장까지는 3.4km. 세석산장은 보기에 참 아담하다. 언젠가는 지리산을 2박3일 정도 여유를 가지고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 그 때는 세석산장에서 하룻밤 묵어야지...
이번에는 혼자서 걷다보니까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사실 쉴 필요를 못 느끼겠다. 기록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해서 그런가? 그런 욕심이 너무 많아도 바람직하지는 못한데. 배낭에 넣어온 울릉도 호박엿을 까먹으면서, mp3를 통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또 따라 부르기도 하면서 지리산 종주는 이어진다.
세석산장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 6.3km가 제법 멀게 느껴졌다. 문득 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이 든다. 산이 물 좋고 공기 좋아도 우리 같은 세속인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한다. 자주 산을 찾는 것은 좋지만, 산 속에서 외롭게는 못 살 것 같다.
선비샘에서 맑은 물이 대나무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물맛이 이렇게나 좋을까? 물통에 가득 담았다.
벽소령대피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40분. 산행을 시작한지 6시간 20분이 지났구나. 거리상으로 계산해보니 15.8km. 오늘 산행의 절반은 완수한 것 같다.
연화천까지 3.6km. 절반이 지났으니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다. 남은 거리를 시간으로 나눠보니 역시 시간당 3km를 달려야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겠다. 차츰 몸에서 기가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무릎도 살살 아파오고... 웬만한 거리의 일반 산행에는 적응이 되어서 무릎 아픈 줄 모르고 산행을 할 수 있지만, 지리산 종주 같은 장거리는 무릎도 고생이 되나보다. 그러나 아픔을 느낄 시간이 없다. 근육을 약간 조절하면 통증이 약해진다. 걷다 보면 아픈 것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
1시간 10분 정도 걸려서 연화천에 도착했다. 작년에도 여기서 점심식사를 했었지. 도시락 김밥이 한 통 남아있었지만, 복숭아 통조림을 꺼내어 먹었다. 혼자서 썰렁한 김밥보다는 먹기 쉬운 통조림이 간단해서 좋다. 그런데 회장님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말씀을 들어보니 산행대장을 포함한 6명은 세석에서 하산하여 버스를 타러 내려갔고, 박영덕님을 비롯한 7명이 팀을 이루어 오고 있다고 한다. 잠시 회장님과 보조를 맞추었지만, 회장님 속도를 맞출 수는 없다. 얼마 못가서 간격이 벌어지고 말았다.
연화천에서 노고단까지 남은 거리는 10.5km.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토끼봉까지 가는데 마의 550계단이 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이 계단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아직까지 힘이 남아 있음을 자랑했던 계단. 이번에도 오르면서 계단 숫자를 세어보았다. 그런데 계단에 숫자를 써 놓았는데, 이상하게도 숫자를 잘못 적어놓은 것이 눈에 띈다. 왜 잘못 적어놓았을까? 분명히 550계단인데, 중간에 하나씩 둘씩 틀리더니 마지막에는 50개나 차이가 난다. 아하!! 알았다. 분석을 해보니 일반계단에는 한 계단에 나무판자를 두개씩 얹어놓았다. 그러나 계단참이 긴 계단에는 나무판을 여러 개 놓을 수밖에 없는데, 나무판 2개를 계단 하나로 환산하여 번호를 매겨놓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공사를 하고 나서 검사를 받을 때 계단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서 공사업자가 번호를 써 놓았다고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토끼봉을 지나고 화개재를 지나 삼도봉에서 잠시 쉬었다. 작년에 마누라는 여기에 앉아 쉬고 나서 일어서려니까 무릎이 펴지지 않아서 고생을 했던 곳. 벌써 1년 전이라... 감회가 새롭다. 다시 힘을 내어 막바지 피치를 올렸다. 노루목 다음에 임걸령을 지나니 저 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이정표에는 3.2km라고 표시되어있지만 훨씬 더 멀게 보인다. 그러나 걸어보니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차츰 노고단이 가까워지면서 온 몸으로 피로감이 느껴진다.
노고단에 도착한 시간은 5시 17분. 노고단 제단 구경할 여유가 없다. 기록에 남길 사진만 몇 장 찍고는 아픈 무릎을 끌고 성삼재로 내려왔다. 계단을 내려오려니 너무 무릎이 아파서 차가 다니는 도로로 내려오는 바람에 2,3분은 손해 본 것 같다. 성삼재 주차장이 있는 휴게소에 도착한 시각은 정확히 5시 55분. 장장 33.6km의 지리산 종주를 끝내는 순간이었다. 총소요시간은 11시간 35분. 12시간 벽만 무너뜨리면 성공이라 생각했는데, 11시간 35분은 대단한 기록이다. 다음에도 이런 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지는 나 자신도 장담 못할 정도로...
성삼재 휴게소에 먼저 도착한 산꾼, 박총무, 손님으로 참가하여 종주를 끝낸 회원들이 모여 막걸리 파티를 하고 있었다. 오늘 최고 기록은 손님으로 오신 분이 작성하신 10시간. 회장님이 정상적으로 달렸으면 비슷한 기록이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다음으로 산꾼님의 10시간 10분. 산꾼님의 기록도 정말 대단하다.
초반에 over pace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는 박규성총무님은 10시간 50분. 이 기록을 실패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 기를 너무 죽여 놓는 것 아닌가? ㅎㅎㅎ
그 다음은 내가 세운 11시간 35분. 조금 있으니까 산이씨가 얼굴이 빨개져서 들어온다. 정각 6시 20분에 도착하였으니 정확하게 12시간 걸렸다. 12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노고단에서 여기까지 막 뛰어왔다고 한다.
세석산장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한 회원들을 태운 버스가 이제 들어온다. B코스도 거리가 만만찮았다. 특히 산행대장이 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목감기가 들어 숨쉬기도 힘들었는데, 순전히 책임감 때문에 무리한 산행을 하여 초주검이 되어 있었다. ㅎㅎ 살다보면 이런 때도 있는 거지 뭐....
이영순님과 신명희님이 어두워지기 직전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13시간 40분 테이프를 끊었다. 이영순 부회장님은 이제 지리산 종주는 끝났단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한다. 글쎄....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대체 몇 개나 될는지...ㅎㅎㅎ
주위는 이미 어두워졌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은 5명. 산행 공지에 14시간이라고 적혀있었는데, 오후 8시 18분경 저쪽에서 불빛이 보인다. 마지막 5명이 버스에 탑승한 시각은 8시 20분. 정확하게 14시간 만에 종주를 끝냈다.
뱀사골 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미리 예약을 해 두었는데, 사계절 산악회에서 먼저 와서 먹어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좀 기다렸다가 먹었다. 모두 몸도 피곤하고 허기를 많이 느끼던 시간이라 맛있게 먹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술도 생각이 없나보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버스 안은 너무 조용하다. 늦은 시간이라 남해 고속도로도 막힘이 없이 잘 달렸다.
집에 오니 거의 12시가 다되었다.
오늘 종주에 참석하신 님들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런 기회가 자신의 참모습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년에도 청마산악회의 지리산 당일종주는 계속될 것입니다. 올해보다는 나은 기록을 생산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읍시다.
청마산악회에 가입하여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은 바로 본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축하 박수 부탁해도 될까요?
6월 산행지가 결정되었네요. 속리산 국립공원내 대야산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보니 계곡의 물이 너무 시원하게 보이네요.
6월 3일 만납시다.
아참,,, 이정근님. 빵 맛있게 잘 먹었어요...ㅎㅎㅎ 인사를 놓칠 뻔 했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