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6) 만덕산 정기산행
강진 만덕산 정기산행
조 황 래
3월 초만 해도, 아니 1주일 전만 해도 제법 쌀쌀하게 느껴졌었는데 2,3일 사이에 확 바뀌었다. 남부지방에 낮에는 수은주가 20도를 넘어가겠다는 예보가 나왔다. 그래도 산행 버스를 타려고 새벽에 집을 나올 때는 약간 추위를 느끼기 때문에 참 애매해진다. 복장을 어떻게 맞춰야하나? 오늘 오를 만덕산은 해발 400m 정도라 산 정상이라 해도 심한 추위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한겨울 두꺼운 옷은 아니어도 내피에 얇은 털이 있는 포근한 옷으로 골랐다.
점심식사는 버너와 코펠을 준비하여 라면을 끓이기로 했다. 추운 겨울에는 라면 끓이는 것조차 번거로워서 싫고, 여름에는 더워서 싫고.... 라면은 봄, 가을에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물을 담아가는 것이 배낭을 무겁게하여 산행에 적잖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맛있게 먹는 즐거움도 있으니까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이번 만덕산 산행에는 미국에 다녀오시느라 산행 참석을 못하셨던 유임숙님도 오시고, 독감으로 고생했던 서은정씨도 참석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산행에 관심이 많은 친구도 한 사람 섭외하는 바람에 마산우체국까지 가는 승용차에 5명이 탔다. 마산 우체국에서는 깊은바다님 동창생, 이성옥님, 박규성 손님 부부 이렇게 4명을 더하여 모두 9명이 탑승했다. 중리에서 조붕규 총무가 동승하여 오늘 산행 참석자는 모두 40명. 버스 정원을 꼭 채웠다.
전남 강진까지 제법 거리가 된다. 족히 3시간은 달려야 할껄. 총무가 나누어주는 김밥 한 줄로 배를 채우고, 산행비 3만원 납부하고, 산행안내지 받고, 회장님 인사말씀 듣고, 산행대장의 산행에 대한 유의사항 등을 듣고 나면 1시간 남짓 걸린다. 나머지 시간은 산행 들머리까지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 김윤철 사장님이 안전하게 태워다 주시기 때문에 마음 놓고 한 숨 푹 자면 된다. 어쩌다 잠이 쉽게 들지 않으면 총무가 준비한 뒤풀이용 소주 한 병 살짝 가지고 와서 쭉 들이키면 O.K. ㅎㅎㅎ
10시 40분에 만덕산 들머리 석문교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네. 가볍게 맨손체조로 몸을 풀고 단체 사진을 찍은 후 산행을 시작했다. 별로 이름이 나지 않은 산으로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산꾼들을 태운 산행버스가 두 대나 더 들어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먼저 출발했다.
입구에 ‘용문사’가 있었다. ‘대웅전’이라는 이름 대신에 ‘큰법당’이라는 간판을 걸어놓은 점이 특이하다. ‘우리말 사용’ 바람이 여기까지 불었나보다. ‘큰법당’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쩐지 좀 낯설게 보인다.
용문사를 뒤로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올라가자마자 산불이 난 흔적이 보였다. 쾌쾌한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것으로 보아 산불이 발생한지 며칠 지나지 않은 모양이다. 며칠 전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왔었는데.... 불이 붙은 지역이 넓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용문사도 식겁했겠는데~~
만덕산은 해발 409m이니까 낮은 야산이라고 봐야겠지? 그런데 산행을 시작해서 오르다보니 만만한 산이 아님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었다. 들머리가 해발 10m 지점이었으니 400m만 오르면 되지만, 전남의 야산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다. 해남의 달마산, 주작산이 그랬지. 올망졸망 어떻게나 걸을 것이 많든지~~ 더구나 나를 비롯한 우리 회원님들 복장이 혹시나 하고 조금 두꺼운 겨울 등산복을 입었는데 날씨는 예보대로 20도를 웃도는 기온을 나타내다보니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30분 이상 열심히 걸어 290m 능선에 도달해서 한 숨 돌렸다. 막걸리를 꺼내어 연속 두 잔을 들이키니 속이 좀 시원하다. 뒤따라오는 회원님들께 한 잔씩 돌리다보니 큰 병 하나는 금방 동이 난다. 작은 병 하나 더 따서 골고루 나눠마셨다.
능선 길을 따라 전진하였지만 굴곡이 심하여 매우 조심스러웠다. 우리 청마에서도 1년 내내 산행을 하지만 산과 바다를 공유하는 산행 기회는 쉽지 않다. 푸른 바다를 접하면서 산행을 하면 더욱 좋겠지. 중국 발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시야는 흐려져 감동이 감해졌지만 그래도 오른편으로 바다가 보이니 마음은 즐겁다.
점심식사를 해야겠는데 자리가 영 마땅치 않다. 폭 1m도 안 되는 능선길만 연결되고, 여러 사람 둘러 앉아 식사를 할 공간이 안 보이는 것이다. 선두 팀은 약간 경사가 있는 좁은 공간을 발견하고 식사하기로 했다. 후미 팀은 우리가 지나오면서 봐 두었던 다른 공간에서 식사를 하도록 무전으로 알렸다.
버너에 불을 붙여 보온병에 담아 온 다시물을 끓여 어묵을 삶아내고 라면을 넣었다. 어묵을 먹는 동안 라면이 뽀글거리며 익어가는 냄새는 정말 향기롭다. 어묵만 먹어도 되는데.... 라면도 먹고, 밥도 한 술 떠먹으니 조금 넘치는 것 같다. 이렇게 먹으면 안 되는데~~~ㅎㅎ
식사를 마치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작은 봉우리를 올랐다 내렸다 몇 번 반복하다보니 피로가 조금씩 누적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바람재’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막걸리 한잔씩 나누었다. 후미에서 따라오던 일부 회원들은 바람재에서 하산하기로 한 모양이다. 지도를 보니 바람재에서 내려가면 ‘다산초당’과 정약용 선생의 ‘유물전시관’을 만날 수 있겠다. 바람재에서 만덕산 정상 ‘깃대봉’까지 오르는 길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절묘하게 생긴 뾰족한 ‘촛대바위’와 그 위에 앉아있는 두꺼비처럼 생긴 바위는 중국 황산의 ‘비래석’을 연상케한다. 여기서 이런 멋진 바위를 만날 줄이야!! 바람재에서 깃대봉까지 800m를 사진도 찍으며 한적하게 오르다보니 무려 한 시간이나 걸렸다.
하산코스는 너무 간단했다. 깃대봉에서 바로 아래 내려다보이는 절이 바로 백련사다. 백련사까지 내려가는데 길도 순탄하여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백련사의 본래 이름은 만덕산 백련사이며 조선후기에 만덕사로 불리다가 현재는 백련사로 부르고 있으며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내부에는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한다. 백련사는 보통 산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사찰인 것 같다. 대웅전과 주변 건물들 둘러보고 다산초당으로 갔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는 동백림을 지나 약800m의 오솔길(좁은 산길)을 지나갔다. 이 길은 다산 정약용선생께서 초당에 거처할 당시 백련사의 명승 혜장과의 교우를 위해 이용했던 길이라 한다. 숲길 초입에는 천연기념물인 제151호로 지정된 동백나무 군락지가 원형 그대로 존재하고 있고, 숲길 주변에는 수령 100 -300년 된 동백나무 1500본과 참나무류를 비롯하여 소나무, 차나무, 비자나무, 후박나무, 가시나무 등이 천연 혼효림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초의선사와 함께 시국담을 나누며 자주 거닐었던 유서 깊은 숲길로 전해진다.
천연기념물 제151호인 백련사 동백림은 도암면 만덕리 소재 백련사 위의 경사지4.3㏊ 면적에 7,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집단으로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고 있다. 동백꽃은 초겨울부터 기온에 따라 한두 송이씩 피고 지기를 계속하면서 겨울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좋은 경관수로 조선시대에는 동백 혹은 산다화(山茶花)라 하여 시인과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또한 이곳 백련사의 동백은 꽃잎을 따 녹차, 밀, 수수, 찹쌀, 보리 등의 가루를 이용하여 전을 부쳐 전차(錢茶)와 함께 간식이나 손님 접대용으로 썼다는 동백화전은 그 역사가 수백 년에 이른다고 전한다.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 천일각이라는 이름은 '하늘 끝 한 퉁이' 라는 뜻의 천애일각(天涯一閣)을 줄인 것이다. 다산의 유배시절에는 없던 건물인데, 돌아가신 정조대왕과 흑산도에서 유배 중인 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강진만을 바라보며 스산한 마음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1975년 강진군에서 새로 세웠다. 이곳에서 다산선생이 강진만(구강포)을 바라보면서 시름을 달랬을 거라고 하는데 지금은 소나무들이 자라서 조망이 시원하지 못하다.
강진만을 한눈으로 굽어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 중 10여 년을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하였던 곳이다.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1957년 복원하였고 그 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이 있다.
송풍루(松風樓) 라고도 불리는 동암(東庵)은 다산이 저술에 필요한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며 손님을 맞았던 곳이다. 다산은 초당에 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 머물며 집필에 몰두했으며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 방법을 적은 [목민심서]도 이곳에서 완성했다. 1976년 서암과 함께 다시 세웠는데, 현판 중 보정산방은 추사의 친필을 모각한 것이고 다산동암(茶山東庵)은 다산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다산유물전시관은 다산초당 남쪽 800m 지점에 위치하며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애와 업적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영정 다산연보 가계도 학통 다산의 일생 다산의 업적과 유물 등이 판넬과 조형물로 입체감 있게 전시되어 있으며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을 때는 컴퓨터를 활용한 터치스크린 에서 검색해 볼 수 있다. 영상실은 다산의 일생과 강진을 소개하는 영상물이 약7분 동안 상영되는데 관광객이 영상실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상영되므로 누구나 불편 없이 관람 할 수 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던가요? 다산초당에 대하여 미리 공부를 좀 하였더라면 우리가 지나쳤던 길과 유적지, 유물 등을 관심 있게 봤을 텐데~~~ 인터넷 검색을 하였더니 좋은 정보가 많이 올려져있어서 조금 받았습니다. 백련사와 동백나무 숲길, 다산초당, 유물전시관 등을 엮어서 하루 코스로 date하기에 괜찮은 곳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지난주에 비하여 컨디션이 회복되어 그렇게 힘든 줄 몰랐는데... 오늘 산행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나요? 바람재에서 하산한 회원님들 면면을 보니 우리 청마의 주전멤버들이라 좀 의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네요.
아침에 드신 김밥은 유임숙님이 준비하셨습니다. 산행에 자주 참석 못하다가 이제야 기회를 얻었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뒤풀이는 노은주씨의 감자탕이었어요. 푸짐한 요리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산행은 덕용산으로 되어있었지만, 오늘 다녀온 만덕산 바로 옆 산이라 다음기회로 미루고 거제 계룡산으로 변경했답니다. 계룡산은 산도 그렇게 높지 않고 산행거리도 짧아서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4월 초라 진달래가 만발하기에는 조금 이를까요? 총무가 미리 공고를 하네요. 뒤풀이는 회를 준비한다고요. 즐거운 산행과 맛있는 회 먹으러 거제도로 갑시다. 4월 6일 만나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