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18~19) 특별기획 : 대마도 1박2일
특별기획 : 대마도 1박2일
조 황 래
강미선 회장의 임기 첫해 특별기획으로 일본 대마도를 다녀왔다. 나는 2007년 고등학교 동기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다녀왔지만 벌써 12년이나 되었구나. 한 번 더 다녀와도 될 만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하고 흔쾌히 동참하기로 했다. 외국으로 나가는 과정은 정말 만만하지 않다. 여행사를 선정하기 위하여 몇 군데 견적을 받아야 하고, 여행사가 확정되면 청마 홈페이지와 밴드에 공지하여 참가인원을 파악해야하고, 또 계약금 및 잔금 납부도 신경써야하고, 일정에 따른 여러 가지 준비물도 챙겨야하고....
대마도 특별기획 공지는 2월 22일 청마산악회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강미선 회장은 경남신문의 계열사 ‘경남투어’를 선택하여 관광일정을 확정하고 그에 따른 비용을 325,000원으로 결정하여 올렸던 것이다. 이 금액에는 창원에서 부산 국제여객선 터미널까지 왕복 버스비용도 포함되었으니까 비싼 가격은 아닌 것 같다. (참고로 12년 전 대마도 1박2일은 26만원이었다)
사실 하루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세상에서 석 달 후에 발생할 일을 어떻게 알겠냐만 미리 대마도 관광계획을 점찍어 놓고, 일이 생기면 그 일은 다음으로 미루면 된다.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 이미선 고문과 나는 바로 댓글을 달면서 참가신청을 했다. 배현숙 여총무에게 여권사본을 보내고, 참가비도 송금했다. 참석인원은 24명까지 댓글이 달리다가 어쩔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한 회원이 빠지는 바람에 최종 22명으로 확정되었다. 많은 인원이 함께하면 더 좋겠지만 이 정도 규모는 가이드가 통솔하기 딱 좋은 숫자다.
5월 18일 (토)
거의 열흘이상 맑은 날이 계속되어 날씨에 대한 염려는 전혀 하지 않았는데 지난 목요일 일기예보에 주말에 비가 오겠다는 방송을 들었다. 참내, 이게 뭔 일이람~~ 초여름 같은 날씨를 예상하고 옷을 준비했다가 도로 집어넣고 소매 긴 옷과 약간 두꺼운 바지로 바꾸었다. 우의를 걸친다 해도 비를 맞으면 체온이 내려가니까 춘추복이 낫지. 새벽 4시에 집을 나설 때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경남은행 본점 앞에서는 우산을 써야했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어, 28인승 리무진 버스네~~ 이런 고급 버스를 내어주다니... ‘경남투어’의 고급화 전략인가? 생각지도 않았던 조그만 일에 감동받으며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버스 기사님은 서울 쪽에서 오신 분이라 창원과 부산 지리에 어두웠기 때문에 우리가 길 안내를 해야 했다. 명서다리에서 회원님들을 태우고, 대방동에서 김정평 대장을 태움으로서 22명 전원 탑승완료. 버스는 부산국제여객선 터미널로 갔다.
내가 마산에 살아도 부산 토박이나 다름없지만 부산을 떠난 지 30년이 넘었고, 또 부산시내로 들어 올 일이 거의 없다 보니 길이 많이 낯설다. 더구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착공 3년 만에 공사를 마치고 2015년 8월에 영업을 시작하였으니까 나도 잘 모르는 것은 당연한 일. 운전기사님은 네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차를 운전하여 6시쯤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현대식으로 지은 터미널은 엄청 넓고 깨끗하다. 그럼, 이 정도는 되어야 외국사람들이 보아도 인정해줄 만하지. 출국장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이영선 가이드를 만나서 여권을 모아 건네주고 우리는 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배는 7시 50분에 출항하는 대아고속의 ‘오션플라워호’다.
전면의 대형 전광판에는 대마도 가는 배를 안내하고 있었다. 7시 50분 ‘오션플라워’ 외에 8시 대에 3척, 9시 대에도 3척 등 줄줄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대마도에 가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아? 그런데 사이클을 가지고 온 사람들도 제법 보였다. 와이고, 이런 날씨에?? 대마도 비 맛을 좀 보겠다는 거지. 대마도는 사이클을 타고 일주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탑승권과 여권을 돌려받고 출국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단체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줄을 지어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공항과 구조는 비슷하다. 소지품 검사하고 여권 검사하고 나가면 된다. 나는 자동출입국 코너를 통하여 나갔다.
면세점은 제법 규모를 갖추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발렌타인 30년산에 245,000원 가격이 붙어있다. 공항 면세점도 30만원 이상인데 양주는 확실히 다른 곳보다 저렴하다. 한 병 살까 망설이다 그냥 나왔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 해도 내 입맛에는 우리나라 막걸리가 최고인데 뭘....
배를 타기 위하여 건물 밖으로 나오니 비가 계속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배를 탈 때 비 오는 것은 별문제가 안 된다. 바람이 문제지. 그런데 오늘은 바람도 꽤 부는 것 같다. 배 멀미로 고생하는 사람도 몇 명 나오겠는데~~
정시에 배가 출항했다. 부산내항을 벗어나자 배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창문으로 보이는 파도가 제법 높이 솟아오르면 배도 따라서 크게 출렁거린다. 살짝 바이킹을 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이런 정도의 울렁거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겠네. 그렇지만 주변의 일부 선객들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부산에서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는 배가 25분이나 지체되어 9시 25분에 대마도 히타카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입국절차를 밟고 밖으로 나오니 거의 10시가 다 되었다. 우리는 대기 중이던 노란색 관광버스에 올랐다. 이영선가이드가 간단히 인사말을 한 다음 일정을 소개하면서 먼저 ‘미우다 해수욕장’으로 안내했다. 미우다 해수욕장은 하와이 해변에 비견될만한 멋진 풍경이니 어쩌니 하더니만 막상 도착하여보니 작은 백사장을 끼고 있는 손바닥만 한 해변이다. 바람과 비 때문에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인증사진만 몇 장 찍은 다음 바로 버스로 돌아왔다. 이런 해수욕장을 하와이와 비교하면 안 되지~~
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고 산행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하기가 애매하다. 그렇지만 산행을 하려고 왔으니까 위험하지 않는 구간까지 등반을 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일러도 점심식사부터 먼저 하기로 했다. 차를 타고 20여분 달려 바닷가 도로변 한적한 곳에 아담하게 지어진 ‘히토츠바타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본 특유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긴 테이블에 6명씩 앉으니 1인용 식반에 김밥 1개, 유부초밥 2개와 우동 한 그릇이 담겨져 나왔다. 공동반찬으로 생선회가 작은 접시에 조금 담겨져 나왔는데 혼자 먹어도 서너 접시 정도는 쉽게 먹을 수 있겠다. 워낙 양이 적으니까 남기는 것이 없다. 대부분 깔끔하게 비우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비바람이 더욱 거세졌다. 시간이 지나도 비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산에 가는 것은 옳은 결정이 아닌 것 같다. 어쩔 수없이 시라다케 등반은 포기하고 섬 구경과 쇼핑을 하기로 했다.
일본의 도로는 폭이 좁다. 일본에서 소형차가 주류를 이루는 것도 세금이나 행정적인 지원도 있지만 도로 폭이 좁아서 큰 차가 움직이기 불편한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좁은 도로를 타고 대형 버스가 움직이려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양보’와 ‘배려’다. 막무가내 식으로 먼저 대가리를 들이밀어 봤자 쌍방이 꼼짝 못하니까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탄 버스도 폭이 5m 정도 되는 도로를 가면서 여러 차례 차를 멈추고 앞에서 오는 작은 차를 먼저 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기야 우리나라도 이런 도로사정이라면 그런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을 거야. 그런데 우리나라 행정은 이렇게 폭이 좁은 도로는 예산을 확보하여 도로확장공사를 서둘렀을 텐데, 일본은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민족성의 차이인가? 그렇지만 도로변과 야산에 쭉쭉 뻗은 삼나무가 만드는 울창한 숲은 너무 보기 좋았다. 이렇게 멋진 숲을 잘라내고 도로를 확장한다면? 글쎄.. 나도 찬성하기 어려울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가는 것보다 일부구간이라도 걸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만관교를 구경하기 위하여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비는 그쳐서 우산 없이도 걸을 만 했다. 만관교는 러일 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기 위해 한 개였던 큰 섬 가운데를 잘라 군함이 지나갈 수 있게 운하를 건설하였는데, 그 운하위에 건설한 다리가 만관교이다.
러일전쟁은 1904년 2월 8일에 일본함대가 뤼순군항[旅順軍港]을 기습공격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1905년 9월 5일에 일본이 유리한 입장에서 강화를 하게 되었고, 일본은 전투의 승리로 조선의 지배권을 확립하게 되었다. 아울러 만주 진출이 가능하게 되어 만주사변과 중일전쟁발발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대마도를 둘로 가르는 운하를 설치했는데 당시 러시아의 군사 지도에는 대마도가 한 섬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운하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일본 해군은 대마도 섬 뒤쪽에 주력부대를 숨겨 놓고 기다렸다가, 반대편에 나타난 러시아의 무적함대를 거의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일본으로서는 자랑스러운 승전의 장소겠지만, 러일전쟁으로 인해 일본의 지배에 들어가게 된 한국으로서는 ‘비운의 다리’이다. 수심이 아주 깊어 보인다. 교량의 철골을 붉은 색으로 칠해놓아서 멀리서도 뚜렷하게 잘 보인다. 번지점프나 다이빙하기에 좋은 곳인 것 같은데.... 할 수 있으려나?
일정표에 없는 신사를 방문했다. 입구에는 입을 벌린 동물상과 입을 닫은 동물상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그리고 대나무처럼 생긴 관으로 물이 졸졸 흘러나오고 옆에는 긴 손잡이가 달린 바가지가 놓여있었다. 이 물은 음용수가 아니라 손을 씻는 용도라고 한다. 신사에 들어가기 전에 소독(?)부터 하라는 뜻이겠지. 이영선 가이드가 여러 가지 설명을 했지만 자료가 없으니 후기에 기록을 남기기도 어렵다. 그냥 사진만 보고 넘어가자. 둘레 5m도 넘을 것 같은 고목이 산사를 찾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우리도 고목 아래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조금 걸어서 ‘가네이시 성터’를 방문했다. 입구에는 3층 형태의 일본 전통건축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지나 안쪽으로 좀 걷다보면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가 있다. 조선 제 26대 왕인 고종의 늦둥이 딸로 강제유학을 가서 대마도 백작과 결혼한 비운의 여인이다. 결혼해서 살다가 딸까지 낳았지만 조현병에 걸려서 결국 이혼을 하고..... 1961년에 귀국하여 1989년에 별세하였다.
일본 특유의 가네이시 정원은 입장료 300엔을 내고 입장하라는 팻말이 붙어있어서 밖에서 눈요기만 하고 나왔다.
다음으로 ‘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이라는 작가의 집을 방문했다. 토스이는 한국의 ‘춘향전’을 번역하는 등 한국을 사랑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히구치이치요’가 토스이를 사모하였다는 사실은 이치요가 25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남긴 니키(일기)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한다. 거실 홀은 차와 커피,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거나 일본 전통 옷을 대여하여 입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고, 방에는 서너 명이 둘러앉아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잠시 구경을 하고 나왔다.
20분 정도 걸어 나오니 대형 상가건물이 보였다. 여기에는 면세점도 있고 약국도 있다. 이영선 가이드는 쇼핑을 하라면서 1시간의 여유를 준다. 나는 약국에 가서 근육통에 바르는 연고를 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후배가 부탁을 하여 구매하였는데, 비슷한 제품은 많았지만 똑 같은 제품은 세 개 뿐이었다. 면세 혜택을 받아 8%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이미선과 같이 내를 따라 걸었다. 나는 일본에서 가장 부러운 것은 바로 동네를 관통하는 내(川)다. 어떻게 관리를 하기에 동네 한복판을 흐르는 내에서 팔뚝만한 물고기가 놀고 천둥오리가 헤엄을 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 집 근처에 성원곡에서 내려오는 계곡물길을 따라 개천을 현대식으로 단장한 곳이 있다. 그렇지만 여기도 더러운 이끼가 바닥에 깔려있고,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니까. 생활오폐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만 물고기가 살 수 있고, 오리가 노닐 수 있잖아. 정말이지 일본의 이런 모습은 본받아야 한다.
저녁 식사하러 갔다. 시내에 있는 식당이 아니라 ‘TSUSHIMA DAE-A HOTEL’로 가는 것이다. 배도 대아고속의 오션플라워를 탔고, 저녁식사도 대아호텔 식당을 이용하는 것으로 봐서 경남투어는 대아그룹의 큰 고객인가보다.
일정표에는 '해산물 B.B.Q'라고 적혀있는데 준비된 음식을 보니 약간의 해산물에 삼겹살과 몇 가지 채소를 첨가한 한식이다. 아무려면 어때, 맛있게 먹으면 되지. 이용해 총무는 테이블마다 일본소주 한 병씩 올렸다. 강미선 회장의 축사와 건배제의, 박규성 고문의 건배제의 등 소주 몇 잔이 들어가니 분위기 완전히 상승한다. 비록 시라다케 등반은 못했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했지만 여기서 이런 즐거움을 누리고 있으니 모든 것이 O.K.
호텔 바로 앞은 바다이고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술도 깰 겸 밖으로 나갔다. 바라보이는 바다가 태평양으로 연결되지 싶다. 아침부터 날씨가 이 정도만 되었어도 정말 좋았을 텐데.. 공원에는 사각뿔 모양의 줄타기도 있고, 굵은 스프링위에 의자형태를 만들어 올려서 스프링 탄력을 이용하는 탈것도 있고 가볍게 족욕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웃고 즐길 수 있음은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버스에 올라 우리가 묵을 숙소로 왔다. 숙소는 민박으로 우리 교포가 운영하고 있단다. 우리에게 2층 방 6개와 1층 방 하나가 배정되었다. 1층은 기침을 심하게 하는 김용진님 부인인 홍성미님이 단독으로 사용하도록 하였다. 욕실은 UBR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에 잠시 유행하다가 사라진 system인데, 화장실을 건식공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면 설명이 되려나. 플라스틱으로 천정과 벽체 및 바닥을 만들어 현장에서 조립하고 그 안에 욕조와 양변기 등을 배치하였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라 현장에서는 방수도 필요 없고, 벽체에 타일을 붙이는 습식공사도 없다. 조그만 공간도 활용을 잘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에게는 잘 맞는다고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환영받기 어려웠다.
나는 서태중님과 같이 202호에 입실했다. 방 베란다에서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인다. 전망이 정말 좋구나. 오늘이 보름인가? 둥근달이 수면위에 떠있는 멋진 광경을 음미할 수 있었다. 1층 홀에는 긴 식탁이 배치되어 있었고, 밤10시까지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주인의 허락을 받았다.
1층 홀에 다시 모였다. 각자 준비해온 술과 안주를 내어 놓으니 상이 푸짐하다. 최학권님은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생선회를 상에 올렸다. 이로써 구색이 완전하게 갖추어졌다. 화기애애하게 주거니 받거니... 두 시간 가량 대마도의 밤을 즐겼다. 아름다운 밤이에요~ㅎㅎ
5월 19일 (일)
새벽 5시에 눈이 떠졌다. 서태중님은 바닷가 산책 나갔지만 나는 누워서 TV스포츠 채널을 켜놓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희한하게도 우리나라 TV 채널이 다 나온다. 위성방송이 여기서도 수신이 되나보다.
1층 홀에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 주인이 한국교포라 우리음식이 나왔다. 밥과 반찬의 양은 작았지만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면 된단다. 생선 반 토막과 된장국으로 식사를 했다. 쌀이 좋아서 그런지 밥맛이 좋았다. 그런데 반찬으로 나온 ‘낫또’는 내 입맛에는 별로다. 손도 안 대고 내어놓았더니 이미선님이 맛있다고 가져갔다.
이영선 가이드는 오후에 바람이 세어지겠다는 예보가 있어서 원래 13시 30분 배를 타기로 되어 있었지만 12시 40분 배를 타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으로 시간을 앞당겼다고 한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8시에 버스에 올랐다.
에보시타케 전망대로 갔다. 버스가 다니기에는 좁은 도로지만 이런 환경에 익숙한 기사님은 어렵지 않게 잘 올라간다. 버스에서 내리니 ‘에보시타케 정상까지 60m’라고 적힌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계단이 나오고 이 계단 끝 정상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계단은 100개쯤 되었을까. 단숨에 올랐다.
정상에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그리 크지 않은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우리 식구 20여명 모두 올라오면 다 서지도 못하겠다. 사방 경치는 정말 좋다. 대마도가 이렇게 아름다운 섬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나 할까. 올망졸망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있고, 섬들은 모두 나무가 울창하여 푸른 녹색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이곳이 해발 190m라고 했던가? 날씨는 흐렸지만 시야까지 막히지는 않아서 좋은 구경 실컷 하고 사진도 많이 찍고 내려왔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내려가서 ‘와타즈미 신사’를 만났다. 사리 때는 경내에 사전(社殿) 가까이까지 밀물이 차오르는데 이 광경은 마치 용궁(龍宮)을 연상케 한다고 한다. 와타즈미의 '와타'는 일본 고어로 바다라는 뜻이고, 와타즈미 신사는 용궁(해궁) 신사라는 뜻이다. 일본의 바다 신을 모시는 신사들 중에서도 이 와타즈미 신사는 꽤 오래되고 유서 깊은 곳이라고 한다.
『하늘 형제 신들이 낚시를 하다가 낚시 바늘을 떨어뜨렸고, 동생 히코호호테미노코토가 낚시 바늘을 찾기 위해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온다. 그때 용왕의 딸인 공주 ‘토요타마히메노미코토’를 보고 반하게 되어 결혼하게 된다. 둘이 결혼해 3년 뒤에 임신을 하게 되었고, 바다에 아기를 낳을 수 없어 출산을 위해 오게 된 곳이 바로 이 와타즈미 신사라고 한다. 공주는 아기를 낳는 동안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아기 울음소리만 들려 신사 안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공주는 없고 웬 구렁이가 아기를 낳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자 구렁이는 아기를 바다에 버리고 도망을 갔다.
이곳에 버려진 아기와 용왕의 차녀가 결혼해 4명의 아기를 낳았는데, 그 중 넷째가 일본의 초대천왕 '진무덴노'라고 한다. 일본의 건국신화가 탄생한 곳이 바로 이 와타즈미 신사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건국신화들은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다. 하늘신의 형제들-단군신화, 천신 아버지와 해신의 딸 어머니-고주몽 설화, 구렁이의 자식-백제 건국신화(야래자 설화) 이런 식으로.
와타즈미 신사에는 총 5개의 도리이가 일렬로 이어져 있다. 그 중 바다 안에 있는 것이 2개이고, 1개는 바다 바로 앞의 커다란 도리이, 그리고 신사 건물 앞쪽으로 2개의 도리이가 더 있다. 도리이를 보니 12년 전에 여기를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리이에 굵은 밧줄이 걸려있었는데,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를 낳으면 새끼줄을 대문에 걸어놓는데 그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 왼쪽에 엄청난(?)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아니, 뿌리가 어째서 땅 밑으로 파고 들어가지 않고 지면을 따라 10m정도 마치 뱀이 기어가듯이 뻗어있단 말인가?
길쭉한 배가 한척 보관되어 있다. 무슨 배인지 설명이 없어서 알 수가 없지만 검색을 해보니 만조 때는 여기까지 물이 찬다고 한다. 그리고 비스듬히 기울은 기둥 4개가 떠받치고 있는 구조물은 스모경기장이라고 한다. 신사와 스모경기장이라... 매치가 잘 안되는데~~
밖으로 나오니 제법 큰 푸드트럭이 반겨준다. 여기에서는 무조건 ‘감자고르케’를 사먹어야 한단다. 총무가 고르케와 커피를 사서 나누어 주는 바람에 나도 맛을 볼 수 있었다. 그저 그런 맛인데 어째서 소문이 좋게 났을까?
관광일정을 모두 끝내고 히타카츠 터미널로 이동했다. 면세점은 터미널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버스타고 이동할 필요가 없다. 이영선 가이드는 버스에서 면세점에서 구입할 물건들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려주었다. 일본은 혈관이나 관절 등 의약품분야에서도 세계 정상급이라 안심하고 구입해도 된다고 한다. 칼을 비롯한 여러 생필품도 품질이 좋아서 많이 구매한다고. 우리 회원님들은 'GATE WAY'라는 간판이 붙은 면세점으로 들어가서 제법 많은 돈을 일본에 보태주고 나왔다.
점심식사는 도시락으로 지급되었다. 터미널은 사람들이 많아 혼잡하여서 바닷가 인도 한쪽에 자리를 잡아 식사를 했다. 산에 가면 적당한 공간을 찾아 식사를 하니까 이렇게 식사하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도시락에는 밥 반 공기에 생선 한 토막, 단무지 두 개 튀김 한 조각 등이 담겨있었다. 일본 식사는 잔반이 생길 여지가 전혀 없다. 이것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12시 40분발 오션플라워호를 탔다. 배가 출항하여 항구를 벗어나자 파도가 많이 거칠다. 파도에 따라 춤을 추는 배는 올 때 못지않게 울렁거렸다.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 1시간 50분이나 걸렸으니까 파도가 더 심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부산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기 중이던 버스에 올라 창원까지 무사히 왔다.
대마도는 면적이 708㎢로 사도가 섬, 아미 미오 섬에 이어 일본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대마도에서 후쿠오카까지는 항로 132㎞, 부산까지는 약 50㎞로 본토보다 한국에 가까이 위치에 있어서 맑은 날은 육안으로도 부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직선거리로 남북 약 82km나 되는데, 차로 북에서 남까지 달리면 2시간 반이 걸린다. 자연 환경도 매우 독특하다. 오랜 옛날 일본과 대륙은 육지로 연결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대륙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독특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다. 일본 본토에 서식하는 종 외에 쓰시마 섬에서만 서식하는 대륙계의 씨앗, 쓰시마 섬이 되면서 진화시킨 대마도 고유종 등이 뒤섞여서 일본 열도의 형성이나 종분화의 역사를 풀어 가는 열쇠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철새들의 중계 지점으로도 유명하고 일본에서 볼 수 있는 새의 절반을 쓰시마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소식이 들리면 대마도는 한국 땅이라는 반론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마도는 일본 국가 성립 이래 지속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인식되어 왔으며, 삼국 시대 이후 한반도 국가들 가운데 어느 곳에서도 대마도를 자국 영토로 간주하고 실효 지배를 행했던 왕조나 정부는 한 곳도 없다. 즉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마도 영유권 주장도 허무맹랑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청마산악회의 특별기획 역사를 살펴보면 2006년 이도선 고문님의 제주도 한라산 1박2일부터 시작되었다. 당일치기 산행만하다가 시야를 조금 더 넓혀서 1박2일 일정으로 쉽게 가보지 못한 명소를 골라서 답사하는 특별기획을 실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회장이었던 2008년에는 홍도와 흑산도, 2009년은 거문도를 다녀왔고, 이정수 고문의 2011년에는 제주도 돈내코, 한용우 고문의 2012년에는 일본 아소산, 소병일 고문의 2013년에는 봄에 울릉도와 독도를, 가을에 중국 서안을 4박5일 일정으로 다녀왔고, 2014년에도 봄에 대만 3박4일, 가을에 강원도 일원을 둘러보았다. 이미선 고문의 2015년에는 증도, 2016년에는 안면도를 다녀왔고, 박규성 고문의 2017년에는 강화도, 2018년에는 비금도를 방문하였다.
1박2일 대마도 특별기획이 이렇게 마무리 되었네요. 참석하신 우리 회원님들과 게스트로 오신 분들 모두 만족한 여행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시라다케 등반을 못하여 정말 아쉬웠지만 에보시타케 전망대 올라가서 대마도 전경을 구경한 것으로 대체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ㅎㅎㅎ
강미선회장 이하 이용해, 배현숙 총무와 김정평 대장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강미선회장은 50만원을 경비에 보태도록 하였어요. 그리고 이용해 총무는 아침에 드신 김밥과 10만원이 넘는 일본소주를 스폰서하셔서 기분 좋은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네요. 그리고 김용진님도 5천 엔을 낸 덕에 우리 모두 고르케와 커피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최학권님의 생선회는 뒤풀이의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했어요. 감사합니다.
집 떠나 하룻밤 묵으면서 같이 지낸다는 것은 정말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하지요.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 수는 없지만 계획이 확정되면 사정이 허락하는 한 동참하실 것을 적극 권합니다. 유대관계가 확실히 돈독해 지는 것을 피부로 느낀답니다.ㅎㅎ
다음 산행은 ‘속리산 길’입니다. 이 코스는 내가 추천했어요. 신문에 실린 내용을 옮겨보면『시원한 폭포 소리 들으며 경쾌하게 내딛는 발걸음 속리산의 화양동계곡은 제1곡 경천벽에서부터 제9곡 파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세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는 걷기 코스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제9경 파천에 이르면 너럭바위와 크고 작은 바위들 사이사이로 시원스레 굽이치는 물줄기가 또 다른 비경을 만들어낸다. 남성적인 아름다움이 강한 화양동계곡을 거쳐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선유동계곡도 걷기에는 제격이다. 화양동계곡에서 선유동계곡으로 이동하려면 불가피하게 자동차를 이용해야 한다. 2㎞로 압축된 공간에 밀집된 선유동계곡은 걷기에 부담이 없고 산세도 험하지 않아 가족 단위 걷기 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코스 : 화양동 입구-제1곡 경천벽-제2곡 운영담-제3곡 음궁암-제4곡 금사담-제5곡 첨성대-제6곡 능운대-제7곡 와룡암-제8곡 학소대-제9곡 파천 원점회귀 (총 7.4㎞ / 약 3시간 소요) 』 6월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멋진 코스가 될 것 같네요. 6월 16일 만납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