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관광 후기모음

(2020. 3. 2 ~ 3. 23) 절반의 성공, 남미 여행 28일

달리는 흑토마 2020. 6. 10. 01:16

버킷리스트(bucket list) / 평생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 혹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나는 아직 그런 리스트를 작성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남미는 버킷리스크에 채울 목록이 몇 가지는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이미선과 나는 여행을 좋아하기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멀고 척박한 곳부터 섭렵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미선 교장 임기를 1년 남겼을 무렵부터 계획을 세웠다. 많은 여행사 중에서 남미여행을 주력상품으로 성장한 작은별 여행사를 찾아내었고 202032일 출발하는 남미한붓그리기상품에 주목했다. 이 여행사는 비행기 티켓과 숙소는 챙겨주지만 낮에는 각자 알아서 자유여행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단다. 패키지관광에 익숙한 우리가 반 자유여행을 해낼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지만 사회생활 40년 경력으로 어지간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시가격은 895만원이었지만 조기계약은 30만원 할인혜택이 있어서 우리는 1,730만원으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미선은 시간이 날 때마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여행 후기를 읽으면서 간접체험을 하였고, 나도 여행일정표를 보고 우리가 방문할 곳을 인터넷 검색하여 필요한 부분은 출력했다. 제법 두툼한 책이 되었고 심심하면 한 번씩 읽어보면서 실제 여행의 기대를 부풀렸다.

 

22일 잔금을 여행사에 납부하면서 한껏 기대치를 높이고 있는데 대형악재가 발생하였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여행이 가능할지 의문이 생긴 것이다. 우리는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는 남미로 가는 것이기에 괜찮겠지, 조금 지나면 수그러들겠지...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스라엘로 성지순례 떠난 우리나라 여행객을 이스라엘이 추방하는 조치가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우리나라도 코로나19에 양성반응을 나타내는 환자가 급하게 증대되면서 분위기는 정말 묘하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223일 이보연 가이드의 초청으로 3.2 여행자 멤버들의 카톡방이 개설되었다. 모두 24명이 신청하였지만 2명은 포기하여 22명으로 확정되었다. 여기에서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대체로 이런 시기에 외국으로 나가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만큼 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나 여행사에서는 남미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기 때문에 미리 예단하여 예정된 여행을 취소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지에서 활동 중인 이보연 가이드도 아직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올렸다. 또한 여행사에서는 지금 취소를 하면 위약금 380만원을 물릴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380 x 2 = 760만원을 포기하느냐, 여행을 강행하느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우리 부부는 여행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 후회하지 않기로 다짐을 하고 여행준비를 진행했다. 얼마나 환전을 해야 할까?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US달러를 사용하라고 한다. 5,000$을 준비하였다. 이번에 다녀올 남미 5개국은 해발 4,600m 고산지대에서부터 바닷가까지, 그리고 남반구 위도 14도에서 50도까지 상당히 넓은 지역을 아우르다보니 4계절 옷이 모두 필요하다. 게다가 내 입이 타국음식을 쉽게 받아들이는 타입이 아니다보니 챙길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한 달 동안 입을 옷과 간식거리에 여행정보가 담긴 책을 비롯한 읽을거리를 모아보니 마치 이삿짐을 싸는 기분이다. 양을 최소화하여 가방에 담았다. 그리고 32일 새벽 4, 대형 여행가방 3개에 배낭 2개를 지고 인천공항 버스를 타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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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분에 맞춰진 알람소리에 눈을 떴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마지막으로 가방과 배낭을 점검하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마산 합성동 시외버스정유소로 가서 예약된 인천공항 리무진버스에 올랐다. 인천공항 2터미널까지 5시간 20분이 소요된다고 되어있었지만 새벽이라 도로 정체도 없다보니 5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미선은 SKT코너에 가서 휴대폰을 점검했다. 남미에서 한 달 동안 사용하는데 T로밍 4GB39,000원 지불하면 된단다. 나는 KT를 사용하는데 사전에 유심칩을 구입하였다. 페루에 가서 칩만 교환하면 된다. 롯데리아에 가서 햄버그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만나기로 지정된 3층 출국장 C 카운터 앞으로 갔다.

 

이보연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틀 전에 귀국하여 별로 쉬지도 못하고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다고 한다. 22명이 모두 모였다. Self System을 이용하여 개인적으로 발권했다. 나는 창문과 통로를 접하는 자리인 32B,C 좌석을 선택했다.

절차를 밟아 출국장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영 없다. 인천공항 면세점이 이렇게 한산한 때도 있었나? 이미선은 화장품 몇 개 사려고 했지만 포기했다. 가방 무게를 줄여야 할 판에~~

267Gate를 통해 탑승하였다. LA로 가는 대한항공 LA8428편은 1430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하였다.

 

한 시간쯤 지나자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나는 생선요리와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먹을 때마다 비교가 되지만 기내식은 우리나라 자국기가 최고다. 괜찮은 식사를 하면서 꼬냑도 한잔했다. 식사 하고나서 영화를 보았다. 새 영화보다는 옛 추억을 반추시켜주는 고전영화를 선호한다. 감명 깊게 보았던 자이언트(1956/199), 벤허(1959/212), 러브스토리(1970/100) 이렇게 세 편을 보고나니 실내에 불이 들어오면서 착륙 준비를 하는 것이다. 11시간의 긴 비행을 영화로 잘 때웠다.

 

LA공항은 환승절차가 꽤 까다롭다. 입국했다가 다시 출국하는 절차를 밟는 것 같다. 수화물도 자동연계가 아니고 일단 본인이 찾아서 다시 리마행 비행기에 태워야하는 것이었다. 미국 공항이 모두 이런가? 아니면 LA만 이런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LA공항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든지 공항은 물가가 비싼가보다. 560cc 콜라 작은 병을 3.82$ 주고 사먹었다. 4,500원짜리 콜라를 마신 것이다.

인천에서 32일 오후 2시 반에 비행기를 타고 11시간을 날아왔는데, 여기는 여전히 32일 오전이다. 하루를 번 것인가? 현지시각 12시에 페루 리마행 비행기에 탑승하였고, 비행기는 13시에 이륙하였다.

 

LA에서 리마까지도 8시간 40분을 날아가야 한다. 좌석표가 26A, 26C로 되어있기에 중간에 다른 사람이 앉는가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고 비행기 좌석에 B는 없었다. 역시 창문과 통로를 접하여서 운신하기가 편했다. LATAM 비행기도 1시간쯤 지나자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고기를 주문했는데 맛은 영 별로다. 위스키나 꼬냑은 없어서 와인만 한잔 했다. 제공되는 영화도 한글자막이 없어서 볼 수가 없었다. 그냥 한 숨 자는 것이 좋겠네.

 

집 떠난 지 정확히 36시간 만에 페루의 리마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어렵지 않게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40인승 버스를 타고 30여분 달려서 CARMEL HOTEL에 도착하였고, 501호를 배정받아 짐을 풀 수 있었다. 여기서 이틀을 묵기 때문에 가방 정리에 약간 여유가 있다. 샤워를 하고나서 궁금해 할 아들부부에게 카톡으로 소식을 전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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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모닝콜 소리에 잠을 깼다. 간단히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리 큰 호텔은 아니어서 식당도 소박하다. 토스트와 요플레, 계란찜 등 내가 먹기 좋은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어서 무난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830분에 1층 홀에 모두 모여서 이보연 가이드의 리마 시내투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호텔을 나와서 박형신님 부부와 같이 가장 시급한 환전부터 하러 갔다. 이보연 가이드는 로터리로 가서 CAMBIO를 찾으면 된다고 했는데 가는 길이 서툴러서 시간이 제법 걸렸지만 조그만 간판을 건 CAMBIO를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은행에서 환전을 하지만 여기는 조그만 가게에서 환전을 해 주는 것이었다. 300$를 주고 990솔을 받았다. 이 정도면 페루에서는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명이 택시를 타고 구시가지로 갔다. 여기서는 택시를 타기 전에 요금을 흥정하여 정해야 한단다. 우리도 아르마스 광장까지 20솔로 합의를 하였다. 그런데 이 나라는 왜 미터기를 설치하지 않을까? 글쎄... 이 나라의 정책적인 문제이지만 의문을 거둘 수가 없다.

20여분 달려서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예사롭지 않은 위용을 자랑하는 식민지 시대의 유럽풍 건축물들로 둘러싸인 아르마스 광장과 그 주변부는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건축물로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광장 중앙에는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을 탄 장군의 동상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광장의 북쪽과 동쪽으로는 각각 대통령 궁과 대성당이 위치하며, 나머지 양쪽과 산 마르틴 광장으로 이어지는 우니온 거리를 따라 번화한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대성당은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유럽의 웬만한 성당 못지않게 내부 시설도 화려하였다. 이미선은 잠시 의자에 앉아서 명상에 잠겼다. 이번 여행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난하게 마칠 수 있기를 기도했으리라.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으로 갔다. 입장료가 15솔이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외관상으로 수도원과 성당은 비슷하게 보였다. 수도원을 검색해보니 중세에 세워진 수도원은 금역(禁域)으로 되어서 수도자와 특정한 사람 외는 들어갈 수 없는 집회실·객실·응접실·성당 등으로 나뉘고 큰 수도원에서는 구내에 수련원·병실·채원(菜園축사(畜舍)에서 묘지까지 일체의 것을 자급자족하게 되어 있다. 원내에서는 하루 종일 또는 일정한 시간은 침묵을 지키게 되어 있다

스페인어 해설자와 영어 해설자가 15분마다 교대로 설명을 해 준다고 한다. 우리는 영어 해설자를 따라다녔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지하실로 내려갔다. 성당 지하묘지(카타콤)에 엄청나게 많은 유골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노출시킨 채로 보관하고 있을까? 분위기도 으스스하여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고 나왔다.

산토도밍고 수도원은 입장료가 10솔이다. 망설이다가 입장하였는데 우리 눈에는 별거 없었다. 인터넷 검색하면 나오는 정보를 보고 그런가보다 생각하면 되겠다. 가이드 없이 우리끼리 여행하다보니 이런 부분에서는 약간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가 구입한 여행책자에 나오는 HEYDI식당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점심식사 메뉴는 40솔 짜리 세비체(물회와 비슷한 해물모듬). 우리나라 돈으로 14,000원 정도 된다. 여기는 1인분 양이 상당히 많아서 1인분만 시켜도 2명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각종 조개류와 오징어, 상추 등이 푸짐하게 나왔다. 유명한 잉카콜라도 한 병 시켜서 나누어먹었다. 맛이 괜찮은데~~

 

다시 택시를 타고 신시가지로 나왔다. 신시가지는 범위가 넓지 않고 우리 숙소가 가까이 있어서 부담이 없다. 먼저 연인들의 공원으로 갔다. 미라플로레스의 해안공원으로, 연인들의 공원이란 이름에 어울리게, 공원 한가운데에 연인들이 껴안고 키스를 하고 있는 거대한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스페인에서 본 가우디의 구엘공원을 모방한 느낌이다. 역시 이곳은 남미, 발상 자체가 대담하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위에는 제법 그럴듯한 외관을 자랑하는 호텔도 많이 있었다.

바닷가 길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가니 'Larco mar'가 나타났다. 복합쇼핑몰인 이 건물은 각종 고가 브랜드 숍을 비롯해 체인 레스토랑, 게임센터, 극장, 볼링장 등 갖가지 편의시설이 입점해 있다. 우리는 스타벅스를 찾아내서 커피를 한잔 할 수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페루의 유명한 체인점 ‘LA LUCHA SANGUCHERIA’에서 샌드위치 부티파라를 샀다. 그런데 이미선은 케네디 공원의 명물인 빨간리어카에서 파는 페루식 샌드위치를 맛보아야 한다면서 공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체인점 샌드위치는 18.9솔이고 리어카 샌드위치는 12.5솔이었지만 내 입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호텔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사온 샌드위치로 저녁식사를 했다. 자유여행 첫날을 무난하게 보낸 것 같다. 페루 리마에 대하여 사전 공부를 조금했기에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예기치 않은 불상사도 있었다. 우리 팀에서 가장 연장자이신 김평식님은 페러글라이딩하러 가셨다가 휴대폰과 지갑을 잃어버렸다. 아마 소매치기를 당하신 모양이다. 지갑에 현금은 얼마 없었다고 하지만 휴대폰이 없으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올해 70대 중반이라고 하시던데 왕성한 활동력이 놀랍다.

내일은 버스를 타고 이카로 간다. 그런데 이카에서 1박하고 다시 이 호텔로 돌아와서 1박을 하기 때문에 큰 가방은 이 호텔에 두고 작은 가방에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가면 된다. 적당히 챙길 것 챙기고 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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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에 띠르릉 울리는 전화벨소리. 벌떡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겼다. 작은 크로스백에 넣은 달러봉투와 여권은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식사하러 1층 식당에 갈 때도 어깨에 메야한다. 겉옷을 입기 전에 어깨에 두르고 나서 겉옷을 입어야 그나마 안심이 된다. 우리나라도 우리가 어렸을 때는 소매치기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지. 그런데 남미는 아직 소매치기가 범람하고 있다. 달러를 많이 소지하고 다니는 한국 사람들의 가방은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남미여행을 준비하면서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는데, 식당에서 가방을 바로 옆 좌석에 두었다가 빛의 속도로 사라져버리는 황당한 일을 당한 경험담을 읽은 적이 있다. 크로스백은 절대로 내 몸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

아침식사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토스트와 요플레, 계란찜으로 간단히 먹고 나왔다. 40인승 버스에 올랐다. 좌석 여유가 많기 때문에 뒷좌석으로 가서 두 칸을 차지하여 넓게 앉아도 괜찮다.

 

이카는 버스로 5시간이나 걸리는 먼 곳이다. 버스는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이보연 가이드가 이곳 페루에 대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었다.

1. 인구구성은 백인 10%, 원주민인 인디오가 45%, 혼혈족이 45%로 되어 있다. 원주민은 아시아에서 이주해온 가능성이 높다.

2. 인구는 3000만 명 정도이지만 땅 면적은 우리나라의 11배나 된다고. 사용가능한 땅은 10% 정도이고 안데스 고산지대가 30%, 아마존 지역이 60%.

3. 아마존은 우기가 길어서 우리나라 여름에만 방문할 수 있다.

4. 사막기후라 강우량이 적어서 산은 대부분 민둥산이다.

5. 옥수수, 감자가 주식이고 포도농사도 많이 하고 있다.

6. 페루에서 먼저 와인을 생산하였지만 지금은 칠레가 더 유명하다.

7. 양극화가 심하여 부촌과 빈민가는 콘크리트 벽(수치의 벽)으로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

 

두 시간쯤 달리고 나서 ‘ASIA market’라는 휴게소에 들렀다. 이미선은 입이 궁금하다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집었다. 나는 캔맥주를 하나 사서 시원하게 마셨다. 그런데 캔맥주는 3.9솔인데 비하여 아이스크림은 8.5솔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ㅎㅎ

다시 두 시간 남짓 달려서 파라카스라는 해변에 도착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야지. 파라카스는 모래바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오늘은 바람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데~~ 가이드가 안내하는 JUAN PABRO 식당으로 갔다. 박형신님 부부와 같이 앉았다. 우리는 볶음밥과 오징어튀김을 시키고, 송영란님은 볶음밥과 해물탕을 시켰다. 나는 주문하고 나서 인근 가게를 찾아 캔맥주 두 개를 사왔다. 오징어튀김은 먹을 만 했지만 볶음밥과 해물탕은 한 숟가락 맛만 보고 접었다. 도대체 입맛에 맞출 수가 없구먼. 그렇지만 우리의 이미선은 볶음밥을 거의 절반이나 비워내는 실력을 발휘하였고, 나는 맥주로 배를 채웠다.

 

다시 한 시간 정도 달려서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에 도착했다. LAS DUNAS HOTEL 128호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시골마을 조그만 호텔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 호텔은 상상 이상이다. 1층 혹은 2층의 리조트분위기의 방들이 수십 개 모여 있었고, 조경도 아주 멋지게 조성되어 있었다. 룸도 침대가 네 개나 배치되고 상당히 넓었다. 야외로 통하는 대형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어서 분위기도 아주 좋았다. , 이런 호텔이면 우리 아들들과 함께 와도 되겠네.

 

잠시 쉬었다가 버기 투어(Buggy Tour)를 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버기 투어는 선택 관광이지만 우리 팀은 전원 참가하기로 하였고 20$씩 걷어서 이보연가이드에게 지불하였다. 호텔에서 작은 승합차를 타고 버기 투어를 할 수 있는 사막으로 갔다. 버기 투어란 버기라고 불리는 4륜 구동차를 타고 모래사막을 누비며 샌드보딩을 즐기는 일종의 레포츠이다.

거대한 모래 산이 눈앞에 전개되어 있다. 사막을 100m쯤 올라가는데 발이 푹푹 빠지면서 제법 힘이 들었다. 버기카에 8명씩 3대에 나누어 타고 출발했다. 버기카는 울퉁불퉁한 사막을 빠른 속도로 질주하면서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쾌감을 느껴야하는데 내가 탄 버기카는 엔진이 시원찮은지 가다가 시동이 꺼지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김이 많이 샜다. 그래도 20여분을 달려 사막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더니 차를 세웠다. 여기서 샌드보딩을 즐기는 것이다. 스키 탈 때 사용하는 보드와 비슷하게 생긴 보드를 꺼내어 기사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배를 보드에 대고 발을 좌우로 벌려 균형을 유지하면서 하강하는데, slope 50m 정도 내려가는데 5초도 안 걸리는 것 같다. 내려가서는 속히 일어나서 옆으로 피해야 뒷사람이 내려올 수 있다. 모두 한 번씩 샌드보딩을 즐겼다.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그곳은 Slope70m쯤 되어보였다. 아까보다는 한결 재미가 있었지만 비탈길을 다시 걸어 올라가는 것은 엄청 힘이 들었다. 그래도 힘을 내어 부지런히 올라가서 한 번 더 타는 즐거움을 누렸다. 버기카는 중국 실크로드 관광할 때 쿠무타크 사막에서 타본 적이 있다. 그 때는 버기카는 없었고 사막용 4륜 오토바이를 탔다. 오토바이가 사막을 질주하면서 느꼈던 짜릿했던 쾌감을 지금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중국 내몽고에 갔을 때 샹사완 사막에서 모래썰매를 탔다. 그 모래썰매는 경사 40도의 모래언덕을 100m가량 내려오는 것인데 앉아서 타는 바람에 내려오면서 자빠지기도 했던 기억이 소록소록 되살아난다.

해가 지려고 한다. 사막에서 일몰을 지켜보는 것도 쉽지 않은 경험이지. 너나할 것 없이 일출이나 일몰을 보면 감회가 새롭고 감상에 잠기게 된다. 쿠무타크 사막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은 모래바람이 만들어내는 사막의 능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 와카치나는 그런 감흥까지 불러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일몰을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남기고 일어섰다. 모래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와카치나 오아시스 마을의 야경도 제법 그럴듯했다.

 

오늘 저녁식사는 여행사에서 한 턱 낸단다. 호텔 식당에는 큼직한 피자와 보기만 해도 질릴 것 같은 큰 스테이크, 그리고 피스코 술과 맥주, 음료수 등이 구비되어 한껏 입맛을 돋우었다. 역시 여기의 1인분을 우리는 두 명이 먹어도 남을 것 같다. 시끌벅적 와글와글 온갖 얘기꽃을 피우며 몇 잔 들이킨 덕에 얼굴까지 붉으스레 물이 들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 휴대폰의 유심을 바꾸는데 성공했다. 어제는 아무리해도 안 되기에 구입했던 유심이 불량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유심을 교환하고 나서 데이터사용을 클릭하지 않았던 것이다. 카톡으로 고국에 있는 아들부부, 손녀와 화상통화를 하고 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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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에 일어났다. 어제 한 잔 하고나서 9시도 되지 않아 자리에 들었더니 일찍 눈이 떠진 것이다. 오늘은 경비행기를 타고 나스카라인은 구경하는 일정이 잡혀있다. 그런데 나스카라인은 여기 이카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바로 날아가는 방법이 있고, 버스로 2시간 반 이상 달려 나스카로 가서 경비행기를 타는 방법이 있다. 비용은 버스를 타고 가서 경비행기를 타는 것이 당연히 저렴하겠지만 왕복 5시간이나 버스를 타야한다는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나스카라인에 참가하는 우리 팀은 모두 이카에서 경비행기를 타는 것에 동의했다. 이미선과 나는 오랜 논의 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경비행기를 타면 좌우에 앉은 손님들에게 교대로 지상의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곡예비행을 하기 때문에 멀미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앞으로 계속 고산지대를 여행해야 하는데 몸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여야 한다는 점에 의견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호텔의 아침식사는 아주 훌륭했다. 계란 오물렛과 빵, 요플레, 쥬스 등 메뉴는 비슷했지만 품격이 달랐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호텔 정원을 산책했다. 호텔은 상당히 넓은 부지에 큰 연못과 중소형 풀장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었다. 넓은 잔디밭에는 공작, 오리, 닭 등등 많은 동물들을 사육하고 있었고 거대한 열대성 식물들도 많았다.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 빙 도는데 3,40분은 걸린 것 같다.

 

나스카라인 경비행기를 신청한 사람은 모두 14명이다. 예약시간에 맞추어 경비행장으로 모두 같이 갔다. 신청자는 두 팀으로 나뉘어 경비행기에 탑승하여 하늘로 날아갔다. 돌아올 때까지 남은 사람들은 대합실에서 TV로 나스카라인 다큐 방송을 시청하며 기다렸다.

1시간 30분쯤 지나자 경비행기가 돌아왔다. 멋진 광경은 보았지만 절반쯤은 멀미에 시달렸다고 한다. 나는 평생 멀미라고는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과음하고 overeat 해본 경험은 있기에 그 심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보연 가이드는 점심 식사하러 plazavea라는 대형 슈퍼로 안내했다. 속이 미글미글 거리는데 식당으로 가느니 여기에 있는 시식코너에서 간단하게 핫도그나 햄버그, 샌드위치 등을 먹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단다. 센스있는 우리 보연씨!! 닭다리, 과일, 코카콜라, 잉카콜라 등 입맛에 맞게 이것저것 골라서 식사를 하고 저녁에 먹을 상추와 애플 망고도 구입했다.

 

식사 후 리마로 출발하기 위하여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날씨가 제법 더워서 에어컨을 작동시켜야 하는데 에어컨이 말을 듣지 않는 모양이다. 운전기사는 어제 올 때 들렀던 ASIA market 휴게소에서 앞으로 3시간을 더 가야하는데 이런 상태로 출발하기는 곤란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버스를 호출하는 것이다. 현지여행사의 배려라고나 할까. 기다리느라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약간 작은 버스를 갈아타고 편안하게 리마로 올 수 있었다.

 

8시가 조금 지나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은 402호를 배정받았다. 햇반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상추와 깻잎, 고추장, 멸치, 김 등 반찬도 푸짐하구먼. 다른 것은 몰라도 멸치는 칠레 넘어가기 전에 다 먹어야 한다. 칠레는 농수산물은 엄격하게 통제를 한다고 하니까. 내일 입을 옷을 챙겨놓고 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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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에 일어났다. 비행기로 다음 여행지 쿠스코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식사를 간단히 하고 640분에 호텔을 빠져나왔다. 공항에 도착하여 발권 받아 수화물을 부치고 나니 9시까지는 1시간 이상 여유가 있다. 하릴없이 공항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비행기 이륙시간이 1시간 지연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참내, 괜히 새벽에 일찍 일어났잖아~~ 925분 이륙예정이던 LATAM 2015편은 1020분에 이륙하여 한 시간 남짓 날라서 쿠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15인승 밴즈 승합차 2대가 우리를 맞으러 나와 있었다. 짐은 별도의 화물전용차에 실었다. 쿠스코는 버스가 다니기 어려운 좁은 길이 많다고 한다. 아르마스광장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쿠스코 시내 자유여행이 실시되었다. 쿠스코는 배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옛 잉카제국 사람들은 이곳을 세상의 중심이라 생각하였다. 해발 3,300m고산도시이지만 리마에서 3일간 단련이 되었는지 그다지 불편한 점은 못 느끼겠다.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는 500년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함락하고 도시를 재정비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잉카 건물을 부수고 그 위에 성당과 귀족들의 집을 지었다. 그 슬픔이 묻어나는 곳이 마로 아르마스광장 주변이다. 그렇지만 잉카문명을 잊지 않기 위한 쿠스코 사람들의 마음은 광장 중심에 있는 잉카제국의 황제 망고 카팍의 동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르마스 광장은 대성당, 레스토랑, 여행사, 토산품점 등으로 둘러싸인 관광의 거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오가고 있다. 대성당 앞에서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행사를 벌리고 있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광장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고 나서 대성당을 가보기로 했다.

 

25솔씩 50솔을 내고 입장했다. 그런데 입구에 사진촬영 금지 표식이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참내... 사진 기록이 없으면 오늘 이렇게 관람한 것도 수일 지나면 잊어버린다. 그냥 찍을 수 있도록 해 주지~~

1550년 건축이 시작되어 100년 후 완공된 대성당. 아르마스 광장에 접해 있는 이곳은 잉카시대의 비라코차 신전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은 300톤을 사용한 주()제단은 볼 만하다. 그 외에도 나무를 파내고, 그곳에 정교하게 조각을 한 제단 등 훌륭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400점의 종교화 중 메스티소 화가인 마르코스 사파타가 그린 최후의 만찬이 눈길을 끈다. 그림 속의 성찬은 쿠스코의 명물인 쿠이(모르모트). 지붕에는 1659년에 제작된 남미에서 가장 큰 종이 남아 있는데, 그 깊이 있는 울림은 멀리 40km 떨어진 곳까지 울려 퍼진다고 한다. 대성당에 모셔져 있는 갈색의 예수상은 2차례의 대지진 당시 예수상을 들고 밖으로 나오니 지진이 멈추었다고 하여 지진의 신으로 숭배되고 있다. 양측의 작은 교회는 마주보고 왼쪽이 헤수스 마리아 교회Jesus Maria, 오른쪽이 엘트리운포 교회 El Triunfo이다. 이 교회는 1536년 건립된 것으로 쿠스코 최초의 교회이다.

 

구경을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살짝 지났다. 이미선은 여행전문지에 나와 있는 일식전문 식당인 Kintaro로 가자고 한다. 지도를 들고 찾아봐도 잘 안 보인다. 결국 현지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였고, 경찰관 2명은 잠시 왔다갔다 하더니 찾아주는 것이 아닌가. 작은 골목 안에 숨어있어서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2층으로 올라갔다. 내부는 일식 다다미가 일부 깔려있었고 일본인으로 보이는 관광객 두 명이 꿇어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점심세트메뉴 25솔인 우동+샐러드를 시켰다. 도로 쪽에는 발코니가 있어서 아르마스 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이 식당을 찾아낸 즐거움을 음미했다. 20여분 지난 후에 나온 우동은 국물 맛이 깔끔하여 내 입맛에 딱 맞았다. 맛있게 먹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급히 우산을 펼쳐서 비를 피하며 아르마스광장을 다시 한 번 둘러보며 추가사진을 찍는 동안 비는 그쳤다. 유명한 ‘12각 돌이 있는 로레토 길로 들어섰다. 종이 한 장 조차 들어가지 않을 만큼 정교하게 쌓아올린 잉카 석조건축의 진수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이 구조물을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높은 성벽의 일부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석조구조물이 2층 높이의 그리 높지 않은 건축물의 담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떤 장비로 이렇게 정교하게 돌을 가공하였을까? 모양도 일률적이지 않고 왜 여러 가지 모양의 비대칭 돌로 쌓았을까? 이 정도 규모의 건축물에 이렇게 정교한 석조구조물을 설치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현대 건축기술로 이런 담장을 만들어 낼 수는 있을까?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다. 40년 가까이 건축을 업으로 살아왔지만 손톱만큼도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알 수 없음이 너무 억울하여 사진을 엄청 많이 찍었다.

내려오는 길에 알파카 옷을 취급하는 가게에 들렀다. 이미선은 알파카 스웨터가 한국에서는 수십만 원 한다면서 입맛을 다시더니 몇 개 고르는 것이다. 우리 며느리가 땡 잡았다.

 

시간이 되어 모이는 장소에 집결했다. 대기하고 있던 밴즈 승합차를 타고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가서 버스로 옮겨 탔다. 이제 우루밤바로 간다. 해발고도가 2,200m 정도이기 때문에 한결 숨쉬기가 수월하단다. 시골길 같은 조용한 도로를 2시간 정도 달려서 우루밤바 AGUSTOS URUBAMBA HOTEL에 도착했다. 호텔은 2층 건물로 아늑한 시골집 같은 분위기다. 116호를 배정받았다. 방이 넓어서 짐 풀기가 수월하여 좋다.

저녁식사로 누룽지를 끓였다. 누룽지에 라면 스프를 첨가하고 멸치에 고추장 발라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이보연 가이드가 오늘은 샤워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머리에 물기가 많으면 고산지대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했던가. 이미선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무시하고 샤워를 했다. 머리털도 얼마 없는데 머리도 금방 마르니까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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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분에 모닝콜이 들어왔고, 630분에 식당으로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730분에 출발했다. 오늘은 그 유명한 마추픽추를 방문하는 날이다. 남미여행의 핵심 포인트다. 아침부터 살짝 긴장이 되는 것 같다.

이 호텔에서 이틀을 묵기 때문에 가방을 챙길 필요는 없다. 버스 탈 때까지 40여분 여유시간이 있어서 호텔주위를 산책했다. 정원수 관리가 참 잘되어 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붉은색, 노란색 예쁜 꽃들도 많이 피어있어서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맑아진다. 복도식 임대아파트처럼 난간대가 설치된 2층으로 된 객실건물도 정원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정원 중간에 폭3m 정도의 원형 벤치를 만들고 중앙에는 조각품도 아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큰 돌을 세워놓았다. 무슨 의미일까? 글쎄~~

 

버스에 올라서 40분 정도 달려서 기차역에 도착했다. 이보연 가이드는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A4용지를 두 장씩 나누어준다. 자세히 보니 버스 티켓과 기차 탑승권이다. 이름과 출발시간, 금액 등이 적혀있다. 외국인이라서 탑승권을 이렇게 큰 종이에 프린터를 하여 주나? 역시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이것은 자원낭비로 보이는데~~

버스에서 내려 기차역까지 가는 길옆으로 모자, 가방, 옷 등등 일용품을 파는 잡화상들이 즐비하였다. 이 마을 이름이 오얀타이탐보라고 한다. 10여분 걸었나보다. 역 개찰구를 지나서 조금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기차에 올랐다. 나는 B37번 좌석이다. 좌석도 폭신하고 간격도 넓고 테이블도 있고 천정에는 대형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멀리 산봉우리도 구경할 수 있다. 이정도 수준은 되어야지.ㅎㅎ

830분에 출발한 기차는 1시간 30분을 달려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역사를 빠져나와 조금 올라가니 버스주차장이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마추픽추 입구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또 한 장의 A4 용지를 받았는데 마추픽추 입장권이다. 11시라고 찍혀있는 것으로 봐서 마추픽추는 입장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나보다. 152솔이라고 적혀있다. 우리 돈으로 54,000원이나 된다. , 페루는 조상을 잘 만나서 밑천 별로 들이지 않고 매년 엄청난 수입을 올리고 있구나. 마을버스는 20여분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서 마추픽추 입구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검표원은 단체손님들을 한쪽으로 세워서 입장 시켜주었다. 이보연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10분쯤 위로 올라갔을까. 마침내 드러나는 마추픽추의 위용!!! , 잉카인들은 이렇게 높은 곳에 이런 도시를 건설하다니!!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직접 눈으로 확인을 하니 정말 환상적이다. ‘감개가 무량하다는 말은 진정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리라.

보연씨는 망지기의 집주변에서 마추픽추 전체가 잘 나오는 위치를 골라주었고 우리는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면 가장 잘나온 사진을 골라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는다. 지금은 포르투갈에서 바라본 지중해가 깔려있지만 이번 여행을 마치면 틀림없이 여기서 찍은 사진 중에서 한 장을 고르게 되겠지. 그것을 생각하고 마추픽추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사진을 수십 장 카메라에 담았다.

보연씨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서 설명을 들었다. 귀족방도 있고, 왕이 거주하였을 거라고 추정되는 방도 있다. 이 방에만 화장실이 있다는 설명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로였으리라. 물이 자연스레 흐르도록 돌로 수로를 만들어 놓았다. 해발 2,400m 높은 산인데 물은 어디서 났을까?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도 아닌데~~ 건너편에 보이는 경사가 급한 봉우리를 와이나픽추라고 한다. 여기를 오르는 사람도 보였지만 내가 올라갈 마음은 들지 않는다. ‘콘도르 신전은 하늘과 제사를 담당하는 아푸 쿤투루신을 상징하는 신전으로 삼각형 모양의 커다란 두 개의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세 문을 가진 집은 마을의 지배자 계층이 거주했던 곳으로 추정한다. ‘태양의 신전은 정 동쪽에 창문을 낸 곡선의 타워로 태양신을 위한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창고지역은 곡식을 저장해 놓는 창고들로 구성된 지역이다. 메인광장 및 경작지의 규모로 봤을 때 이곳에는 약 8,000~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60도 이상 되는 경사지에 만들어 놓은 계단식 논도 혀를 내두르게 한다. 바위를 마치 진흙 주물 듯 가공하여 만들어놓은 작품들을 감상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2시간 30여분동안 세상에 둘도 없을 귀한 구경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마을버스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마을로 내려왔다. 안내책자에 실려 있는 Toto's House를 찾아서 대형피자와 셀러드로 점심식사를 했다. 옆에 강이 흐르는 전망 좋은 식당이었다. 구색을 갖춘 식당이라 음식가격에 10% 팁이 붙었다. 팁 문화가 별로 없다고 하더니 아닌데...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시장구경을 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관광지라 많은 식당과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무엇을 하나 구입하려해도 부피와 무게 때문에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패트병을 넣어 다닐 수 있는 캐리어가 눈에 띄었다. 막걸리 병을 넣기 안성맞춤으로 보여서 하나 샀다.

 

다시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버킷리스트 상단에 기록될 마추픽추를 좋은 날씨 덕분에 세세한 부분까지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는 즐거움이랄까. 내 생에 다시 오기 어려울 마추픽추에서 정말 멋진 구경을 하였다는 만족감이랄까.

저녁식사는 컵라면과 햇반으로 해결했다. 샤워를 하고나서 자리에 누웠지만 한참동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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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시에 일어나서 7시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가방을 문 앞에 내어 놓았더니 호텔 보이들이 모두 차에 실어주었다. 오늘은 잉카문명의 흔적을 따라 성스러운 계곡이라 불리는 쿠스코 근교를 탐방하는 일정이다. 먼저 오얀타이탐보로 갔다.

 

오얀타이탐보는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인상을 주는 작은 마을로 마을 전체에 시냇물처럼 순환하는 수로 시설이 정비되어 있다. 유적지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뒤로 가파른 경사면에 돌을 촘촘히 쌓아 만든 거대한 크기의 계단식 밭이 150m 정도의 높이까지 구획되어 있다. 계단식 밭 하나의 높이가 사람 키와 비슷할 정도로 높으며 큰 돌 사이사이에 작은 돌들로 틈을 메운 형태로 축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데 여기서 정말 깜짝 놀랄 광경을 보게 될 줄이야!! 계단식 밭을 끝까지 올라가면 잉카 제국의 돌담이 둘러진 광장이 나오며 그 가운데에는 높이 4m에 폭이 10m가 넘는 6개의 거대한 돌들이 얇은 돌을 사이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이다. 그것도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완전 접합체의 형태로. 도대체 이 돌의 의미는 뭘까? 이렇게 거대한 돌을 무슨 수로 높은 봉우리까지 올렸을까? 정말이지 잉카사람들은 돌을 가공하는 기술이 신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아니면 외계인의 도움을 받았든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상천외의 광경을 본 것은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버스를 타고 20분쯤 가다가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도로를 따라 깎아지른 바위산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보연씨가 그 바위산 정상부위를 가리켰다. 놀랍게도 캡술형 Room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다. 저런 호텔은 1박 하는데 400$을 지불해야 한단다. 암벽 등반하는 기분으로 올라가서 짚라인으로 내려온다는데 올라가는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목숨을 담보로 하고 꼭 저런 곳에서 하룻밤 묵고 싶을까?

 

다시 버스에 올라 꼬불꼬불 산길을 거의 1시간이나 달려서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잉카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고스란히 존재해온 살리네라스 염전이다. 해발 3000m의 거대한 언덕 비탈에 층층이 만들어진 염전으로 잉카인들의 지혜와 땀이 배어있는 곳이다. 염전은 새 하얀 색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온통 황토색이다. 염전이 자리해 있는 지대는 황토로 되어있는데다가 우기 때는 물의 증발량보다 공급량이 많기 때문이다. 오래전 바다였던 이곳의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주 짠 소금물을 작은 통로를 통해 약 2000여개의 계단식 연못으로 서서히 들어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대부분의 소금 연못은 넓이가 40평방미터를 넘지 않고 깊이 또한 30이상을 넘지 않는다. 모든 연못이 다각형의 구조를 갖고 있는 이유는 물의 유입이 쉽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잉카인들의 뛰어난 농업기술에 놀라고, 규모에 또 한 번 놀란다. 하나의 염전에서는 한 달 동안 약 700의 소금이 생산된다. 건기에 물이 가득 고여 있으며 물이 점차 증발하면서 소금은 투명하게 된다. 소금이 발목을 덮을 수 있는 만큼 쌓이면 판매를 위해 포장을 하기 시작한다. 소금밭의 크기는 가족 수에 따라 할당되고 소금은 조합형태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소금을 포장하여 판매를 하고 있었다. 소금을 살 사람은 사라고 하였지만 우리는 그냥 나왔다.

 

버스를 타고 비슷한 산길을 30분쯤 달려서 또 다른 마을에 도착했다. 마치 원형경기장처럼 생긴 모라이. 해발 3,600m의 석회암 고원에 있으며 원심형으로 된 계단식 다랑이 밭 모양으로 되어 있다. 높이는 약 70m 정도로 대형 동심원 모양으로 아래로 내려가도록 되어 있으며, 층마다 온도의 차이가 있어서 곡식을 시험재배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UFO가 이착륙하던 장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만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주변이 넓은 벌판이 많은데 하필 이곳에 저런 원형의 계단식 밭을 만들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건너편 멀리에는 5,720m의 사우아사라이 설산이 보인다. 모라이 주변은 경작지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는 않다. 동심원 안으로 내려가려다 올라올 일이 걱정이 되어 그만 두었다. 모라이는 세 개가 만들어져있는데 두 개는 건너편에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복구 중이라고 한다. 세상을 살다보니 이해가 안 되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당이 한 곳뿐이라 우리 일행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메뉴를 보고 각자 알아서 시켰는데, 우리는 송이구이와 샐러드를 시켰다. 밥과 감자튀김, 소고기, 송어 등이 쟁반에 담겨 나왔다. 여기도 쌀이 주식이지만 안남미라 입에서 퍼석퍼석하니 촉감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송어와 감자튀김 몇 개 집어먹는 것으로 식사를 마쳤다.

 

버스가 좁은 길을 빠져나오느라 애를 먹었다. 늘어나는 관광객을 수용하느라 버스 운행을 허가하였지만 도로망 확장은 앞으로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모르겠다. 다음 방문지는 삭사이와망이다. 도심을 지나면서 거의 2시간을 달렸나보다. 쿠스코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삭사이와망은 배부른 매라는 뜻이라고 한다. 잉카제국과 스페인의 마지막 전투가 여기에서 벌어졌는데, 시체가 산을 이루었고 매가 시체를 배가 부르도록 뜯어먹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 여기도 설명이 불가한 구조물이 떡 버티고 있구나!! 쿠스코가 잉카제국의 심장이며 배꼽이라고 한다면 삭사이와망은 표범 형상의 쿠스코의 머리에 해당된다고 한다. 규모의 웅장함에서 신전 또는 군사용 목적으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지만 수십 톤에서 수백 톤에 이르는 거대한 암석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 언제 옮겼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어서 여전히 신비에 쌓여 있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분석하여 1100년경 킬케 문화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거대한 석축도 돌과 돌 사이에 틈이 보이지 않는다. 성벽은 3단으로서 총 길이 1.1에 이른다. 원래는 4-5층이었다고 하며, 정상에는 많은 건물과 태양의 신전으로 추측되는 Myuqmarka 신전 탑이 있었다. 무육마르카는 높이 20m에 이르는 4층탑이다. 아마도 그 옛날 오직 종교적 신앙심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 등으로 잉카인들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큰 돌의 무게는 수십 톤에 이르며 특히 가장 큰 돌은 높이 5m에 무게 360톤 이라고 한다. 그것도 부근이 아닌 먼 곳으로부터 운송해왔다는 점에서 잉카인들의 역량과 신념이 매우 경이롭기까지 하다. 1950년 쿠스코를 폐허로 만들었던 대지진에서도 삭사이와망 유적은 굳건했다고 하니 거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것이 과연 인간의 육체적인 힘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버스를 타려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양팔을 넓게 벌리고 서있는 흰색의 예수상을 만날 수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예수상을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에서 본 것 같다. 그 때는 멀리 희미하게 예수상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여기에 있을 줄이야. 여기에서는 쿠스코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버스를 타고 쿠스코 시내로 들어와서 SAN AGUSTINEL DORADO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위치는 끝내주는 호텔이다. 503호를 배정받아 마당에 설치된 전망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숙소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소형금고도 있어서 여권과 달러는 금고에 보관하였다. 그런데 이동식 라디에이터가 작동을 하지 않아서 카운터에 얘기를 하였더니 다른 것으로 교체를 해 주었다. 저녁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왔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자 아르마스 광장에는 가로등이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형광색이 아닌 주광색 붉은 빛이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대성당 앞 계단에 앉아 이 아름다운 광경을 감상하며 여행의 진미를 느껴보았다.

저녁식사는 박형신 부부와 같이 관광책자에 소개된 UCHU Peruvian Steakhouse를 찾아갔다.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맛과 질이 뛰어나다고 되어 있다. 실내장식도 깔끔하다. 제법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도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주문하였더니 큼직한 고기가 식지 않게 달구어진 돌판에 얹혀 나왔다. 그런데.... 고기는 역시 우리나라 고기가 제일이지. 우리 입맛에 맞는 마블링이 어느 정도 배겨있어야 맛이 나잖아. 내 입맛에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체면치레로 조금은 먹었고 구운 감자로 배를 채웠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밤거리를 한가로이 거닐다가 9시쯤 숙소로 들어왔다. 페루에서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내일은 비행기로 볼리비아 라파즈로 들어간다. 가방을 모두 챙겨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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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분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720분에 호텔을 나왔다. 벤즈 승합차가 우리를 공항까지 태워다주고 돌아갔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애매하여 보연씨는 점심식사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면서 한인식당에 의뢰하면 김밥을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더러 김밥을 시켰지만 우리는 공항으로 가서 남은 페루 돈을 탈탈 털어 샌드위치를 샀다. 볼리비아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마치 국내선처럼 검색이 느슨한 모양이다. 빵이나 김밥은 핸드캐리어에 넣어 가도 된다고 한다.

쿠스코 공항이 국제공항치고는 조금 작은 편이다. 이용객도 많지 않아 티켓을 발부하는데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고 26A,B좌석을 받았다. 수화물을 부치는데 보연씨가 옆에서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 있다. 원래 수화물은 11개가 표준인데 우리는 3개나 되다보니 추가요금이 발생할 수 있어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단체라는 이점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앞으로 국내선을 이용할 기회가 많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다. 10시에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 반을 날아서 라파즈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하였다.

 

수화물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대우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남미에는 한국 승용차와 버스가 제법 많이 운행되고 있다. KiaHyundai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이다. 시내에 있는 ROSARIO HOTEL에 도착하여 226호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여기서 이틀을 묵으니까 오늘 저녁에는 양말이나 속옷 등 밀린 빨래를 좀 해야겠다. 각자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보연씨는 호텔에 비치된 지도를 나누어주면서 시내투어를 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객실은 하루 이틀 지내기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겠다. 싱글 배드가 두 개 놓여있고, 라디에이터는 온기를 잘 내뿜었고, 욕조는 없었지만 샤워기는 달려있었다.

 

1시간 남짓 휴식을 취한 후에 밖으로 나왔다. 역시 볼리비아 화폐로 환전하는 일이 먼저다. 보연씨가 알려준 대로 호텔을 나와 오른편으로 500m 남짓 갔을까. 환전하는 가게가 보였다. 100$을 주니까 690볼을 내어준다. 일단 물부터 먼저 구입하여 숙소 냉장고에 넣었다. 남미는 먹을 수 있는 생수를 주는 곳이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구입하여야 한다. 어쩌다 호텔에서 객실에 한두 개씩 비치하기도 하지만 작은 호텔은 그런 서비스가 없다. 라면을 끓이려고 해도 물이 있어야지.

 

호텔에서 받은 지도를 들고 시내구경을 하러 나섰다. 산프란시스코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여기가 라파즈의 중심지다. 산프란시스코 성당과 박물관은 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란사 시장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 괜히 들어갔다가 소매치기라도 당하면 곤란하잖아. 우리나라와 다른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는 것도 재미있다. 슈샨보이들이 구두 통을 앞에 두고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구두를 닦을 사람은 선 채로 신발을 구두 통에 얹어놓는 모습이 이채롭다. 우리나라는 앉아서 구두를 닦든지 아니면 맡겨놓고 시간이 되면 찾으러 가잖아.

여행자 거리로 올라갔다. 토산품 판매점, 온갖 생필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차 없는 거리도 눈에 띄네. 요상한 복장을 한 마네킹 옆에서 사진도 찍었다. 쳐다보기도 징그러운 동물의 시체를 파는 가게도 있다. 대지의 신 파차마마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주술사들이 미래의 길흉을 점치는데 이용하는 재료들이다. 라마나 위폐 등을 술과 함께 태우며 타 들어가는 모습의 형태로 주술사들이 길흉을 결정한단다. 전통 종교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산 증거가 된다고 보면 된다. 또 이사를 할 경우, 라마의 미라를 묻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라마의 미라, 각종 말린 곤충, 온갖 약초와 주술품 등을 팔고 있는 곳 - 마녀시장이다.

옷가게에 들렀다. 내 눈에는 귀여운 우리 손녀에게 줄 선물만 눈에 들어온다. 알파카로 만든 예쁜 옷이 걸려있어서 흥정을 하여 하나 구입했다. 흥정하는 것도 재미있네...

호텔로 들어오는 길에 애플망고를 조금 샀다. 망고를 깎을 칼은 온 시장을 다 뒤져서 겨우 하나 구할 수 있었다. 라파즈가 볼리비아의 수도라고는 하지만 여기는 구시가지라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하면 되겠다.

 

저녁식사는 누룽지를 삶아 간단하게 먹고 킬리킬리 전망대 야간투어에 참여했다. 16명이상 동참하면 버스 임대하여 60볼이면 야간투어가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딱 16명이 신청하는 바람에 성사되었다. 호텔에서 전망대까지 거리는 얼마 아닌 것 같은데 가는 길이 복잡하다. 일방통행 길이 있어서 빙 둘러 우회하는 것 같다. 30분 정도 차를 탔나보다.

우리나라는 그린벨트가 지정되어 있어서 일정높이 이상은 개발을 할 수 없지만 남미는 대부분 그런 제한이 없다. 라파즈도 산 능선을 따라 건물이 촘촘히 들어서 있고, 부산의 감천마을이나 수정동 산동네처럼 밤에는 야경이 장난이 아니다. 불빛이 없는 곳은 바위산이나 절벽이라고 한다. 전망대라 하여 산 정상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경사가 제법 심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중간에 차를 세우면서 다 왔다고 하는 것이다. 8부 능선까지는 올라온 것 같다. 출입구는 있었지만 입장료는 없다. 전망대는 넓고 둥글게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어린이 놀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이 정말 멋지다. 오늘이 보름인가? 둥근달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남반구나 북반구나 같은 보름달이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보름달과 찬란한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 이미선이 가장 멋지게 나온 사진을 한 장 골라서 가족 카톡방에 올리면서 안부를 전했다.

 

 

310()

원래 오늘은 자유일정으로 티티카카 호수투어를 선택 관광할 사람들은 신청하여 가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100$씩이나 내어서 버스를 타고 먼 길을 가서 배 타고 호수 구경하고 오는 일정에 대하여 대체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꼭 가야겠다고 주장하는 팀이 없는 바람에 해발 3,812m의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존재하는 호수구경은 우리 스케즐에서 삭제되었다. 티티카카 호수에는 칠레와 전쟁에서 바다를 빼앗긴 볼리비아가 해군 군함을 배치하여 훈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하네, 군함은 바다에서 떠다니는데 어떻게 그 높은 호수까지 올렸을까? 글쎄~

그러다보니 오늘 일정은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아서 아예 모닝콜이 울리지도 않았지만 8시쯤 식당으로 내려가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9시쯤 자유 투어를 하기 위하여 밖으로 나왔다.

 

지도를 펴들고 먼저 찾아간 곳은 무리요 광장이다. 어제 둘러보았던 산프란시스코 광장을 지나고 란사시장 앞에 설치된 구름다리를 건너 몇 블록을 가니까 유럽풍의 고건물들이 나타나고 그 중앙에 광장이 있었다. 라파즈의 메인광장으로 대성당과 국립미술관, 대통령궁이 광장을 에워싸듯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광장은 비둘기의 천국인가. 엄청나게 많은 비둘기들이 볼리비아 독립전쟁에서 활약한 무리요 장군 동상에 빼곡히 앉아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징그럽기도 하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오물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대성당과 대통령궁은 입장 불가여서 외관만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의 조그만 박물관들이 밀집된 하엔 거리를 찾아 갔다. 지도상으로 보면 한 블록 위로 가서 왼편으로 네 블록을 가면 된다. 이런 곳에서는 구글맵을 활용하면 한결 수월할 텐데 익숙하지 않아서 애를 먹었고 결국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찾을 수 있었다.

초입에 보연씨가 추천하던 MAMANI Gallery가 있어서 들어갔다. 여기는 일본인 작가의 개인 소장품을 무료로 전시하는 곳이다. 그런데 사진촬영 금지표식이 붙어있다. 사진이 없으면 구경하고 나서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후기를 적으면서도 입구에서 찍은 사진만으로 들렀다는 기억만 날뿐 무엇을 보았는지 가물가물하다.

이 거리의 끝에 있는 건물에서 4군데 박물관을 모두 볼 수 있는 종합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40볼을 주고 두 장을 사서 첫 번째 건물부터 들어갔다. 후안 데 바르가스 박물관이다. 이런, 제기럴... 여기도 사진촬영 금지다. 뭐 대단하다고 사진을 못 찍게 하지? 살짝 짜증이 난다. 이곳은 볼리비아 역사를 미니어처로 전시해 놓은 곳이다. 두 번째 무리요 박물관은 볼리비아 혁명을 지휘했던 무리요의 집이다. 생전에 사용했던 가구와 용품들, 여러 가지 수집품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세 번째 리토랄 박물관은 1879년 칠레와의 전쟁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고, 네 번째 황금 박물관은 잉카 건국 이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황금으로 된 장신구와 유물들을 볼 수 있다. 그냥 눈으로 보고 고개만 끄떡거리다가 나왔다. 무엇을 보았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박물관에 들렀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책에는 악기박물관도 적여 있는데 이것은 어디에 있는지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점심식사를 하러 책에 나와 있는 ‘Pacena La Saltena 센트로점을 찾아갔다. 여기도 지도에 기재된 위치와 달라서 찾는데 애를 먹다가 지나가는 젊은 친구에게 물어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볼리비아의 유명한 살테냐체인점이다. 메뉴 사진에는 두 개가 그려져 있어서 시켰는데 하나만 접시에 담겨 나와서 살짝 실망하였지만 그냥 먹을 만한 수준이었다. 이미선은 맛이 있다고 입맛을 다셨지만 하나 더 시키자고 하니까 사양한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버스투어에 참여했다. 어제 간단히 전체 회의를 하면서 버스투어에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보연씨의 권유로 전원 참석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참석자 수에 따라 비용이 달라진다. 200볼씩 내었으니까 35,000원짜리 관광 상품인 셈이다. 호텔 앞에 시내투어 버스 정유소가 있어서 바로 탈 수 있었다.

 

2층으로 된 투어버스에는 현지인 가이드가 있어서 버스가 지나가는 곳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현직 영어교사인 송영란님은 실시간 번역을 하여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조금 가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2층으로 올라갔던 사람들은 1층으로 내려오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는 그쳤다.

시내 몇몇 유명지를 돌아본 후 버스는 어제 저녁에 올랐던 낄리낄리 전망대로 갔다. 밤에 보는 것과 낮에 보는 것은 완전 다르지. 20분 시간을 주는 바람에 라파즈 시내와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어제 밤에 보았을 때 불빛이 없던 부분은 지금 보니까 시커먼 암벽이나 급경사지 혹은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이었다.

버스는 40분 남짓 도심을 지나서 달의 계곡으로 갔다. 매표소는 허술한 천막에서 직원이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기존 매표소가 화재로 소실되는 바람에 임시로 천막생활을 하고 있단다. 달의 계곡은 진흙으로 이뤄진 지층이 오랜 기간 침식되어 형성된 곳이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우주인인 닐 암스트롱이 이곳에 방문하여 마치 달과 흡사하다는 감탄사를 남겼는데 이것이 영혼의 계곡이라 불리던 이 지역이 달의 계곡이라 새로 명명되어 라파즈 관광 명소로 부각된 이유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어쩌자고 신은 이런 작품을 볼리비아에 선사하셨을까? 상당히 넓은 면적이 마치 설악산 공룡능선, 중국 장가계를 방불케 하는 오묘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흙이다 보니 세월이 가면 계속 침식되어 언젠가는 평지로 변하게 되겠지. 그렇지만 내 눈에 비치는 이곳 달의 계곡은 지구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분명 이렇게 신비로운 광경을 볼 수 있음을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1시간 정도 달의 계곡을 둘러보았다.

돌아오면서 버스투어 가이드와 협의하여 텔레페리코를 타보기로 했다. 라파즈는 분지형 고산도시라 지하철이나 새로운 도로를 개설하기 어려운 곳이다.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라파즈는 곳곳에 케이블카(텔레페리코)를 설치하여 운행하고 있다. 지하철 노선처럼 색으로 구분된 여러 노선이 있다. 우리는 타봤다는 경험이 필요하기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탑승장으로 가서 푸른색 케이블카를 탔다. 탑승권을 3볼로 저렴한 편이다. 10분 정도 타고 가면서 라파즈 신시가지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하여 COREA TOWN이라고 적혀있는 한국식당으로 갔다. 520분쯤 도착하였는데 저녁 6시부터 문을 연다면서 40분간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별 희한한 규정도 다 있구나. 식당 개장 시간도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40분간 근처 쉼터에서 앉아 쉬었다가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서 식당업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만든 반찬은 하루가 지나면 재사용 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김치는 미리 담가두어야 하는데, 이곳 위생당국에서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1년에 한 번씩 조사가 나오는데, 오늘도 1000$이나 벌금을 내게 생겼다고 하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대사관을 통해서 아무리 설명을 해도 소귀에 경 읽기라고 한다. 여기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김치에 대한 소문도 못 들었나? 영업을 계속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겠단다.

김치찌개와 설렁탕을 시켰다. 아주머니 음식솜씨가 썩 괜찮은 편이다. 오랜만에 입맛을 사로잡는 맛있는 식사를 했다. 170볼인데 25$를 지불했다. 식사를 마치고 택시에 분승하여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비행기로 우유니로 간다. 이 구간은 수화물 무료 운송이 20kg로 제한되어 있다. 가방에 들어있는 무거운 짐은 핸드캐리어 할 수 있도록 들어내어 무게를 조정했다. 그런데 고산지대이다 보니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 두 번만 하면 머리가 어지럽다.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취한 다음 다시 가방을 챙겼다.

종일 돌아다니느라 많이 피곤하였나보다. 샤워하고 자리에 누우니 바로 잠이 들었다.

 

 

311()

5시에 일어나서 6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630분에 공항으로 출발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공항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우리는 쉽게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수화물을 보낼 때는 은근히 걱정이다. 가방 무게가 20kg을 초과하지는 않았지만 3개를 모두 더하면 45kg이나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단체라는 이점이 적용되었는지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앞쪽인 9A,B 좌석이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 앞쪽 좌석 손님들부터 먼저 타게 하여 비행기 안에서의 혼선을 줄이는 방법은 권장할 만하다. 작은 가방과 봇짐을 선반에 얹고 자리에 앉았다. 840분에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 정도 날아서 우유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주차장에는 4륜 구동 SUV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박형신 부부와 함께 타고 공항을 빠져나와 마을로 진입했다. 이 마을에서 목이 긴 장화를 하나씩 지급받았다. 우유니는 소금사막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우기이기에 소금사막은 물로 덮여있다고 한다. 장화를 신어야 들어갈 수 있단다. 장화 사이즈가 맞지 않아서 다른 장화를 가지고 오는 시간에 잠시 마을 구경을 하면서 2리터 물을 두 병 구입했다.

 

SUV를 타고 기차무덤으로 갔다. 1900년대 초중반 볼리비아의 은 광산이 호황기를 맞던 그 시절 알티플라노 고원을 오가던 기차는 폐광과 함께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이 우유니 소금을 가져가기 위하여 철로를 부설하면서 막대한 돈을 투자했으나 소금 값의 폭락으로 철수하고 손을 떼는 바람에 폐차된 녹슨 기차가 소금호수 가운데에 남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온갖 낙서로 뒤덮인 채로 방치된 기차와 오묘한 빛깔의 하늘은 어떻게 보면 세기말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많은 관광객들이 고철이 된 철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이미선과 나도 좋은 배경을 찾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쓸모가 없게 된 기차와 철도레일을 용광로에 넣어 재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운반비가 더 많이 든다고 판단할 것일까? 설마 이렇게 기차무덤이라는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세상일은 모른다니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수도 있다니까.ㅎㅎㅎ

 

차를 타고 콜차니 염전마을로 들어갔다. 여기도 조합을 형성하여 공동으로 소금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소금을 살 마음은 없었기에 밖으로 나와서 이곳저곳 구경을 하다가 휴대폰을 넣어 다닐 수 있는 크로스백을 발견했다. 내 휴대폰백은 허리에 차는 형태라 걸어 다니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30볼 주고 산 크로스백은 휴대폰과 여권과 달러를 넣어도 보기에 어색하지 않았고 휴대하기 편했다.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들어갔다. 해발 3,653m에 면적 12,000로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만 하단다. 온 세상이 하얀빛으로 빛난다. 눈이 부셔서 선 그라스를 짙은 색으로 바꿔야 했다. 아득하게 멀리 보이는 것이 지평선인지 수평선인지 분간이 안 된다. 소금사막으로 들어서서 제법 5,6분 달렸을까. 가로 세로 8m, 높이 10m 정도의 성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나타났다. 소금 벽돌로 만든 구조물인데, ‘DAKAR BOLIVIA’라고 적혀있다. , 여기가 그 유명한 죽음의 레이스 다카르 랠리가 벌어지는 코스의 일부였구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프랑스 파리를 출발하여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까지 약 9km를 누가 빨리 도착하는지 가리는 경기다. 2008년 랠리 코스 중 하나였던 모리타니 인근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는 바람에 대회가 취소된 뒤, 2009년부터 남미로 개최지를 바꾸어서 열리고 있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전통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대회 이름은 다카르 랠리도 부르고 있다. 이미선과 나는 한사람씩 구조물 양쪽 가에 서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조금 더 가니까 세계 여러 나라 국기가 펄럭이는 장소가 나타났다. 옆에는 허름한 단층건물이 있었다. 예전에는 호텔로 사용하던 곳인데 지금은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만국기 속에 태극기가 2개나 꽂혀있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포즈를 잡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소금사막의 흰색과 하얀 구름의 흰색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런 장면을 놓쳐서는 안 되지. 어떤 포즈를 지어도 배경이 너무나 멋지기에 좋은 사진이 나올 것 같다.

우리 팀원들 모두 흩어져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을 때, 현지 여행사에서는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의 차량이 모두 6대 인데, 3대씩 줄을 세워놓고 중간에 천막을 쳐서 그늘을 만든 후에 준비해온 음식으로 점심식사 상을 차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동식 테이블을 쭉 펴놓고 흰색 천으로 커버를 씌운 등받이가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양쪽으로 진열해 놓으니 세상에서 이런 멋진 장소가 또 있을까? 전면에는 대형 태극기를 걸어놓고 그 앞에 음식을 마련하여 간이뷔페 식당을 꾸려놓았다. 차례차례 나가서 준비된 음식을 쟁반에 담았다. 테이블에는 와인과 콜라도 한 병씩 배치되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환대를 받는 우리 팀원들 얼굴에는 모두 웃음꽃이 피어났다. 양념이 된 고기도 있고, 가지 졸인 것 등등 대여섯 가지 음식이 나왔지만 나는 삼계탕 맛이 나는 닭죽이 제일 맛있었다. 소금사막 한가운데서 와인을 곁들이며 즐겁게 식사를 하는 모습은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사람들은 조그만 정성에도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점심상은 제법 경력이 쌓여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작은별 여행사를 통하여 남미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큰 행복임을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을 정리한 다음 작은 미니어처를 이용하여 확대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가졌다. 작은 공룡을 카메라 앞에 놓고 부부는 5,6m 뒤에서 도망가는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으면 마치 공룡을 피하여 도망가는 사진이 된다. 또 작은 지프를 앞에 두고 뒤에서 운전하는 흉내를 내는 사진을 찍으면 소금사막에서 4륜 구동 자동차를 신나게 운전하는 사진으로 확대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것도 재미있네~~ 여행사에서 배포한 안내문에 사진포즈를 연구하라고 적혀있더니 이런 행사를 하려고 그랬나보다.

 

20여분 달려서 제법 건사하게 보이는 소금호텔(CRISTAL SAMANA HOTEL)에 도착했다. 방향으로 봐서 소금사막 입구로 다시 나온 것 같다. 규모가 상당하다. 홀 바닥은 돌 마감이지만 소금을 깔아서 마무리한 부분도 있다. 벽체도 흰색 페인트를 칠한 부분도 많아서 대체로 너무 밝은 느낌이다. 422호를 배정받아 복도를 따라 가는데 바닥은 울렁울렁 쿠션이 있다. 소금을 깔고 그 위에 장판지를 덮은 것 같다. 422호라 해도 4층이 아니고 1층인데 4구역을 뜻하는 것 같다. 미로처럼 긴 복도를 따라 한참을 가니까 4구역이 나온다.

방안에도 소금으로 장식을 해 놓았다. 벽체는 소금벽돌로 마무리하고 그 위에 황새처럼 다리가 긴 새를 새겨놓았다. 긴 의자도 소금을 압축하여 만든 것 같다. 폼은 나지만 딱딱해서 조금 불편하기는 하다. 가방을 들여놓고 1시간 정도 쉬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장화를 신고 나갔다. 물에 잠긴 소금호수로 가는 것이다. 30분정도 달렸을까. .... .... .... 이게 뭐지? 거울처럼 평평한 소금 사막이 10cm정도 물에 잠겼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넓은 소금사막이 지구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된 것이다. 그리고 멀리 지평선의 산과 구름이 정확하게 대칭이 되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세상에나~~

이게 실화인가?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 어떤 감탄사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멍하니 쳐다보는 수밖에.

정신을 차리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여기야말로 대충 아무렇게나 눌러도 멋진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곳이다. 카메라와 휴대폰으로 번갈아가면서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으로 찍어야 고국에 계시는 친지들에게 자랑질(?)을 할 수 있지~~

3명이 손을 잡고 삼각형 형태를 유지하는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다. 중앙에 선 사람은 아귀힘이 있어서 꽉 잡아주어야 제대로 모양이 나온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현지여행사에서 또 이벤트를 준비한다. 이번에는 사각 의자를 사람 수대로 일렬로 죽 늘어놓았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보연씨가 시키는 대로 율동을 취했다. 이런 장면을 폰카메라에 동영상으로 담으니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기막힌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이 화면은 볼리비아는 wifi가 안 되는 바람에 칠레에 가서 받아볼 수 있었다.

 

현지여행사에서 약간의 먹거리를 내어 놓았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술잔에 붉은색, 노란색, 녹색의 술(볼리비아 국기 상징)이 섞이지도 않고 얌전히 담겨있다. 모두 한잔씩 들고 큰소리로 건배를 외치며 맛있게 들이켰다. 나는 와인을 한잔 더 받았다. 이렇게 좋은 날은 두어 잔 받아도 된다.

우리 일행 중의 카메라전문가 하하바우님은 모델인 부인을 우의를 입혀서 우유니 소금물에 누워서 포즈를 잡게 하여 작품사진을 찍는 것이다. 우의를 입고 물 위에 누울 생각을 어떻게 하였을까? 진정 프로다운 모습이다.

맑은 날씨에 서쪽 지평선으로 구름이 살짝 걸려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시간이 흘러 태양이 서서히 기울자 이번에는 정말 황홀한 풍광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붉게 물든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빛나고 있는 것이다. 하늘에 태양이 하나뿐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정말 최고의 석양을 볼 수 있었던 기쁨에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지난 7일 마추픽추와 오늘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내 기억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번 남미여행에서 본전은 다 뽑았다. 나머지 여행은 보너스로 생각해도 되겠다. 손끝이 차츰 시려온다. 이제 호텔로 돌아갈 시간이다.

 

호텔에 들어서니 중앙에 설치된 난로에 나무 장작이 타고 있었다. 사막이라 해만 지면 기온이 급강하하는 현상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는데 호텔에서는 미리 불을 피워 놓았던 것이다.

저녁식사는 호텔 2층 식당에 마련되어 있었다. 나름 제법 괜찮은 메뉴를 선보였지만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름다운 소금사막의 광경과 평생 잊을 수 없는 석양을 생각만 해도 배가 부르다. 형식적으로 감자와 죽을 조금 가져와서 맛만 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행여 별을 볼 수 있을까하고 옥상으로 살짝 올라가보았지만 구름에 가렸는지 별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다. 오늘밤 잠을 잘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소금사막에는 110m 두께의 소금 층이 11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두꺼운 층은 20m에 이른다. 전체 약 100억 톤의 매장량이 있고, 매년 25만 톤의 소금을 채취하고 있다. 휴대전화, 노트북의 배터리, 핵융합 원료로 사용되는 희소광물인 리튬의 매장량이 540만 톤으로 전 세계 1/3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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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모닝콜도 없었지만 8시에 일어나서 9시에 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였고 10시에 호텔을 나왔다. 쉬는 시간에 호텔을 둘러보았더니 지은 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외벽페인트가 벗겨지고 보수해야 할 부분도 많이 눈에 띄었다. 벽에 그려놓은 대형 추상화가 인상적이다. 장화를 지급받았던 우유니 마을로 가서 장화를 반납하고 보급품을 실은 다음 알티플라노 고원으로 들어갔다. 해발 4,000m 고원지대를 달리지만 높은 곳이라는 느낌은 별로 없다.

 

두 시간을 달려서 은 광산 개발로 부촌이 된 산크리스토발 마을에서 잠시 쉬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도 제법 괜찮게 보이는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산 쪽에 있었는데 광산이 개발되는 바람에 원래모습 그대로 해체하여 이곳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문이 잠겨있어서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오를 수 있는 망대에 올라 교회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가게에서 1볼 주고 산 땅콩은 고소하니 맛이 좋았다.

 

30분 정도 더 달려서 쿨피나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중앙에는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것 같은 탑이 세워져 있었다. 이 마을에 볼리비아의 대통령이 방문하였는데 방문 기념으로 이 지역에 자주 발생하는 회오리바람을 형상화하여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올라갈 수 없도록 문이 닫혀있었다.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음식은 아까 우유니마을에서 공급받았고 여기에서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홀만 빌렸다고 한다. 좌우간 이곳 사람들 손은 크다. 준비하여 내어놓은 음식의 양이 어찌나 많은지 절반도 먹지 못하고 남겨 놓는다. 몇 번 경험하였으면 양을 줄여서 내어 놓아도 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것을 보니 애가 탄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알티플라노 고원을 달렸다. 1시간 남짓 달려서 민물호수가 있는 시크릿 라군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집은 몇 채 없었다. 벌판에는 야마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야마는 소목 낙타과에 속한 포유동물로 '라마'라고도 한다. 야마는 야생상태로는 현존하지 않는데 잉카 문명 시대부터 짐 운반을 위한 가축으로 사육되어 왔다. 대부분 남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털, 가죽, 기름을 얻기 위해 사육한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야마와 알파카는 어떻게 다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보연씨를 따라 호수로 갔다. 가는 길옆으로 갈색의 대형바위들이 솟아있다. 표면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것도 있고, 세로로 금이 간 것처럼 절리가 생긴 것도 있다. 모두 심한 모래바람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새머리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물개 몸통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단한 작품들이다.

10여분 걸어서 호수로 갔다. 맛을 보니 짠맛은 느껴지지 않았고 호수에는 오리 몇 마리가 노닐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디서 물이 들어오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알고 보니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지상천이라고 한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대부분 지상천이다. 깨끗한 호숫가에 앉아 험상궂게 솟은 바위를 바라보며 잠시 감상에 젖어보는 것도 괜찮은데~~

 

30분 남짓 달려서 민박집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 바람이 만든 버섯처럼 생긴 작품이 서 있어서 이곳 바람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민박에서 하루 묵을 요량이었으나 전기가 들어오는 새로운 민박집을 찾아내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천만다행이다. 전기가 없을 것에 대비하여 충전지를 여러 개 준비하였다. 숙소도 다인실을 사용한다고 하여 침낭까지 챙기느라 가방이 비좁았는데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해소된 것이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 고향에 가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호롱불을 사용하던 집이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전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멀리 볼리비아까지 와서 그런 세계를 경험하나보다 예상했지만 기회가 사라졌다.

이 민박집도 신관과 구관이 있었는데, 구관을 시설이 많이 낙후되어있다고 하였다. 뽑기를 하여 다행히 나는 신관 16번방을 배당받았다. 퀸 사이즈 침대와 화장실이 있었다. 방이 좁아서 가방을 다 열수가 없었지만 샤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이었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흰죽이 있어서 한 그릇 비울 수 있었다. 내일은 새벽 3시에 기상하여 4시에 호텔을 나간다고 한다. 난방시설이 불량하여 오리털 점퍼를 입어야 했다. 샤워를 하고 와인 한 잔 하고나서 바로 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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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일어나야한다고 생각을 해서 그런지 새벽 1시에 잠이 깼다. 오리털 파커 덕분에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식당에서 딱딱한 빵 한 조각에 계란 후라이 하나로 초라한 식사를 하고 나왔다. 여행 다니다보면 때에 따라 이런 식사를 할 수도 있지 뭐. 새벽 3시에 기상시킨 이유는 알티플라노 고원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이른 새벽이라 추울까싶어서 중무장을 하였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어두운 새벽길을 2시간정도 달려서 홍학 2만 마리가 놀고 있다는 콜로라다 호수에 도착했다. 홍학(플라멩고)은 크게 5종류로 나뉘는데 여기서는 2종류의 홍학을 볼 수 있다. 제임스 플라멩고는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띄고 있고, 안데스 플라멩고는 끝부분이 검은색을 띄고 있다고 한다. 어둡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있는 홍학은 꼬리 부분이 검은 것으로 봐서 안데스 플라멩고인가 보다. 수백 마리씩 무리를 지어 호수에 진을 치고 있다. 무리마다 지도자가 있는지 한 마리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그 뒤를 수백 마리가 따라가는 형상이다. 새벽이라 날아가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간혹 날기도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조용히 호수에 내려온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일출은 볼 수가 없었다. 해발 4,000m 고원에서 해맞이를 할 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한 시간정도 홍학구경을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본격적으로 고산지대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어떻게 생각하니 세상 참 안 고르다. 우리나라는 대체로 해발 400m가 넘으면 대부분 산이고 계곡이다. 그런데 여기는 해발 4,000m 고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평탄한 길로 차가 달릴 수 있잖아.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랐는지 주변은 온통 3~4cm 두께의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내려서 만져보고 밟아보고 싶지만 차는 무심하게 제 갈 길만 재촉한다. 내렸다가는 차 안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겠지.

 

한 시간을 달려서 화산활동이 잠시 정지되어 있다는 리깐부르 화산에 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황산가스의 메케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멀리서 가스가 분출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현지여행사 가이드는 잘못하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간헐천에 빠지면 뼈도 못 추린다는 강력한 경고를 하고 자기가 밟은 곳만 뒤따라오라고 한다. 그 말에 주눅이 들어 조심스레 가이드 뒤를 따랐다. 여기저기서 흰 연기를 뿜어내고 있고 진흙탕이 끓고 있었다. 그렇지, 화산지대는 어디서나 끓고 있는 진흙 죽이 있고 그곳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오른다. 일본 아소산에 갔을 때는 바람이 입구 쪽으로 부는 바람에 연기가 솟아나오는 분화구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돌아 나왔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 민속촌에서도 간헐천과 따뜻한 온천수를 구경할 수 있었지. 그런데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괜찮을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엄청 큰 부담이 될 텐데. 죽고 사는 것은 하느님이 정해주시는 거라 생각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었다. 털어도 잘 틀리지 않는다. 털만큼 털고 나서 차에 올랐다. 40여분 달려서 노상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왔다. 보연씨가 입장권을 끊어왔고, 허름한 가건물로 들어가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노천탕은 남녀 구별 없이 수영복만 입으면 들어갈 수 있었다. 탕이 두 개 있었는데 별 차이는 없다. 물이 계속 흐르는 구조여서 탕의 가장자리는 물때가 끼어 매우 미끄러웠다. 조심하여 탕으로 들어갔다. 물 온도가 30도 정도 될 것 같다. 바깥 공기는 살짝 추웠지만 따뜻한 물속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다. 20분 정도 탕 속에 있다가 나왔다. 옷 갈아입는 장소는 너무 불편하다. 대충 닦고 나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런 시설로 관광객을 맞아하다니. 탕의 물때도 수시로 청소를 하면 그렇게 미끄럽지 않을 텐데. 이렇게 운영을 해도 관광객이 찾아온다는 배짱장사인가.

 

SUV 사륜구동 차는 칠레 국경을 향해 알티플라노 고원을 계속 달렸다. 나는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지 휴대폰 고도계로 계속 확인해보았다. 4,650m가 가장 높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언덕을 넘으니 더 높은 곳이 나타난다. 결국 4,950m까지 찍은 다음 내려가는 것이다. 50m만 더 올랐더라면 5,000m고지를 넘어서는 건데. 아쉽네....

매끄럽지 못한 산길을 1시간 반가량 더 달려서 칠레 국경근처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은 샐러드와 감자튀김, 스파게티 등이 나왔다. 마요네즈를 살짝 얹어 조금 먹었다. 콜라는 두 잔이나 마셨다.

 

식당에서 300m쯤 떨어진 곳이 칠레 입국장이다. 3일간 우리를 태워주었던 SUV차량을 모두 돌려보냈다. 이 친구들은 8시간을 운전하여 우유니로 돌아간단다. 우리는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감사의 뜻을 전하려고 하였는데 보연씨는 충분할 정도로 보상을 했다고 한다. 우리 때문에 다음에 올 관광객들에게 부담을 줄 수는 없잖아.

칠레는 짐 검사가 까다롭기로 이미 정평이 나있어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뭐든지 재수 없으면 걸릴 수 있다. 입국장에 들어서니까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한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정전으로 인하여 입국심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냥 차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내참, 아니꼬와서. ‘이런 대접을 받으며 꼭 칠레에 들러야 하나하는 의아심도 들었다. 거의 1시간을 낭비하였을까. 차에서 내려오라고 한다. 한 사람씩 사무실로 들어가서 여권을 보여주며 입국심사를 받았다. 그리고 가방을 모두 검사대에 올리게 하여 하나하나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통조림이나 진공 팩은 괜찮다. 김평식님 가방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은 먹다 남은 오징어였나? 애매했지만 주의만 주고 그냥 담아주었다. 오래 걸릴 것 같던 짐 검사는 예상외로 30여분 만에 종료되었다. 버스를 타고 의기양양 칠레로 들어갔다.

 

해발 4,600m인 입국장에서 해발 2,600m인 깔라마 시내까지 계속 내리막이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면 아주 재미있겠네.ㅎㅎ 두 시간 정도 달려서 PARK HOTEL에 도착하였고 127호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호텔은 시 외곽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다. 잠시 호텔을 나와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구경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서 바로 호텔로 들어왔다. 여기는 내일 비행기타고 산티아고로 가기위한 간이역이라고나 할까.

방에서 누룽지를 끓여 먹으려고 포터를 연결했더니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웬일이지? 칠레의 전기콘센트는 세로로 구멍이 세 개 뚫려있어서 우리가 준비한 만능 어댑터로도 해결이 안 된다. 별 수 없이 방에 있는 전기포터에 물을 끓인 다음 누룽지를 푹 고아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일정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포터가 고장 나면 안 되는데...

 

브라질 대통령이 코로나19 양성이라는 뉴스가 나왔다. 아직 여행일정의 절반도 소화하지 못했는데 이런 소식이 들리면 어떡하나. 새벽에는 겨울옷을 입었지만 여기는 30도를 오르내리는 여름날씨다. 가벼운 옷으로 준비해야겠다. 새벽 일찍 일어났고, 차도 많이 탔고, 입국장에서 실랑이도 있었기에 많이 피곤하다. 그래도 해발고도가 낮아지는 바람에 고산증에서 해방되어 다행이다. 샤워하고 일찍 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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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의 아침식사는 매우 좋았다. 여러 종류의 치즈와 햄이 놓여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계란찜도 넉넉하게 담겨있었다. 빵에 꿀을 발라 치즈와 요플레와 함께 먹으니 한결 먹을 만하다. 망고주스도 맛이 있고 파인애플주스도 좋았다. 오랜만에 배가 부르도록 먹었다. 공항은 호텔에서 5분 거리에 있어서 서둘지 않아도 된다. 9시에 호텔을 나왔다.

 

깔라마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비행기는 SKY항공이다. 발권하면서 16A,B좌석을 받은 것은 좋았지만 수화물 부치면서 35$을 추가로 내어야 했다. 11가방을 적용하는 바람에 무게가 아니라 화물 1개 비용을 부담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직접 카드로 결제를 해주는 바람에 쉽게 나올 수 있었다. 예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는 over charge를 은행에 내고 영주증을 가지고 오라는 바람에 등에 식은땀이 배어나왔던 적도 있다. 국내비행기를 탈 기회가 몇 번 더 남았기 때문에 추가비용을 지불하느니 푸른색 큰 가방은 처분하고 핸드캐리어 가능한 작은 가방을 하나 사든지 해야겠다.

 

깔마라에서 산티아고까지 꼬빡 2시간이 걸렸다. 제법 거리가 되는구나. 수화물을 찾아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주차장까지 걸어 나왔다. 점식식사를 하러 대장금으로 바로 갔다. 이영애가 출연하여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던 대장금은 이제 세계적으로 한국식당의 대명사가 되었구나. 2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홀이 있어서 우리 팀은 모두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보니 종류도 많다. 나는 비빔냉면, 이미선은 선지해장국을 시켰다. 20여분 기다리나 종업원이 시킨 음식을 날라주었다. , 예사 맛이 아닌데.. 먼 이국땅에서 우리 입맛에 꼭 맞는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냉면도 해장국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신시가지에 있는 INTERCONTINENTAL SANTIAGO HOTEL로 가서 310호를 배정받았다. 별이 5개라 호텔 규모도 크고 메인 홀도 넓고 고급스러웠다. 방도 품격이 느껴진다. 이런 호텔에서 2박을 하다니. 정말 좋은데~~ 조금 쉬었다가 시내투어를 위하여 홀로 모였다. 이번에도 보연씨는 호텔에 있는 시내지도를 나누어주면서 구도시와 신도시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그리고 환전하기 위하여 보연씨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환전소는 호텔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초대형건물 지하에 있었다. 환전소가 마주보며 두 군데 있었는데 두 군데 모두 줄을 길게 서 있다. 동작 빠른 송영란님은 잽싸게 200$을 교환했다고 하면서 100$ (81,000페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땡큐, 영란씨~~

박형신님 부부와 같이 구시가지로 가는 택시를 타려고 밖으로 나왔다. 이 건물 앞에 대기하고 있는 택시는 타지 말라고 하여 도로를 건너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니 빈 택시가 없다. 다시 건너와서 건물 후면 쪽에서 기다렸다가 용케 택시를 잡을 수 있었다. 모네다 궁전 근처에서 내렸다. 요금이 4,750페소 찍혀서 5,000페소를 주었다.

 

궁전 앞 도로에서 우리 팀원인 이익동님을 만났다. 부산에서 오신 8명이 택시 2대에 나누어 타고 오는데, 택시 계량기가 어떻게나 빨리 올라가는지 강력항의를 하고, 요금이 20,000페소 가까이 나왔지만 10,000페소만 주었더니 받아서 쏜살같이 사라지더란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전화를 걸려고 가방에 넣었던 폰을 찾아봐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아뿔싸, 택시 기사에게 털렸구나. 요금 때문에 승강이를 벌이다가 돌아서는 중에 빼낸 것 같다고 한다. 어쩌면 택시기사까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든지 조심 또 조심~~

 

우리는 모네다 대통령궁과 문화센터를 둘러보았다. 모네다는 돈, 화폐라는 뜻인데 처음에는 조폐국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1973년 군부 쿠테타로 당시 살바도르 아옌대 대통령이 끝까지 저항하다 자결하고 피노체트가 정권을 잡아 17년간 독재정치를 하였다. 여권을 소지하면 궁전에 들어갈 수 있는데, 정문으로 들어가서 외관을 둘러보고 후문으로 퇴장해야 한다. 대통령궁은 주말이라 그런지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지하 3층으로 되어 있는 문화센터는 누구나 입장할 수 있다. 과거 피노체트가 지하 벙커로 사용하던 곳을 개조하여 문화센터로 개장하였다고 한다. 들어가 보니 건축 관련 각종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도로 군데군데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대통령궁이 가까이 있어서 그렇겠지. 누에바 요크거리(뉴욕거리)Y자 모양으로 보행자 전용거리다. 비교적 잘 정돈된 유럽풍의 건물들이 즐비하다. 대로변에 우뚝 서 있는 교회가 산 프란시스코교회다. 1586년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시계탑은 1857년 추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예배드리는 시간이 아닌지 내부는 사람도 없어 조용하다. 그런데 여기는 성당이라 하지 않고 교회라 부르는데, 나도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시설만 봐서 그 차이점을 모르겠다. 조용히 둘러보고 나왔다.

 

다시 도로를 건너서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올라가는 길은 많은 상점과 가게가 있는 번화가다. Bravissimo라고 적혀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미리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점원에게 보여주면 아이스크림을 주는 방식이다. 2,150페소면 우리 돈으로 3,100원쯤 되는구나. 아이스크림을 받아 걸어가면서 작은 플라스틱 스푼으로 조금씩 떠먹었다.

 

아르마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키 큰 열대성 나무들도 많이 심어져있다. 칠레가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을 쟁취한 것을 기념한 독립기념비와 산티아고시의 기초를 쌓은 페드로 데 발디비아의 기마상이 있다. 주변에는 16세기에 세워진 대성당을 비롯해, 19세기 중반까지 정부의 중요 건물이었던 중앙우체국, 시청사, 1808년에 건립된 궁전을 이용한 국립역사박물관 등이 있고, 광장의 동남쪽에는 산티아고 박물관이 있다. 한쪽 구석에는 원주민 모습의 석상이 하나 서 있다.

 

대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내부는 여느 유럽의 대성당에 못지않다. 1541년 발디비아 일행은 원주민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침략을 멈추지 않고 산티아고에 들어섰다. 제일 먼저 시내 중심에 교회 건립을 계획하여 1558년 이 대성당이 세워졌다. 산프란시스코 야비엘의 목상과 무게 20kg이 넘는 17세기의 은 램프를 볼 수 있으며, 성구 안치소에는 회화 최후의 만찬도 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많은 칠레에서는 지금도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고 있다. 군사독제체재 하에서도 이곳은 온건파 반군정 시민 그룹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성당 앞에서는 항의집회가 열렸다고 한다. 대성당 남쪽에는 대성당 박물관이 있으며, 성구, 종교화 등을 세 개의 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구시가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충 둘러보았다. 마지막 코스로 중앙시장을 구경하기 위하여 강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지도상으로는 네 블록만 건너면 되는데, 상당한 거리를 왔지만 시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친구가 다가오더니 차도를 건너서 왼쪽으로 가라고 한다.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차도를 건넜다. 그런데 지도를 자세히 보니까 차도를 건너면 안 된다. 이상하네, 왜 차도를 건너라고 하였을까? 다시 도로를 건너기 위하여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푸른 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이지? 나는 뭔지도 모를 힘에 밀려서 도로에 나뒹굴었다. 넘어지면서도 카메라와 크로스백은 두 손으로 불끈 쥐었다. 이미선이 고함을 지르며 쫒아가다가 내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일이 다 있냐? 이미선이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털치기 당한 것이다. 소매치기를 조심하여야 한다면서 주의를 기울이며 다녔지만,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낚아채어 뺏어 갈 것으로는 상상도 못했다. 칠레라는 나라는 정말 재수 없는 나라구나.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우리는 보연씨에게 전화로 연락한 후에 호텔로 들어오고 말았다.

 

호텔에서 보연씨를 만나서 경찰서에 신고를 하러 갔다. 경찰서 조서가 있으면 여행자 보험을 통하여 20만원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가서 조서를 꾸몄다. 저녁 7시 무렵이었는데, 경찰서 직원들의 태도는 귀찮은 일거리 하나 생겼다는 표정이었다. 상세하게 조서를 꾸미는 사이에 시간이 7시가 되자 조서를 꾸미던 경찰관은 퇴근시간이라고 가면서 야간근무자에게 인계하는 것이 아닌가.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지? 정말 정 떨어지네. 야간근무자가 서류를 다 만들어 결재를 받아서 우리에게 주었다. 보연씨와 우버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정말 운이 없는 날이구나. 나도 속이 불편하여 지사제를 복용하여야 했다. 이미선은 폰을 잃어버린 것도 그렇지만 여태껏 찍은 사진을 모두 날린 것에 대하여 너무 애통하게 생각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중앙시장 근처에서 젊은 친구가 와서 도로를 건너야 한다고 친절히 안내한 것부터가 이상하다.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서 길을 건너지 않고 바로 쭉 올라갔으면 중앙시장이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왜 건너라고 했을까? 미리 우리가 한국 사람임을 알아보았고, 이미선이 손에 폰을 쥐고 가고 있음을 보고는 신호등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무리가 없겠다. 정말 짜증나는구나. 이런 사고는 하루빨리 잊어버리자.

입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녁식사는 해야겠기에 라면을 끓였다. 어제 깔라마 호텔에서는 작동하지 않던 포터가 여기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 기존 콘센트에 있던 어댑터에 문제가 있었나보다.

여기는 한국에 비해 정확하게 12시간이 늦다. 내 시계를 현지시간으로 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 9시면 한국은 오전 9시다. 아들과 전화를 하면서 오늘 벌어진 사건을 하소연했다. 휴대폰은 다시 구입해야 하니까 좋은 방법을 알아보라고 당부를 했다. 전화번호도 몽땅 잃어 버렸으니까 누구에게도 연락할 길이 없다. 퇴직은 하였지만 학교와 수시로 연락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전화로 이런 사실을 알려줄 것도 부탁했다. 아이고, 골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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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유여행으로 일정이 잡혀있다. ‘콘차이토로 와이너리 투어를 할 수도 있고, ‘발파라이소와 비냐델마르 투어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팀은 애주가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인지 와이너리 투어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일정상 두 개를 모두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산 팀 중에서 한 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빠지고 나머지 20명은 발파라이소 투어에 참가 신청을 함으로써 65$ 가격으로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8시에 맛있게 호텔식을 하고 9시에 버스에 올랐다. 발파라이소까지는 2시간 반쯤 걸리는 거리다. 1시간 30분 정도 달린 다음 휴게소에 들렀다. 이 휴게소는 제법 규모가 크다. 한쪽 옆에는 오래된 작은 스포츠카를 5대나 전시해 놓았다. 이런 깜찍한 스포츠카는 처음 본다. 휴게소라기보다 와인 판매소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대형 창고에서 수십, 수백 종류의 와인을 직접 시음해보고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유리컵에 조금씩 와인을 따라주며 맛을 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비싼 와인과 저렴한 와인의 맛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고 그 맛이 그 맛이다 보니 굳이 비싼 와인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내 입이 더 고급화되어 좋은 와인을 구분해 낼 수 있을 때 고급 브랜드로 하나 구입하자.

밖으로 나오니 도로 한쪽으로 9개의 소형 모아이 동상을 설치해 놓았다. 모아이 동상은 어찌 보면 제주도 하루방과 닮은 점이 있는 것 같다. 이스터 섬까지 갈 형편은 못되지만 사진으로 기분만 내어보자.

와인은 포도와 직결된다. 바로 옆에는 포도나무가 엄청나게 심어져있다. 모두 청포도인가보다. 나무마다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송영란님은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긴 청포도를 두 개 사서 맛보라고 하나를 건네준다. 한 번 더 생큐, 영란씨~~

 

1시간쯤 더 달려서 비냐델마르에 도착하여 꽃시계가 맞아주는 공원 앞에 내렸다. 꽃시계 숫자만 있고 바늘이 보이지 않는다. 보연씨 설명으로는 스위스에서 시계를 제공하였는데, 워낙 데모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시계 바늘은 별도로 보관하고 있단다. ‘외국자본 물러가라!!’ 이런 구호를 외치는 데모꾼들은 외국회사 상품을 거부하거나 심할 때는 파손하기도 한단다. 꽃시계 위에는 'VINA DEL MAR'라고 도시 이름이 꽃으로 적혀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꽃시계 앞에서 사진을 찍는 바람에 우리도 제법 기다려서야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바로 앞에는 행위예술가들이 이상한 복장으로 관광객들을 놀라게 한다. 이런 사람들을 예술가로 부를 수 있을지 판단이 잘 서지 않지만 사진을 찍으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단다. 제법 더운 날씬데 저렇게 요상한 복장을 하고 서 있으려면 그 짓도 할 짓은 못되겠다.

조금 걸어서 바닷가로 갔다. 여기는 칠레 최대의 휴양도시라 호텔도 많다. 특이한 외관이다 싶으면 모두 호텔이다. 층마다 발코니 위치를 다르게 해놓은 호텔도 있다. 제법 번듯한 외관을 자랑하는 건물도 상당하다. 신발을 벗어 놓고 바닷가를 걸었다. 오랜만에 듣는 파도소리가 너무 좋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밀려오는 파도와 장난치는 것도 재미가 있네.

박물관 옆에는 이스터 섬에서 직접 가지고 왔다는 모아이 상이 하나 서 있었다. 상반신 높이가 2m 남짓 되었을까. 그렇게 크지는 않고 약간 험상궂다는 느낌이다.

식사하러 현지인이 운영하는 뷔페식당에 갔다. 다양한 음식을 구비하여 놓았지만 내 입맛에 드는 것은 별로 없다. 이것저것 조금씩 담아서 맛을 보았다. 이런 곳에서 아무거나 잘 먹으면 얼마나 좋아? 박형신님과 이미선은 보란 듯이 두어 접시 비워내건만 나와 송영란님은 영 어려워한다. 겨우 몇 개 집어 먹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2인 몫으로 19,580페소를 지불하였으니 우리 돈으로 28,000원쯤 된다.

 

버스를 타고 바로 옆 동네 발파라이소로 갔다. 비냐델마르는 휴양도시이고 발파라이소는 항구도시라고 구분을 하고는 있지만 같은 생활권이고 죽 연결이 되어 있었다.

먼저 네루다의 집으로 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지어져 있었다. 1층 전시관에는 들어갈 수 있어서 관람을 했다. 여러 가지 쟁반과 책자, 소형 장식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실제 거주하던 방과 거실은 출입통제를 하는 것으로 봐서 별도로 입장료는 내어야하나 보다. 다른 외국인들은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나오네~~ 나는 사실 네루다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별로 관심은 없었다. 20여분 머물다가 나왔다.

파블로 네루다는 1971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민중시인이요 외교관이자 마르크스주의 정치가였다. 13살 나이에 일간지 '라 마냐나'에 글을 쓰고 시집을 냈으며, 1920년부터 문학전문지 '셀바 아우스트랄'에 파블로 네루다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필명은 그가 흠모하던 체코 시인 얀 네루다(1834~1891)에게서 따온 이름이다.

네루다는 초기 시집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관능적 표현의 서정시를 주로 썼으나 이후 시집 <지상에서 살기>까지를 통해 초현실주의 기법의 시들을 썼으며, 스페인 내전(1936)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현실 참여의 시들을 썼다. 평생 40여 권의 시집을 출간한 그는 1971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73년 산티아고에서 숨졌다.

그는 계속 태평양 연안의 이슬라네그라에서 살았지만, 1960년 쿠바, 1966년 미국 방문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했다. 그의 시는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다. 산티아고의 산크리스토발 언덕 기슭에 '라차스코나'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발파라이소에도 '라세바스티아나'라는 집을 지었다. 이 집들은 그가 여행하면서 모은 배의 선수상(船首像)과 그 밖의 갖가지 기념물을 진열한 심미적 분위기로 이름난 명소가 되었다.

 

산비탈을 택지로 조성하다보니 여기의 도로는 대체로 경사가 급하다. 그리고 경사를 따라 집을 짓고 외벽은 통영의 동피랑처럼 모두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놓았다. 도로에 접한 모든 주택과 상업건물은 온통 페인팅으로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안내책자에는 콘셉시온 언덕이라고 나오는데 우리가 둘러본 거리가 그곳인지는 모르겠다. 도로를 만들 수 없는 곳은 계단을 설치하고 계단 입면에도 그림을 그렸다. 넓은 계단참에는 화단도 조성해놓았고 예쁜 꽃이 핀 곳도 있다. 그런데 이런 그림을 볼 때마다 느끼지만 건축에서 외부 페인트의 수명은 5년으로 본다. 5년이 지나면 보수를 해줘야 하는데, 이렇게 넓고 많은 그림을 어떻게 보수를 하지? 지금도 더러 페인트가 벗겨져서 얼룩으로 보이는 부분이 제법 있다. 유지관리비가 엄청날 텐데....

 

아센소르 콘셉시온을 타기 위하여 한참을 걸었다. 아센소르 콘셉시온은 일종의 단거리 궤도차량이다. 급경사지역의 높이 50~60m를 오르내리면서 손님을 실어 나르는데 이것이 영업이 잘 될 리가 없겠지. 그 정도는 걸어서 얼마든지 오르내릴 수 있으니까. 영업을 하지 않고 폐쇄시켜 놓은 곳이 많아서 운행을 하고 있는 곳을 찾다보니 한참을 걸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일부러 왔으니까 한 반 타봐야겠지. 10명은 탈 수 있구나. 내려가는데 3,4분 걸렸나. 부산 초량동에 가면 산동네에 이바구 길이라 만든 곳이 있는데, 여기에 가면 168계단이 있고, 계단을 따라 소형 궤도차량을 만들어 놓았다. 여기는 그나마 100m남짓 되도록 만들었지만 보통 때는 그냥 텅 비어 있다.

 

구경을 마치고 소토 마요르 광장으로 갔다. 광장 중앙에는 이끼께 영웅 기념탑이 세워져있고 주변에는 분수가 설치되어 시원한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옆에는 수십 동의 천막에서 온갖 장사치들이 장사를 하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폰 소매치기 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아예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도로를 건너 바닷가로 갔다. ‘쁘랏부두. 1986년 개항한 발파라이소 항구의 대표적인 부두로 한쪽에는 각종 해군 시설이 모여 있다. 많은 어선과 컨테이너 화물선, 항구 주변을 도는 유람선 등으로 바쁘게 보인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폼 잡고 사진도 제법 찍었다. 날씨도 쾌청하고 바람도 선들선들 시원하게 불어주어서 유람하기 참 좋다.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 전망대에 잠시 내려서 광활한 태평양을 감상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모자가 날릴까 조심하면서 칠레 국기를 들고 사진을 제법 찍었다. 호텔로 돌아오니 7시가 거의 다 되었다.

우리는 보연씨와 같이 대장금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폰을 잃어버리고 황당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베푼 친절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보연씨를 식사초대 한 것이다. 비빔냉면과 설렁탕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마침 심재광 팀도 오셔서 식사를 하고 계시기에 월매막걸리를 한 병 시켜서 나누어 마셨다.

 

내일은 비행기로 푼타 아레나스로 가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들어간다. 큰 가방 하나는 정리하기로 하고 짐을 분산시키니 핸드캐리어 보조 가방이 없어도 해결이 된다. 보조가방에 무게가 나가는 옷가지를 넣어 이것을 손에 들고 비행기를 타면 되겠다. 준비했던 반찬을 제법 소진시켜 부피를 줄인 것도 도움이 되었다.

하루 이틀 사이에 국내와 해외소식은 여의치 않다. 볼리비아는 입국거부 조치를 취했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14일간 자가격리를 취한다는 뉴스가 나왔다. 우리가 32일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오늘로 14일은 지났으니까 아르헨티나 입국은 괜찮으리라 생각은 들지만 어떤 조치가 내려질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르헨티나 입국이 안 된다면 그 기간 동안 어디서 무슨 구경을 하지? 아르헨티나 안에서는 스케즐에 맞춰 다닐 수 있도록 예약이 되어 있을 텐데 갑자기 변경을 하면 해결할 방도가 있나? 보연씨가 고민이 깊어지겠구나. 불안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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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반에 기상하여 식사를 하고 7시 반에 호텔을 나왔다. 아침에 전해진 소식은 아르헨티나가 국경을 봉쇄했다고 한다. 위기가 현실로 닥쳐왔다고 봐야하나? 푼타 아레나스로 들어가는 스케즐까지 취소하기에는 이르다고 판단하고 일단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혹시나 하고 지켜보았던 수화물은 20.7kg14.7kg으로 문제없이 통과되었다. 공항에서 맥도날드 햄버거를 2개 구입하여 비행기를 탔다. LATAM 293편은 1037분에 이륙하여 3시간 넘게 비행하여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 도착하였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를 탔다. 중간에 잠시 휴게소에 들렀지만 2시간 반을 달려서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ALBERTO DEAGOSTINI HOTEL에 도착했다. 작은 시골마을이라 호텔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여기는 건축규제가 심하여 객실이 작으며 객실에서 취사를 할 경우 엄격한 과태료를 물리고 퇴실조치를 당할 수 있다고 여행사가 나누어준 안내서에 적혀있다. 236호를 배정받아 엘리베이터도 없어 무거운 가방을 손에 들고 계단을 통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wifi는 비번을 넣으니 가동이 된다. 정말 방이 좁아서 가방을 펼치기도 어렵다. 밥상 대용으로 큰 가방을 바닥에 깔아 놓고 컵라면을 끓여먹었다. 물만 끓이면 되는 컵라면을 취사로 보기는 어렵겠지. 간단히 식사를 하고 마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왔다. 저녁 7시가 넘었지만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UNIMARC라는 대형 슈퍼를 발견하고 들어가서 와인과 간단한 안주를 샀다. 그런데 돈 계산하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느라 30분도 더 걸렸다. 사는 사람들은 많은데 카운터는 2군데뿐이라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온수가 나오지 않는 바람에 샤워는 못하고 간단히 세수만 하고는 와인으로 심란한 마음을 조금 가라앉혔다. 시간이 갈수록 좋지 않은 뉴스만 들어온다. 내일은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갈 수 있을까? 여기는 세계 10대 절경에 속하는 명소로 산과 호수, 폭포와 빙하 등 모든 아름다운 자연을 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이다. 이번 여행에서 크게 보면 페루의 마추픽추’, 볼리비아의 우유니’,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는 이과수 폭포이렇게 4군데를 구경하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정말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는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상황이 어렵게 꼬여버린 것이다.

긴급히 1층 식당으로 모이라고 한다. 보연씨가 암울한 소식을 전했다. 작은별 여행사에서 긴급연락이 왔다면서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일 가려고 했던 국립공원은 입장이 금지되었고, 안에 들어갔던 관광객들도 호출하여 밖으로 내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산티아고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는 개별부담으로 티켓을 끊어야 한다면서 결재카드를 사진으로 본사로 송부하고 39만원을 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보연씨 말을 듣는 수밖에 없어서 나는 농협카드를 여행사에 보냈다.

내일은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 걱정만 가득안고 침대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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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아있던 모든 여행은 올스톱되고 말았다. 산티아고로 돌아갈 비행기도 오늘은 티켓이 없고 내일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두 시간만 가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볼 수 있지만 이미 클로징 된 상태라 아무런 방법이 없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를 더 보내고 내일 비행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였지만 무엇을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밖으로 나왔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다.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넓은 원형으로 된 광장이다. 나무들이 정돈이 잘 되어 있다. 광장 중앙으로 8개의 진입로를 만들어 사방팔방 접근하기 쉽게 되어 있었다. 광장 주변은 많은 호스텔과 여행사들이 밀집되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유소가 있어서 외지로 나가기도 쉽겠다. 근처에 역사박물관이 있다고 되어 있어서 찾아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아서 포기했다.

바닷가로 내려갔다. 멀리 화물선이 조용히 지나간다. 도로는 한산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래도 조형물과 조각 작품은 몇 개 있어서 사진에 담았다.

 

점심식사는 누룽지와 반찬을 가지고 1층 식당으로 내려가서 포터에 담아 끓여먹었다. 비좁은 방안에서 불편하게 먹는 것보다 넓은 홀에서 먹으니 한결 편하네.

오후에 다시 마트에 가서 와인과 빵과 포도를 좀 샀다. 오늘은 오후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어서 계산하는데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각자 준비한 음식을 가지고 1층 식당에 모여서 같이 먹기로 했다. 우리는 햇밥과 시내구경 하면서 구입했던 상추와 막장을 가지고 내려가서 같이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일정이 이렇게 틀어져버린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얘기가 나왔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산티아고에서 푼타 아레나스로 오는 비행기를 타지 말았어야 했고, 산티아고에서 바로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비행기를 알아봤어야 했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결과론이다. 누구도 이렇게 급박하게 상황이 변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두 시간 남짓 즐겁게 식사를 하였지만 과연 한국으로 가는 길이 쉽게 열릴 수 있을지...

그런데 식사도중에 보연씨가 전원 21일 귀국 비행기 티켓을 확보하였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건은 비행기 티켓은 자기 부담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돈 저돈 가릴 형편이 아니다. 무조건 티켓을 확보하고 볼 일이다. 바로 승낙하고 결재카드와 비밀번호를 보냈다. 어제 보냈던 결재카드의 39만원은 여행사에서 부담한다면서 개인 결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 1년 이내 중단되었던 코스를 다시 여행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일정 인원이 된다면 여기에 중미의 멕시코와 쿠바까지 포함시키면 역시 한 달 일정의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첨가되었다. 글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의 여파가 어디까지 언제까지 미칠지 알 수도 없거니와 여행사가 과연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김칫국부터 마시는 얘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오늘밤도 와인과 함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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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분에 기상하여 간단히 식사를 하고 730분 버스에 올랐다. 푼타 아레나스 공항으로 가면서 보연씨가 공항은 비싸니까 여기서 구입하면 좋겠다고 하여 조그만 휴게소에 들러 샌드위치 등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음식을 구입했다. 혹시나 하고 조금 일찍 출발하였기 때문에 1040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예약된 비행기 티켓을 받기 위해서 줄을 서서 대기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우리 팀 차례가 되어 발권을 기다렸지만 현지 직원은 우리를 멈춰 세워놓고 뒤에 오는 사람들 티켓부터 발부해 주는 것이다. 보연씨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계속 어딘가와 통화를 하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발권을 담당하는 직원이 보연씨에게 예매할 때 사용한 결재카드 원본을 보여줘야 티켓을 발행해 줄 수 있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그런데 결재를 서울 본사에서 했는데 결재카드 원본을 어떻게 보여 주나? 보연씨가 다른 여행사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런 규정이 있지만 사문화되어 거의 적용하지 않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작은별 여행사 대표 여권을 제시해도 막무가내다. 그저 봐달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담당직원이 왜 그런 요구를 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딱하나, 그들이 좌석수보다 많은 티켓을 발행하였기 때문에 우리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 발권하고 나서 나머지 좌석수를 보고 우리 팀 발권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나 하고 추측한단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도 티켓을 받았다. 넉넉하게 시간을 가지고 공항에 왔지만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바람에 우리는 모두 시간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탑승을 위한 몸 검사도 신속하게 마치고 1번 게이트로 뛰어갔다. 비행기에 오르니 정각 오후 1. 내 자리를 찾아서 앉아 안전벨트를 착용하니 3분 후에 비행기가 이륙했다. 그런데 비행기가 이륙하고 보니까 여유좌석이 제법 있었다. 그렇다면 발권 담당직원은 왜 우리를 피곤하게 했을까? 예약했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지 않았다는 말인가? 보연씨는 이 비행기를 놓치면 21일 한국행 비행기도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나도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있는 정 없는 정 모조리 떨어지는 칠레다. 앞으로 칠레 축구팀은 절대 응원하지 않겠다.

 

산티아고에 도착하여 식사하러 대장금으로 갔다. 이렇게 마음고생 진하게 하면서 다시 산티아고로 왔기에 뭔가 얼큰한 것을 먹어야 속이 좀 풀리겠다. 나는 설렁탕을 시켰고, 이미선은 회덧밥을 시켰다. 막걸리도 한 병 달라고 했다.

식사를 하고나서 21일까지 3일을 호텔에서 지내야 하기에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SK마트로 가서 컵우동, 컵라면, 생수 등등 필요한 것들을 조금 샀다.

이번에는 풀만 HOTEL이다. 1014호를 배정받아 올라갔더니 세계적인 체인점 호텔답게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보연씨는 회사에서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각 방마다 과일과 와인 한 병씩 지급했다.

카톡으로 술 한 잔 하실 분은 내려오라고 해서 이미선과 같이 내려갔더니 박경식님 부부와 심재광님, 보연씨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울려서 온갖 얘기들 나누면서 와인을 4병이나 비웠다. 오전에 있었던 비행기 티켓 얘기는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리게 생겼다. 가이드는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어야겠다. 나올 때 법인 카드를 가지고 나와서 비행기 발권을 현지에서 하도록 규정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지. 실컷 얘기를 나누고 방으로 올라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그런대로 살만하다.

집에 있는 가족들이 걱정을 더 많이 한다. 여행사에서 보내준 전자 항공권 발행 확인서를 우리 가족 카톡방에 올리면서 7부 능선은 넘은 것 같다고 소식을 전했다.

 

 

319~20(, )

바쁠 일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으니 기상시간이 늦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9시에 식당으로 내려가서 식사를 했다. 괜찮은 호텔이라 생각했지만 아침식사는 기대에 조금 못 미쳤다. 그래도 계란 후라이가 있어서 잘 먹었다.

호텔에서의 감금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 여기도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늘었다. 나는 답답하지만 밖으로 나갈 기분은 아니어서 침대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후에는 1층 업무실로 내려가서 잠시 컴퓨터로 바둑을 즐길 수 있었다. 오로바둑 프로그램을 다운 받을 수는 없었고,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저장된 기보를 복기하는 것은 가능했다.

저녁에는 누룽지와 햇반으로 식사를 하고 아들부부와 귀여운 손녀와 통화도 했다.

 

20일 저녁에는 1층 식당 옆 홀에 전부 모여 같이 식사를 했다. 대장금에 식사를 주문하여 배달받은 팀이 꽤 되었지만 우리는 남은 누룽지와 햇반을 챙겨 같이 합류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여 부정적인 상황을 다수의 긍정의 에너지로 극복하자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보연씨는 우리가 하루 10$씩 산정하여 지불했던 가이드 팁 280$ 중에서 어제까지 18일분은 집행을 하였고 남아있던 100$은 돌려드리기로 했다면서 봉투를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는 중에 미리 정리하여 내어 놓으니 반색하는 표정들이다. 보연씨가 숙소로 올라가고 나서 박경식님을 중심으로 카톡방을 잘 운영하여 우리가 입은 손실을 최대한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팀의 멋진 가이드 보연씨에게 수고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1인당 10$씩 걷어서 주자는 의견에 100% 찬성하였다. 즉석에서 10$씩 갹출하여 봉투에 넣어서 보연씨를 다시 내려오게 하여 전달하였다.

부산에서 오신 8명 중에서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시는 박구영, 장말선님 팀은 귀국루트가 다른 관계로 오늘 오후에 먼저 출발하셨다. 별 문제없이 잘 가셔야 할 텐데. 다음에 미얀마 공항에서 상봉할 날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321~24(~)

우리 팀 전체가 같이 산티아고를 떠나는 비행기 표를 구하기 어려워서 부산 팀은 두 시간 일찍 공항으로 출발했다. 또 심재광님 팀은 하루 늦게 두바이를 거쳐 인천으로 가는 티켓을 구하느라 호텔에 남고, 나머지 13명은 11시에 공항으로 갔다. 산티아고 공항에서는 각자 자기 티켓은 자기가 발권을 해야 한다. 발권 기계 앞에서 한참을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렸지만 쉽게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의 호프 보연씨가 거들어주니 쉽게 되는 것이다. 공항에는 태극기가 부착된 대한민국 대사관이라 적힌 옷을 입고 왔다갔다 하는 요원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닌데...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인가보다. ‘공항현장 출국 지원반 운영 중이라는 안내문을 들고 있다. 현지대사관에서 이렇게 자국민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미선은 같이 사진도 찍었다.

지갑에 볼리비아 돈이 70볼 남아있었다. 공항 환전소에서 교환하려고 주었더니 5$를 내어준다. 70볼이면 12,000원 상당되는데 볼리비아 돈을 칠레 돈으로 전환하였다가 다시 USD로 두 번 환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줄 수 없다는 대답이다. 말이 되는 소린지 모르겠지만 5$을 받고 나왔다.

 

LATAM항공의 8069편은 15시에 지긋지긋했던 산티아고를 이륙하여 4시간을 날아서 19시에 브라질 상파울로 공항에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로 갈 비행기도 LATAM 항공이어서 그런지 수화물은 자동 연계되어 여기서 찾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부산 팀과 다시 합류했다.

 

상파울로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는 3시간 40분을 기다려야 했지만 이 정도 시간 보내는 것은 이제 별일도 아니다. 상파울로가 예상보다 큰 도시인가보다. 유럽으로 가는 사람들로 307Gate는 상당히 혼잡스러웠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서 LATAM 8070편 비행기에 올랐다. 간혹 예정 되었던 비행기가 갑자기 취소되는 사례도 있다고 하니까 적잖이 걱정이 되었지만 이제 정말 고국에 돌아가게 되나보다. 전자 항공권에는 프랑크푸르트까지 비행시간이 11시간 50분으로 나와 있다. 잠이 들면 좋으련만 쉽게 눈이 감기지 않는다. 별 수 없이 영화를 틀었다. 뜻밖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들어있는 것이다. 아카데미 4개 부문에서 상을 받은 영화이지만 제법 오래 전에 보았기 때문에 한 번 더 봐도 괜찮다. 그런데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부분적으로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어서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다. 자막이 없어도(?) 괜찮은 영화라 131분 동안 기내식으로 나온 치킨과 빵을 먹으면서 잘 보았다. 그리고 2019년 판 터미네이트/다크 페이트를 보았다. 이런 영화는 그림만 봐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도 있으니까. 쥬만지를 켜서 30여분 보는데 비행기가 이륙준비를 하는 바람에 화면을 껐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환승절차를 밟았다. 소지품 검사는 조금 까다롭게 하는 것 같다. 어느 공항이나 검사요원들 얼굴에 웃는 표정을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무게를 잡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직업인가보다. 양주 2병을 지니고 있던 부산 팀은 가벼운 주의를 받았지만 무사히 통과하였다. 공항이라 wifi는 빵빵하게 잘 터진다. 고국에 계신 가족과 친지들에게 인천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여기서는 Gate에서 발권을 해 준다. 조금 특이한 시스템이네. 나는 15E, 이미선은 29E. 처음으로 이미선과 떨어져서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잡고 난 다음에 이리저리 자리를 바꾸면 되었겠지만 옆 사람에게 불편을 주는 것 같아서 그냥 내 자리를 고수했다. 입구에 신문도 진열되어 있어서 2장을 집었다. 국적기를 타고 한국 스튜어디스를 만나니 더욱 반갑구나. 기내식으로 제공된 비빔밥은 먹어본 기내식 중에서는 최고다.

역시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번에는 아까 보다가 만 쥬만지를 처음부터 다시 보았다. 그리고 헐리우드 액션영화 2019년 판 분노의 질주를 보았다. 이런 영화는 시간 보내기에 아주 적격이다. 마지막으로 아까 그림으로만 보았던 터미네이트를 다시 보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말로 번역이 되니까 바로 알 수 있었다.

 

10시간 30분의 비행이 종료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역학조사서특별검역 신고서와 세관신고서 등 기내에서 작성한 서류를 손에 쥐고 나왔다. 고국의 품에 안겼다는 안도감으로 얼굴에는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지만 웃고 있을 형편이 아니다. 발열카메라 앞을 통과하고 나니 길목을 지키고 있던 요원은 비행기에 탑승한 모든 사람들에게 목걸이형 표식을 하나씩 나누어주며 목에 걸라고 한다. 어제부터 유럽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전원 하루 동안 격리되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단다.

여권을 꺼내서 입국심사대도 무사히 통과했다. 나는 휴대폰에 자가진단 앱을 설치하고 검역원에게 확인을 받았다. ‘자가진단은 발열증세, 기침, 인후통, 호흡곤란 등 4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이상이 느껴지면 질병관리본부 1339번으로 연락하도록 되어 있었다. 폰을 분실한 이미선은 별도의 코너에서 내 휴대폰 번호와 주소 등을 기재하여 제출하고 나왔다.

 

수화물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비상상황의 인천공항은 여행객들이 없어서 너무 썰렁하였다. 지원 나온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관광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올라서도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지만 운전기사도 어디로 가는지 지시가 내려오지 않아서 모른다고 한다. 어렵게 출발한 버스가 도착한 곳은 의왕시에 있는 코레인 인재개발원이었다. 여기서도 버스에서 내리지 못하고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어제 입소했던 사람들 내보내고 아직 소독이 끝나지 않았단다. 저녁식사로 도시락을 나누어 주어서 배부터 채웠다. 소독이 다 끝났는지 저녁 7시가 넘어서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21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신청했더니 108호를 배정해 주었다.

9시가 넘어서 흰 방역복으로 완전 무장한 검사원이 코와 목의 체액을 채취하여 갔다. 그리고 우리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하룻밤을 지내야 했다. 방문을 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를 가상의 코로나19 양성 반응자로 취급하였지만, 한편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이런 의료시스템은 믿어도 된다는 신뢰를 주는 것 같아서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는 식사가 준비되었다는 방송이 나왔다. 문을 열어보니 도시락이 배달되어 있었다. ㅎㅎ 철저하게 하는구나. 영화에서나 봤던, 감방에서 조그만 구멍으로 식사를 밀어 넣어주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하였지만 웃고 넘어갈 수 있었다.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발표를 한다고 하더니만 12시가 지나도 소식이 없다. 양성으로 판정받은 사람이 의외로 많이 나왔을까? 30분이 더 지나서야 각 방별로 음성자 발표가 있었다. 마치 대학교 시험치고 발표를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우리는 먼저 나와서 여기서 제공하는 1호 버스를 타고 성균관대역까지 왔다. 어제 아들에게 받은 정보로 지하철을 타고 3구역만 가면 오산이고, 오산에서는 마산가는 시외버스가 매시간 있다는 것이다. 오산은 종합터미널이라 지하철에서 내리니 시외버스 매표소가 바로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였다. 오후 210분 버스에 올라서 3시간 남짓 달려 마산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하여 가방을 풀기도 전에 막걸리부터 한 병 사와서 시원하게 들이켰다.

비로소 집에 도착했구나. 역시 우리 집이 최고다. 이제부터 14일간 자가격리에 들어가야 한다. 잘 되었다.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여행후기를 작성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쓸 말이 많겠다. 차분히 자료 정리하여 후기나 적어보자!!

 

3/2 남미여행팀 카톡방은 수시로 의견이 올라온다. 작은별 여행사에서는 이번에 여행하다 중단된 팀에 한하여 성수기를 살짝 벗어난 10~11월과 3~4월에 나머지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올렸다. 비행기 삯 300만원과 가이드 팁과 직원 인건비 10만원만 부담하면 나머지는 현지 협력업체와 협의하여 가능하도록 하겠단다. 우리는 비용을 조금 더 줄이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의견을 모우고 있다. 나는 금액이 어떻게 결정되든지 내년 32일 출발하는 팀에 합류하여 미완성으로 남겨진 나머지부분을 보겠다는 의견을 올렸다. 그나저나 코로나19로 세계적인 불황이 몰아치고 있다. 과연 내년 이맘때까지 작은별 여행사가 온전히 영업을 하고 있을지 걱정이 된다. 모두 파이팅!!!!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