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나에게 적지 않은 시련(?)을 안겨주었다. 양산 물류창고 건축 감리 일을 끝내고 5,6개월 쉬다 보니 하루하루가 너무 심심해졌다. 그럴 즈음 5월 초순경 한국안전(주)에서 연락이 왔고, 사장 면담한 후 마산에서 부산 만덕동까지 출퇴근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산은 40여 년 전 내가 학교 졸업하여 돌아다닐 때와 차원이 달랐다. 교통은 상상 이상으로 복잡했고, 새로 건설된 도시는 내가 적응하기에 무리가 많았다. 어렵게 6개월 근무하며 계약한 일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바로 사표를 냈고 6개월간 생고생한 보상으로 ‘참좋은여행’의 스리랑카 여행을 지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스리랑카는 세계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도 거의 막바지에 방문하는 코스로 인식이 되어 있다.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지만 이미 3월, 6월, 10월 해외여행 계획을 잡아 놓은 터라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를 검색하다 보니 스리랑카 여행이 포착되었던 것이다. 남인도와 연계하여 다녀올 수 있는 상품이 있었지만 인도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스리랑카만 다녀오기로 했다.
해외여행에서 나에게 가장 고민이 되는 것은 식사다. 이미선처럼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먹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 외는 입을 잘 대지 못하니까 컵라면, 햇반에 깻잎, 김치, 김 등등 내가 쉽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챙겨야 한다. 여기는 추운 겨울이지만 스리랑카는 초여름 날씨다. 옷가지를 챙기는 것도 일이네. 그래도 나름 여행을 자주 다니다 보니 가방 챙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행사에서 보내온 문자를 보며 빠뜨린 것은 없는지 살피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여행사 홈페이지에서 여행 스케즐을 다운 받았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여행 가기 전에 우리가 방문할 도시와 목적지를 검색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요즘은 ChatGPT에 물어보면 아주 쉽게 알려준다. 검색을 해서 출력해보니 A4용지로 27page나 되었다. 이렇게 살펴보면 여행 다녀와서 후기 적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자, 출발해볼거나~~
1월 19일 (월)
8시 30분까지 참좋은여행사 부스로 오라고 한다. 마산에서 인천공항까지 바로 가는 공항버스는 5시간이 걸린다. 새벽 3시 50분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8시 40분이다. 담당자를 만나 항공권과 비자, 여행 스케즐을 받았다. 이번 여행에 동참할 멤버는 모두 11명. 콜롬보 공항에서 입국하면 현지 가이드가 피켓을 들고 기다린다고 한다.
스리랑카 에어라인은 좌석을 미리 지정하지 않아도 되나 보다. M1~8 발권창구 앞에는 엄청나게 긴 줄이 형성되어 있었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대형 가방 2,3개씩 캐리어에 담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수화물을 1인당 40kg까지 실을 수 있도록 허용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한국에서 고생하여 돈을 번 스리랑카 사람들이 귀향하면서 가족에게 줄 선물 보따리를 저렇게 싸가는 것을 보니 가슴이 짠하다. 나도 80년대 초반 사우디에서 2년간 근무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저렇게 했었지.... 티켓팅을 하여 이미선과 나는 35F, 35G 좌석을 받았다.
출국장으로 나가서 이곳저곳 면세점 구경도 한 다음 UL471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덩치는 컸지만 오래된 구형이다. 모니터도 오래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화면이 좌우로 제멋대로 옮겨지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불후의 명작 ‘벤허’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도시락은 치킨+밥+야채+빵에 와인도 2잔이나 제공되었다. 간식은 샌드위치와 사과 주스가 나왔는데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예정 시간보다 10분이 늦은 11시 45분에 이륙한 비행기가 콜롬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각 오후 4시 45분. 8시간 30분이나 소요된 긴 여행이었다.
입국 절차가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았다. 탑승 인원이 400명은 되는 것 같았는데 수화물 찾아 밖으로 나올 때까지 1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은 그려려니하고 넘어가자.
밖으로 나오니 머리 짧게 깎은 50대 중반의 가이드가 참좋은여행 깃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11명이 모두 나온 것을 확인하고 버스 주차장으로 가서 20인승 중형버스에 우리 일행과 가방을 실었다. 호텔까지는 30분쯤 걸린다고 하면서 스리랑카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해 주었다.
● 인사말 : 아유보완(안녕하세요, 오래사세요), 가이드 이름은 ‘찬미’
● 인구는 2200만 명인데 70%가 불교 신자, 기독교와 천주교(14%), 이스람교(9%)가 어울려 살아가는 나라
●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52%, 어업이 16%로 1차 산업 위주
● 난폭 운전자가 많아서 여기서 운전을 하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 가서도 운전 솜씨가 밀리지는 않는다는 자부심(?)
● 생활 환경이 많이 개선되어 쓰레기나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 사원에 들어갈 때는 모자와 신발을 벗어야 한다
● 300루피가 1달러, 1000루피=5000원 정도로 계상하면 된다
ARIE LAGOON NEGOMBO Hotel에 도착하였다. 도심을 벗어난 교외의 리조트 스타일의 호텔이다. 마당은 넓게 잔디가 깔려있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1004호를 배정받았다. 와, 방이 이렇게나 넓다니!! 숙소가 좁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바다와 접해있어 모래사장도 있고 수영장도 있다. 첫인상이 너무 좋은데~
1층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뷔페식이라 팀원 대부분은 준비된 음식을 골고루 접시에 담아 맛있게 먹지만 나는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겨우 닭다리, 감자, 과일 셀러드 등을 조금씩 담아 요기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 팀원들은 살펴보니 부부는 2팀으로 4명, 나머지 7명은 모두 솔로로 참석했단다. 그중에서 여성은 2명씩 짝을 이루었고, 남자는 2명이 여기에 와서 룸메이트가 되었고 젊은 사람은 독방을 사용한단다. 키가 크고 흰머리를 자랑하는 분이 77세로 가장 나이가 많다. 그다음으로 74세의 여성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60대로 보였다. 독방을 사용하는 젊은 남자는 53세라고 한다. 서열은 대충 알겠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요즈음은 개인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유행(?)인 모양이다. 알려고 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인가? ㅎㅎ
가이드가 내일은 6시 알람, 7시 식사, 8시 10분 호텔 출발이라고 알려준다.
숙소로 와서 샤워하고 일찍 자리에 들었다. 새벽 2시에 일어나서 5시간 버스를 탔고, 비행기도 8시간 반이나 탔으니 당연히 피곤하지.
1월 20일 (화)
실컷 자고 일어나니 새벽 5시다. 카톡으로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고국의 뉴스를 보다 보니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간단히 화장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제는 어두워서 잘 몰랐는데 여기는 바닷가에 접해있는 호텔이었다. 백사장은 없었지만 수영장이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었고 멋진 일출도 구경할 수 있었다. 보통 일출은 구름이 살짝 가려져서 바다에서 떠오르는 모습은 보기 어려운데, 여기서는 둥근 태양을 정면에서 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완전 보너스 받은 기분이네.
빵과 계란오물렛, 주스로 아침 식사를 했다. 다른 음식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나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밖으로 나와서 호텔 주변 풍경 사진을 몇 장 카메라에 담았다. 도심이 아니어서 조용한 아침이다.
이번 여행은 콜롬보에서 북쪽 ‘아누라다푸라’까지 쭉 올라갔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하나씩 살펴보는 스케즐로 되어 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서 아누라다푸라까지 4시간을 달렸다. 가이드는 스리랑카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 선사 초기 왕국 (기원전 ~ 5세기)
베다족 : 섬의 원주민 집단으로 수렵 채집 중심의 생활
싱할라족의 형성 : 기원전 6세기경 북인도에서 온 이주민이 왕국을 수립
아누라다푸라 왕국(기원전 377년~서기 1017년)
● 고전·중세 왕조 (5~15세기)
폴론나루와 왕국(11~13세기): 찬드라바후 1세 등 치세에 전성기.
남인도 촐라(Chola) 영향: 타밀계 진출과 통치 경험 → 민족·종교 구도의 씨앗.
이후 캔디 왕국(1469~1815)이 내륙에서 존속, 불교와 싱할라 정체성의 중심
● 해상 교역과 식민지 시대 (1505~1948)
포르투갈(1505~1658): 연안 거점·선교, 계피 무역.
네덜란드(1658~1796): 무역 행정화, 로마-네덜란드법 도입.
영국(1796~1948): 전도서·차(tea) 플랜테이션, 철도·근대 행정.
인도 타밀 노동자 이주 → 인구·노동 구조 변화.
● 독립과 민족주의 (1948~1983)
1948년 독립(도미니언) → 1972년 공화국.
언어·정치 갈등: 1956년 ‘싱할라어만’ 법 → 타밀 소수자의 소외 심화.
사회주의·비동맹 노선과 동시에 민족 정체성 정치가 강화.
내전과 평화 모색 (1983~2009)
LTTE(타밀 엘람 해방호랑이)와 정부군 간 내전.
원인: 정치·언어·토지·고용 차별, 권력 분권 실패.
결과: 대규모 인명·경제 피해.
2009년 내전 종식(라자팍사 정부), 이후 화해·재건 과제.
● 현대 스리랑카 (2010~현재)
중국·인도 등과 인프라 협력, 관광 회복.
2022년 경제위기: 외채·환율·연료난 → 대중 시위, 정권 교체.
구조개혁, IMF 프로그램, 거버넌스·화해·포용성 강화가 핵심 과제.
● 섬의 중앙부에 가장 높은 산 ‘피두루탈라갈라’는 해발 2,524m
● 계피를 많이 생산하며 향신료도 수출을 많이 한다. 공작새를 많이 볼 수 있다.
● 사원 등 오래된 건축물은 대부분 1층은 석조, 2층 이상은 목조로 지었는데 벌레가 많아서 1층은 나무로 짓지 않았다고 한다.
● 도로변에 우리나라 사각이나 육각 정자처럼 불상을 모신 곳이 많다.
● 폐차장이 없어서 오래된 차량에서 나오는 매연이 심각한 수준
●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줄어들어서 3모작하던 논이 2모작으로 바뀌는 추세
● 지역마다 저수지가 많은데 왕들의 치적이 농사를 잘할 수 있도록 저수지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현재 33,000여개의 저수지가 있음
●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며 의료도 무상으로 하고 있음
24~26세가 결혼 적령기였는데 지금은 35세가 되어야 결혼. 저출산도 세계적인 추세. 결혼지참금을 신부가 가지고 오는 풍습이 남아 있고 사주도 중요.
● 대통령이 바뀌면서 사회제도 개혁 / 음주, 과속 단속 강화
교통사고로 1일 8명 사망, 도심을 벗어나면 신호등도 없음
사원은 불상과 사리탑과 보리수나무가 있어야 한다.
여기는 고속도로가 아직 많이 미흡하다. 왕복 2차선의 일반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니 느린 차를 추월할 때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삼륜차 툭툭이가 수시로 끼어드니까 교통사고의 위험도 아주 높다. 2시간을 달려 간이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2시간을 달려 아누라다푸라에 도착했다.
먼저 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식당이라고 간판이 붙어있지도 않구나. 알음알음으로 찾아가나 보다. 점심식사도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다. 대형 냄비 뚜껑을 들추어 보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별로 없다. 역시 빵과 계란, 바나나 등을 접시에 담아서 식사를 했다.
‘이스루무니아 사원’으로 갔다. 입구에는 신발을 벗어놓은 신발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양말만 신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이상하네. 그 나라의 풍습이나 제도를 존중하는 것은 맞지만 사원을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은 위생에도 좋지 않아 보인다. 이 나라에서는 왜 이런 풍습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불교를 숭상하는 다른 나라는 아니잖아. 동의하기 어렵다. 그리고 부처님을 배경으로 개인 인물사진을 찍을 수가 없단다. 부처님 앞에 엉덩이를 보이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말이다. 역시 동의 불가. 이 사원은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인 왕이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스루무니아 사원(Isurumuniya Vihara)은 스리랑카 불교사와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고대 불교사원입니다.
1. 위치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티사 웨와(Tissa Wewa) 저수지 인근의 바위 절벽에 조성된 암반 사원(Rock Temple)
2. 건립 배경
기원전 3세기경 스리랑카 최초의 불교 왕으로 알려진 데바남피야 티사 왕 시대에 창건
초기에는 왕족·귀족 출신 승려들이 수행하던 사원으로 알려짐
3. 사원의 특징
자연 암반을 깎아 만든 불상과 조각군. 소규모이지만 예술적·상징적 가치가 매우 높음
스리랑카 고대 불교 조각 양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원
4. 대표 유물 및 조각
이스루무니아 연인상(Isurumuniya Lovers): 젊은 남녀가 친밀하게 표현된 석조 부조. 인간적 감정과 사랑을 불교 예술에 담은 드문 사례. 왕자와 공주, 혹은 신화적 인물이라는 해석이 있음
말머리 조각(Horse Head Relief): 생동감 있는 표현으로 스리랑카 고대 조각기술의 수준을 보여줌
코끼리 부조(Elephant Pond): 물가에서 노니는 코끼리를 사실적으로 묘사
5. 종교·문화적 의의
불교의 엄숙함 속에 인간적 정서와 자연미를 조화시킨 사원
아누라다푸라 불교 유적군 중에서도 예술사적 가치가 특히 높은 곳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아누라다푸라 성지군)에 포함
6. 관람 포인트
바위 위 사원에서 내려다보는 저수지 풍경. 조각의 세부 표현과 당시 왕실 문화의 흔적
규모보다 “질과 상징성”이 중심인 사원
7. 불교 미술사적 해석
① 인간적 감정의 수용
이스루무니아 연인상은 애정과 친밀감을 직접적으로 표현
출가·금욕 중심의 불교 이미지와 달리, 재가 세계의 정서를 포용
초기 불교가 현실 세계와 단절되지 않았음을 시사
② 인도 마우리아–굽타 미술의 영향
부드러운 신체 곡선, 자연스러운 자세는 인도 고전 조각 전통과의 연계성을 보여줌
다만 과장 없이 절제된 표현으로 스리랑카 고유 양식으로 변용
③ 자연과 수행의 결합
암반, 연못, 동물 부조(코끼리)는 자연 속 수행관을 시각화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을 공간과 조형으로 구현
8. 왜 이스루무니아가 특별한가
규모는 작지만 예술적 밀도는 최고 수준. 왕실 불교의 공식 상징에서 벗어나 개인·감정·자연을 다룸. 스리랑카 불교가 교리 중심 → 문화·예술로 확장되는 전환점
9. 관람 시 해설 포인트
연인상의 시선 처리와 손의 위치(감정 표현)
말머리·코끼리 부조의 움직임 묘사
바위 사원 위에서 내려다보는 티사 웨와 저수지와의 시각적 관계』
버스를 타고 잠시 이동하여 ‘스리마하보디 사원’으로 갔다. 입구에 대형 보리수나무가 있는데 철제 받침대를 이용하여 일부 나뭇가지를 받쳐놓았다. 이 나무가 기록상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스리 마하 보디 사원(Sri Maha Bodhi)은 스리랑카 불교에서 가장 신성한 성지로 평가되는 장소입니다.
1. 위치와 위상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불교 성지군의 중심. 단순한 사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목(聖木)을 모신 성지
2. 스리 마하 보디의 정체
인도 보드가야의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Bodhi Tree)**의 직계 후손
기원전 288년, 마우리아 왕 아쇼카 대왕의 딸 **상가미타 테리(Sanghamittā)**가 가지를 가져와 식재. 현재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식재 기록을 가진 나무
3. 종교적 의미
부처의 깨달음(보리, 菩提)을 직접 상징. 불상·탑보다 더 본질적인 숭배 대상
불교에서 드문 **‘생명 자체를 성물로 숭배’**하는 사례
4. 사원의 구조와 특징
중앙에 보리수가 있으며, 그 주변을 돌난간·계단·테라스가 둘러쌈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금속 지지대와 울타리 설치
화려한 건축보다 경건함과 질서를 강조한 공간 구성
5. 역사적 역할
스리랑카가 불교 국가로 정체성을 확립하는 핵심 상징
왕조 교체기에도 국가 차원의 보호 대상
외침과 훼손 시도 속에서도 반복적으로 복원·보호됨
6. 불교사적 의의
불교의 인도 → 스리랑카 전파를 증명하는 실물 유산
초기 불교가 조형물 이전에 자연 숭배와 수행 중심이었음을 보여줌
이후 동남아 불교권의 보리수 신앙의 원형
7. 참배 시 유의점
신발 착용 금지. 나무를 직접 만지는 행위 금지. 흰옷 착용 권장(의무는 아님)
사진 촬영 시 경건한 태도 요구
8. 핵심 요약
스리 마하 보디 사원은 ‘부처를 상징하는 장소’가 아니라,
‘부처의 깨달음이 지금도 살아 있는 장소’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루완웰리세야 대탑’으로 가는 길 오른편에 석재기둥이 조밀하게 서 있는 곳을 지난다. 여기는 ‘로바마하파야’라고 한다.
『로바 마하 파야(Lovamahapaya)는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 불교 유적군을 대표하는 상징적 건축물입니다.
1. 명칭과 의미
로바 마하 파야: “청동 지붕의 대전(大殿)”이라는 뜻
영어권에서는 브론즈 팰리스(Bronze Palace) 또는 브라스 팰리스로 불림
2. 위치
스리 마하 보디 사원 바로 인접. 아누라다푸라 성지군의 핵심 축선상에 위치
3. 건립 배경
기원전 2세기, 두타가마니 왕(Dutugemunu) 건립
대규모 승단(僧團)을 위한 승려 거주 및 집회 공간
4. 원래의 구조 (고대 기록 기준)
9층 규모의 초대형 목조·석조 혼합 건축
지붕은 청동(또는 동합금) 판으로 덮여 있었음
1,000개 이상 기둥, 수천 명의 승려 수용 가능
5. 현재 남아 있는 모습
지금은 돌기둥 1,600여 개의 유적만 남아 있음
기둥 배열을 통해 당시의 층수·공간 구성을 추정 가능
평면 규모만으로도 고대 스리랑카 건축 기술의 수준을 확인 가능
6. 불교사적 의의
단순 사원이 아닌 불교 공동체의 행정·생활 중심지
스리랑카 불교가 국가적·제도적 종교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거
스투파(탑) 중심 신앙에서 승가 중심 운영으로 확장된 단계
7. 스리 마하 보디와의 관계
보리수 = 깨달음의 상징
로바 마하 파야 = 그 깨달음을 계승·유지하는 승가의 공간
→ 신앙과 수행 공동체가 공간적으로 결합된 구조
8. 핵심 정리
로바 마하 파야는 “보이지 않는 건물”이지만, 아누라다푸라 불교 도시의 실제 기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유명 유적지가 여기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루완웰리세야 대탑 입구 양쪽 벽에는 수백 마리의 코끼리 두상을 설치해 놓았다. 멋진 장식이구나.
거대한 순백의 반구형 대탑이 우뚝 솟아있다. 스리랑카 불교를 상징하는 탑이다. 이 속에는 부처님의 사리가 다수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일반인은 들어갈 수는 없고 밖에서 참배만 가능하다. 탑돌이 하듯이 한 바퀴 돌면서 나는 어떻게 이렇게 큰 반구형 구조물을 만들었는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벽체는 벽돌로 쌓아 올렸다고 해도 위로 올라가면 경사진 스라브 형태가 되는데, 스라브를 벽돌로 만들 수는 없잖아.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어~~
『루완웰리세야 대탑(Ruwanweliseya / Ruwanwelisaya)은 스리랑카 불교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스투파이자, 아누라다푸라 성지군의 중심 축을 이루는 국가적 성탑입니다.
1. 명칭과 의미
루완웰리세야: “보석처럼 빛나는 사리탑”이라는 뜻.
영어권 명칭: Great Stupa of Ruwanwelisaya
2. 위치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중심부. 스리 마하 보디 사원, 로바 마하 파야와 인접
불교 성지군의 의례·순례 중심축
3. 건립 배경
기원전 2세기 스리랑카의 영웅 왕 **두타가마니 왕(Dutugemunu)**이 건립
왕의 통일 전쟁 이후, 국가 통합과 불교 수호의 상징으로 조성
4. 구조와 규모
완공 당시 높이 약 103m (당시 세계 최고 수준)
순백의 반구형(거품 모양, bubble-shaped) 스투파
기단 → 돔 → 하르미카(사각 난간) → 첨탑 구조
5. 봉안 유물
부처의 사리 다수 봉안. 경전 기록에 따르면, 사리 봉안 의식에 수많은 아라한이 참여
6. 예술·상징적 특징
① 코끼리 행렬 장식
기단부에 조각된 수백 마리의 코끼리. 불교 공동체와 왕권이 탑을 함께 떠받친다는 상징
② 백색의 의미
순수·청정·해탈. 햇빛에 반사되어 성지 전체의 시각적 중심 역할
7. 불교사적 의의
스리랑카 불교가 국가 종교로 완전히 정착했음을 선언하는 건축
인도 스투파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스리랑카식 대형화를 완성
이후 동남아 불교권 스투파 양식의 원형
8. 스리 마하 보디·로바 마하 파야와의 삼각 구조
스리 마하 보디: 깨달음의 근원
로바 마하 파야: 승가의 삶과 운영
루완웰리세야: 신앙과 공덕의 집결
→ 불교 도시의 교리·공동체·의례가 공간적으로 완성됨
9. 참배 및 관람 유의사항
신발 착용 금지. 흰옷 착용 관행. 시계 방향(우회전) 탑돌이
저녁 시간대 조명 아래의 대탑은 특히 장엄
10. 핵심 요약
루완웰리세야 대탑은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스리랑카 불교 국가의 탄생을 선언한 백색의 상징물입니다.』
‘투파라마 다고바’는 일정표에는 나와 있는데 내 폰에는 사진이 없다. 그냥 지나쳤니? 조사한 내용이 있어서 옮겨 본다.
『투파라마 다고바(Thuparama Dagoba / Thuparamaya)는 스리랑카 불교사에서 **가장 오래된 불탑(스투파)**으로 평가되는 핵심 유적입니다.
1. 명칭과 의미
투파라마(Thuparama): “사리를 모신 성스러운 장소”
다고바(Dagoba): 스리랑카식 스투파(불탑) 명칭
2. 위치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성지군 스리 마하 보디, 루완웰리세야와 가까운 범위
초기 불교 유적이 집중된 구역
3. 건립 배경
기원전 3세기. 스리랑카 최초의 불교 국왕 데바남피야 티사 왕
불교가 국가 종교로 공식 수용된 직후 건립
4. 봉안 사리의 중요성
**부처의 쇄골 사리(혹은 쇄골 유물)**가 봉안된 것으로 전해짐
이는 스리랑카에 부처의 신체 사리가 최초로 봉안된 사례 → 불교 신앙의 실질적 시작점
5. 건축적 특징
① 초기 소형 스투파
후대의 거대 스투파(루완웰리세야 등)에 비해 규모는 작음. 형식적으로 가장 원형에 가까움
② 원주형 기둥군
스투파를 둘러싼 석주(石柱) 배열. 지붕이 있는 예배당(차이티야 하우스)을 지탱했을 가능성
인도 초기 불교 건축의 영향이 뚜렷
6. 불교사적 의의
스리랑카 최초의 불탑. 불교가 왕실 신앙을 넘어 공적·의례적 종교로 자리 잡았음을 상징
이후 스투파 건축의 출발점이자 기준점
7. 관람 포인트
스투파와 기둥 사이의 공간 관계. 장식보다 형식과 구조의 원초성
“작지만 가장 오래된” 유적이라는 역사적 무게
8. 핵심 정리
투파라마 다고바는 화려하지 않지만, 스리랑카 불교가 ‘시작된 장소’라는 점에서 가장 근원적인 성지입니다.』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미힌탈레’로 이동하였다. 미힌탈레는 스리랑카 불교의 요람으로 불리는 성스러운 장소다. ‘쿠탐 포구나’는 직사각형의 대형 연못인데 스님들이 목욕을 하던 곳이다. 바로 뒤에는 소 여물통처럼 생긴 돌로 만든 대형 그릇이 있었는데 이것은 스님들의 밥을 담았던 것이라고 한다.
『쿠탐 포쿠나(Kuttam Pokuna)는 아누라다푸라 불교 유적군에 속한 **고대 쌍둥이 연못(트윈 풀)**로, 스리랑카 고대 토목·위생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시설입니다.
1. 명칭과 의미
쿠탐 포쿠나: “쌍둥이 연못”이라는 뜻, 영어 명칭: Twin Ponds
2. 위치
아바야기리 사원 단지(Abhayagiri Monastery) 인근 아누라다푸라 북부 구역
3. 건설 시기
대체로 서기 8~9세기로 추정. 아누라다푸라 후기 불교 도시 시기의 유적
4. 구조와 설계 특징
① 상·하 두 개의 연못: 위쪽 연못에서 정화된 물이 아래 연못으로 흘러가는 구조.
자연 낙차를 이용한 중력식 수리 설계
② 정교한 석조 계단과 벽체: 직선적이면서 균형 잡힌 석조 마감
장식보다 기능성과 비례미가 강조됨
③ 여과·정화 시스템: 물 유입부에 석재 필터 구조
침전 → 여과 → 저장의 단계적 처리 → 고대 기준으로 매우 선진적인 위생 설비
5. 용도
승려들의 목욕 및 생활용수. 의례 전 정화(淨化) 공간. 일반 대중용이 아닌 승가 전용 시설
6. 불교적 의미
청정은 불교 수행의 전제 조건
쿠탐 포쿠나는 청정한 몸 → 청정한 마음이라는 수행관을 공간화한 시설
7. 다른 수리 시설과의 비교
구분 쿠탐 포쿠나 일반 웨와(저수지)
규모 소형·정밀 대형·농업 중심
목적 승가 위생·수행 농업·도시 유지
기술 정화·여과 저장·분배
8. 아누라다푸라 문명에서의 위치
불교 사원은 단지 예배 공간이 아니라 주거·의료·위생을 포함한 복합 생활 공동체
쿠탐 포쿠나는 그 생활 인프라의 상징적 유적
9. 핵심 요약
쿠탐 포쿠나는 장식이 거의 없지만, 아누라다푸라 불교 문명이 얼마나 ‘실용적이고 과학적’이었는지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유적입니다.』
미힌탈레 유적군은 스리랑카 불교가 시작된 장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복합 불교 성지이다.
『미힌탈레 유적군(Mihintale Archaeological Complex)은 스리랑카 불교가 시작된 장소를 중심으로 형성된 복합 불교 성지 단지입니다. 단일 사원이 아니라, 불교 전래·수행·생활이 단계적으로 확장된 공간 전체를 의미합니다.
1. 위치와 범위
아누라다푸라 동쪽 약 12km, 여러 개의 바위 언덕과 계곡, 평지를 아우르는 산지형 성지
2. 역사적 의미
기원전 3세기, 마힌다 존자와 데바남피야 티사 왕의 만남
불교가 스리랑카에 공식적으로 전해진 출발점
3. 유적군의 핵심 구성
① 암바스탈라 다고바 (Ambasthala Dagoba)
불교 전래 사건의 현장. 미힌탈레의 중심 성지. 소형이지만 상징성은 최고 수준
② 마하 세야 (Maha Seya)
언덕 정상의 대형 스투파. 순례의 종착점이자 시각적 중심
③ 칸다카 체티야 (Kantaka Cetiya)
정교한 석조 장식이 남아 있는 초기 불탑. 스리랑카 고대 조형미의 기준점
④ 아라하트 동굴군
마힌다 존자와 초기 승려들의 수행처. 자연 암반을 그대로 활용
⑤ 고대 병원 및 약초 정원
승려·순례자를 위한 의료 시설. 불교의 자비·치유 사상의 제도화
4. 공간 구성의 특징
인공 구조물을 최소화. 자연 지형을 따라 단계적으로 배치
수행 → 예배 → 공동체 생활이 위계적으로 연결
5. 불교사적 의의
사원이나 탑보다 앞선 ‘가르침의 장소’. 스리랑카 불교의 정신적 원점
이후 아누라다푸라 불교 도시 형성의 토대
6. 아누라다푸라 유적군과의 관계
미힌탈레: 불교가 시작된 곳
아누라다푸라: 불교가 문명으로 완성된 곳 → 두 지역은 하나의 역사적 연속체
7. 답사·관람 시 유의점
계단 수가 많아 체력 소모 큼. 고온 시간대 피하는 것이 바람직. 일출·일몰 시간대 조망 가치 높음
8. 핵심 요약
미힌탈레 유적군은 ‘사원이 세워진 장소’가 아니라,
스리랑카 불교가 ‘이해되고 받아들여진 공간 전체’입니다.』
이것으로 오늘 일정을 끝내고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쯤 달려서 ‘담불라’로 이동하여 SIGIRIYA VILLAGE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이 엄청 크고 시설도 좋다. 스리랑카가 이 정도라고? 숙소는 단층건물로 넓게 배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150호를 배정받았는데 리조트 식이라 출입구도 일반 가정집을 들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내부는 벽체 일부를 유리 블록으로 꾸며놓아서 밝고 좋았다.
식당도 넓고 준비된 음식도 많다. 우리 팀은 항상 예약된 지정석에 앉았는데 식사할 때마다 어울리는 팀을 달리하다 보니 이제는 구성원들의 성향을 약간씩 파악할 수 있었다. 나도 술은 못하지만 대체로 술을 사양하는 분위기. 그래도 맥주 한 잔은 할 수 있잖아. 혼자 오신 분이 따라주는 맥주를 한 잔 시원하게 마셨다.
호텔이 도심에서 살짝 벗어나다 보니 밖으로 나갈 일이 없다. 숙소로 들어오면 샤워하고 Wifi 비번을 알아내어 가족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나서 일찍 자리에 들었다. 잠을 푹 자고 나면 다음날 활동하기 정말 수월하다. 더구나 이 SIGIRIYA VILLAGE에서 이틀을 묵는다고 되어 있어서 내일은 가방을 챙길 필요도 없다.
1월 21일 (수)
일찍 자면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은 당연하지. 오늘은 5시에 일어났다. 폰으로 뉴스를 좀 보고 나서 이미선과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아침 공기가 맑아서 참 좋다. 이 숙소의 현관문은 정말 희한한 구조다. 문짝이 상하 두 개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면 상부 문만 열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이런 문을 설치할 필요가 있었을까?
빵과 감자, 우유, 햄버그 등으로 아침 식사를 했다. 계란오물렛은 필수 종목인데 찾는 사람이 많아서 시간이 조금 걸렸다. 요리사마다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오늘은 조금 이른 시간인 7시 40분에 버스에 올랐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유명한 ‘시기리야’는 높이 200m인 바위 요새인데 정상까지 올라가려면 시원한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가이드 찬미씨의 배려(?)였다. 버스를 타고 나오자마자 바로 시기리야 일명 ‘사자바위’가 보였다. 여기서 시기리야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가이드는 폰사진을 제법 잘 찍어준다. 어쩌면 저렇게 큰 바위가 광활한 평원에 홀연히 나타났을까? 그리고 저렇게 놓은 곳에 궁전을 짓겠다는 발상은 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 할 수 있단 말인가? 거의 정신병자 수준이 아닐는지...
입장권을 받아 안으로 들어가니 건물을 지었던 기초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 황토로 만든 벽돌로 구성되어 있다. 상부는 목구조라 남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다. 습도가 높아서 목구조는 오래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올라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거의 수직 절벽같이 보이던 시기리야도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올라가니까 철로 만든 계단도 있었다. 그런데 철계단이 없었던 시절에도 사람은 올랐을 텐데, 어떻게 올랐을지 주변을 살펴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 희한하네~
중간쯤 올랐을까.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정면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양쪽에 큰 바위로 사자가 엎드린 형상의 앞발이 2개 설치되어 있다. 고개를 조금 더 들어보니 바위산의 형상이 영락없이 사자의 옆 모습이다. 사자바위 이름의 유래가 이 바위에서 비롯되었나 보다. 잠시 쉬었다가 계단을 밟고 위로 올라갔다. 경사는 심했지만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었다.
정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와, 이렇게 높은 고지에 왕궁을 지었다고? 그야말로 미친 짓이다. 왕궁, 연회 공간, 저수 시설 등등 수만 개의 벽돌 기단이 남아 있는 것으로 봐서 건물 규모도 상당히 컸다고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카샤파 1세는 동생의 반란을 몹시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래서 적의 침입을 감지하기 위하여 이렇게 높은 고지에 궁전을 지었다는데.... 결국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어렵게 만든 궁전이 후손들의 관광산업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가이드는 정상에서 40여 분 시간을 주며 사진도 찍고 구경을 하라고 한다. 우리는 아래에 보이는 저수지까지 갔다 오면서 이곳저곳 꼼꼼히 둘러보았다. 내려오는 길은 철제계단을 통해 우회하도록 되어있었다. 중간쯤 되는 곳에 벽화를 그려놓은 동굴이 있었다. 여기서는 폰 사진도 촬영 금지다. 사진이 없으니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19금의 일종이었나?ㅎㅎ 내려오니 10시 15분이다. 2시간쯤 구경했구나. 일찍 서둘렀기에 망정이지 늦게 올랐더라면 땀께나 흘렸겠다.
『시기리야(Sigiriya)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고대 왕궁 유적이자, 불교·왕권·예술·도시계획이 결합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사자의 바위(Lion Rock)”**로 불립니다.
1. 위치
스리랑카 중북부, 담불라(Dambulla) 인근, 아누라다푸라–폴론나루와를 잇는 축선상
2. 역사적 배경
서기 5세기 **카샤파 1세(Kashyapa I)**가 건설
왕위 찬탈 후 방어와 권위 과시를 위해 바위 정상에 궁성 조성
카샤파 사후, 다시 불교 수도원으로 전환
3. 구조와 도시계획
① 거대한 암반 요새
높이 약 200m의 단일 암반. 정상부에 왕궁·연회 공간·저수 시설
② 정원 시스템
수경(水景) 정원: 대칭·축선·분수 구조
암반 정원: 자연 바위 활용
테라스 정원: 경사면을 단계화 → 남아시아 최고 수준의 고대 조경 기술
4. 대표 유적 요소
① 시기리야 프레스코화
반신(半身) 여성상들. 왕실 시녀·천녀(아프사라)로 해석
남아 있는 수는 제한적이나 예술사적 가치 매우 높음
② 거울의 벽(Mirror Wall)
석회로 연마된 광택 벽면. 7~13세기 방문자들의 시문(詩文) 낙서 기록
고대 스리랑카 문학 자료
③ 사자문(Lion Gate)
정상 진입부. 거대한 사자 조형의 발톱만 현존. 왕권·위엄의 상징
5. 불교·문화사적 의미
왕궁과 수도원이 시간적으로 겹쳐 존재. 세속 권력과 수행 공간의 공존
불교 국가에서 왕권이 공간적으로 표현된 대표 사례
6. 관람 유의사항
계단과 노출 구간 많음. 고소공포증 주의. 이른 아침 또는 늦은 오후 관람 권장
7. 핵심 요약
시기리야는 단순한 성채가 아니라, 권력·예술·자연·불교가 하나의 바위 위에 응축된 고대 스리랑카 문명의 결정체입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쯤 이동하여 ‘폴론나루와’로 갔다. 도로에서 제법 떨어진 식당으로 가서 점심 식사를 했다. 여기도 간판은 없고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식당인가 보다. 준비된 음식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나는 빵과 과일, 커피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폴론나루와(Polonnaruwa)는 아누라다푸라 이후 스리랑카의 중세 수도로 기능한 도시로, 불교 예술과 국가 행정이 가장 정제된 형태로 구현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1. 도시의 위상
수도 기간: 서기 11세기~13세기. 아누라다푸라 쇠퇴 이후 정치·군사·불교 중심지로 부상
고대 → 중세로 이행하는 전환기의 수도
2. 역사적 배경
남인도 촐라(Chola) 왕조의 침입 이후 재건. 비자야바후 1세가 독립 회복
파라크라마바후 1세 시대에 전성기 도달. 행정개혁. 대규모 수리·관개 사업. 불교 교단 정비
3. 도시 구조의 특징
계획도시 성격이 강함. 왕궁·사원·수리시설이 명확히 구획. 아누라다푸라보다 집약적·실용적
4. 핵심 유적
① 왕궁 단지 (Royal Palace)
파라크라마바후 1세의 궁성. 다층 구조의 석조 건축. 왕권의 세속적 위엄을 강조
② 갈 비하라(Gal Vihara)
폴론나루와 불교 예술의 정점. 하나의 암반을 깎아 만든 4존 불상. 좌상·입상·와상
절제·균형·내면성의 극치
③ 와타다게(Vatadage)
원형 불전(佛殿). 불치·사리 봉안 추정. 장식성과 의례성이 결합
④ 파라크라마 사무드라(Parakrama Samudra)
거대한 인공 저수지. “한 방울의 물도 바다로 흘려보내지 말라”는 국정 철학의 상징
5. 불교사적 의의
불교가 왕권과 제도 속에서 안정적으로 정착. 과도한 장엄함을 배제한 내면적·사색적 불교 미학. 상좌부 불교 전통의 정형화
6. 아누라다푸라와의 비교
구분 아누라다푸라 폴론나루와
시대 고대 중세
성격 확장·축적 정비·집약
상징 불교 문명 형성 불교 국가 운영
미술 규모 중심 완성도 중심
7. 방문·답사 관점
유적 간 거리가 있어 자전거 답사 적합. 오전·해질녘 관람 권장
갈 비하라는 해설 이해도에 따라 감상 차이가 큼
8. 핵심 요약
폴론나루와는 불교가 ‘웅장한 문명’에서
‘성숙한 국가 운영의 철학’으로 정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수도입니다.』
오후 첫 방문지는 ‘고고학 박물관’이었다. 스리랑카 불교문화에 대하여 워낙 문외한이라 전시된 물품에 대한 이해도는 zero라고 해야겠지. 가이드 뒤를 따라다니며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전시된 부처님들의 목과 팔이 잘려져 있고 눈에 박혔던 보석도 떨어져 나가고 없다. 힌두교도들의 만행이라고 한다. 이념전쟁은 이렇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니까. 팔이 여러 개 달린 조각상도 있다. 팔이 많으면 좋은가?
『폴론나루와 고고학박물관(Polonnaruwa Archaeological Museum)은 폴론나루와 유적군을 이해하기 위한 해설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공식 박물관입니다. 야외 유적 답사 전·후에 반드시 들를 가치가 있는 시설입니다.
1. 위치와 성격
폴론나루와 유적군 입구 인근, 스리랑카 고고학국(Department of Archaeology) 운영
폴론나루와 왕도 전체를 해석하는 종합 해설 박물관
2. 박물관의 역할
흩어져 있는 유적을 연대·기능·공간 구조로 정리
야외 유적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건축 원형, 조각의 원래 배치, 도시 계획을 시각적으로 설명
3. 주요 전시 내용
① 유적 모형(디오라마)
왕궁 단지, 쿼드랭글, 갈 비하라, 랑콧 비하라 등의 복원 모형
파괴 이전의 원래 규모와 배치를 한눈에 이해 가능
② 불상·조각 파편
폴론나루와 시대 불상 두부·수부(手部). 장식 석조, 난간, 문지방
갈 비하라 조각과의 양식 비교에 유용
③ 일상 유물
토기, 금속기구, 장신구
승려와 왕실의 생활상 자료→ 폴론나루와가 살아 있는 도시였음을 보여줌
④ 석문·명문 자료
니산카 말라 왕 관련 비문 해설, 갈 포타(Gal Potha) 이해에 도움
4. 시대적 초점
11~13세기 폴론나루와 전성기, 파라크라마바후 1세·니산카 말라 왕 시기 중심
아누라다푸라 → 폴론나루와로 이어지는 불교 국가의 진화 과정
5. 관람 전략 (실질 팁)
답사 전 관람: 전체 구조 파악에 최적, 답사 후 관람: 실제 유적과의 대응·정리 효과 큼
쿼드랭글·갈 비하라 해설 이해도가 크게 향상됨
6. 다른 박물관과의 차별점
단순 유물 전시가 아니라 “도시 전체를 설명하는 박물관”
특히 복원 모형의 질과 정보 밀도가 높음
7. 핵심 요약
폴론나루와 고고학박물관은 유적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폴론나루와를 ‘이해하는 장소’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오래된 불치사, 법당을 개보수하고 있는 현장이 보였다. 안내문 사진을 챗GPT에 물어보니 ‘불치사는 벨리카라 병사들이 끝까지 지켜야 할 성스러운 장소’임을 명시하였고, 사원을 훼손하거나 침입하는 자는 중죄로 다스린다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가 ‘쿼드랭글 사원’이구나.
『쿼드랭글 사원(Quadrangle)은 폴론나루와 유적군의 핵심 성역으로, 정식 명칭은 **달라다 말루와(Dalada Maluwa)**입니다. 폴론나루와 불교의 의례·교단·왕권이 가장 밀도 높게 집약된 공간입니다.
1. 명칭과 성격
Quadrangle: 네모난 경내 배치에서 유래한 서구식 명칭
Dalada Maluwa: “불치(佛齒)의 뜰” → 왕실 차원의 최고 성지 구역
2. 위치
폴론나루와 중심부, 왕궁 단지와 인접, 소규모 공간 안에 주요 사원이 집중 배치
3. 조성 시기
12세기 파라크라마바후 1세 ~ 니산카 말라 왕 시기
불교 교단 정비와 왕권의 종교적 정당성 강화 국면
4. 주요 구성 유적
① 와타다게(Vatadage)
원형 불전, 불치 또는 사리 봉안 추정, 네 방향 불상 배치 → 우주적 질서 상징
② 하타다게(Hatada-ge)
“60개의 방을 가진 사원”, 불치 봉안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 의례 중심 공간
③ 아타다게(Atadage)
하타다게 이전의 불치 사원, 현재는 기단부 중심으로 잔존
④ 갈 포타(Gal Potha, 석서)
니산카 말라 왕의 치적을 새긴 거대한 석판, 왕권과 불교의 결합을 문자로 선언
⑤ 투파라마(폴론나루와 투파라마)
벽체와 지붕이 남아 있는 희귀한 불전, 내부 불상과 벽화 흔적
5. 공간적 특징
높은 기단 위에 사원들이 밀집, 외부 세계와 분리된 성역화된 구성
대형 스투파보다 의례·보존 중심
6. 불교사적 의의
폴론나루와 불교의 정신적 핵, 불치 신앙을 통해 왕권의 정통성을 확보
아누라다푸라의 전통을 중세적으로 재구성
7. 핵심 요약
쿼드랭글 사원은 폴론나루와 불교의 ‘의례적 중심’이자,
불치 신앙을 통해 왕권과 불교가 결합된 가장 상징적인 성역입니다.』
‘랑콧비하라’는 스리랑카의 두 번째로 거대한 스투파라고 한다. 금으로 만든 첨탑을 의미한다. 뾰족한 부분이 금으로 덮여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금 색깔이 보이지 않고 보수공사를 한다고 비계만 복잡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도 동서남북 네 곳에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한 바퀴 돌면서 구경하였다.
『랑콧 비하라(Rankoth Vihara)는 폴론나루와 유적군을 대표하는 **대형 스투파(불탑)**로, 중세 스리랑카 불교 국가의 위상과 왕권의 신앙적 정당성을 상징하는 건축물입니다.
1. 명칭과 의미
랑콧(Rankoth): “황금 첨탑”이라는 뜻
비하라(Vihara): 사원·수행처 → “황금 첨탑을 지닌 사원”
2. 위치
폴론나루와(Polonnaruwa) 중심 유적 구역. 키리 비하라(Kiri Vihara)와 인접
3. 건립 시기와 배경
12세기 니산카 말라 왕(Nissanka Malla) 건립
아누라다푸라 전통의 대형 스투파를 중세 수도에서 계승하려는 의도
4. 구조와 규모
높이 약 55m, 반구형 스투파 구조, 아누라다푸라의 루완웰리세야를 모델로 삼음
폴론나루와에서 가장 큰 불탑
5. 건축적 특징
장식은 절제, 비례와 규모 중심, 기단부에 순례용 회랑, 멀리서도 식별 가능한 도시랜드마크
6. 불교사적 의의
폴론나루와가 아누라다푸라의 불교 전통을 단절 없이 계승했음을 보여주는 증거
왕권과 불교 신앙의 결합 상징. 중세 불교 국가의 공적 신앙 공간
7. 관람 포인트
불탑 전체의 비례와 곡선. 주변 유적과의 공간적 관계. 석양 시간대의 실루엣
8. 핵심 요약
랑콧 비하라는 폴론나루와가 단순한 중세 수도가 아니라,
아누라다푸라 불교 문명의 정통 후계자임을 선언하는 상징적 대탑입니다.』
랑카틸라카 사원은 대표적인 불교 사원으로 높이 18m의 거대한 건축물이다. 과거에는 지붕이 있었지만 지금은 붕괴되어 없다. 내부에 17m의 큰 불상도 모셔져 있다.
『랑카틸라카 사원(Lankatilaka Vihara)은 폴론나루와 유적군을 대표하는 **대형 벽체식 불전(佛殿)**으로, 폴론나루와 불교 건축의 기술적 정점을 보여주는 사원입니다.
1. 위치와 개요
폴론나루와 유적군 동쪽 구역 갈 비하라·제트바나라마 인근, 왕실 후원 하에 조성된 국가적 불전
2. 조성 시기
12세기 후반 파라크라마바후 1세 재위기, 불교 교단 정비와 대규모 불교 건축이 활발하던 시기
3. 건축적 특징
① 압도적인 벽체 구조
벽 두께 약 3~4m, 현재는 지붕이 소실되었으나, 원래는 매우 높은 아치형 지붕 존재
내부가 좁고 높아 수직적 숭엄감이 강함
② 내부 불상
대형 입상(立像) 불상, 머리 부분은 소실되었으나, 신체 비례와 조형미가 뛰어남
수행자보다 왕실 의례용 불전 성격이 강함
③ 출입구와 문지방
화려한 석조 문틀 장식, 사자·신화적 문양 → 성역 경계 강조
4. 기능과 성격
일반 대중 수행 공간보다는 왕실·고위 승려 의례 중심 사원. 갈 비하라(암반 조각)와 달리
인공 건축을 통한 권위 표현
5. 폴론나루와 불교에서의 위치
갈 비하라 → 수행·사색의 공간
쿼드랭글 → 불치 신앙과 왕권 상징
랑카틸라카 → 국가 불교의 위엄과 기술력
6. 답사 포인트
외벽 두께와 내부 공간 대비. 불상 발·하반신 조각의 사실성. 문지방·벽면의 장식 흔적
7. 핵심 요약
랑카틸라카 사원은 폴론나루와 시대가 도달한
불교 건축의 규모·기술·권위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불전입니다.』
10분 정도 걸어서 ‘갈비하라 사원’을 보러 갔다.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만든 불교사원으로 여기에는 열반상·입상·좌상 등 4기의 불상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맨 오른쪽에 길이가 14m나 되는 열반상은 오른팔로 머리를 괴고 왼팔은 몸을 따라 쭉 뻗은 형상이며, 열반상 특유의 좌우 크기가 다른 발 모습도 볼 수 있다. 입상의 높이는 7m, 좌불상은 5m에 달한다. 팔짱을 끼고 있는 입상은 석가의 수제자인 아난 존자라고 한다. 하지만 연꽃대좌에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석가의 제자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은 석가라는 설도 있다. 좌불상은 진리를 터득한 석존을 나타낸 것이다. 중앙 좌불상에는 철망과 유리판을 설치하였는데 왜 이렇게 가려놓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갈 비하라 사원(Gal Vihara)**은 폴론나루와 불교 유적군의 핵심이자, 스리랑카 불교 조각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암반 사원입니다.
1. 위치
폴론나루와(Polonnaruwa) 유적군 동부. 왕궁 단지 인근
2. 조성 시기와 배경
12세기 중반, 파라크라마바후 1세 재위 시기
불교 교단을 정비하고 수행 중심의 불교를 확립하던 시기
3. 사원의 구성 (하나의 암반에 새긴 4존 불상)
① 좌불(坐佛)
명상 자세의 부처. 내면 집중과 깨달음을 상징. 표정이 극도로 절제됨
② 입불(立佛)
손을 모은 듯한 자세. 해석 논쟁 존재. 부처의 자비. 혹은 열반에 든 부처를 슬퍼하는 아난다 존자
③ 와불(臥佛)
길이 약 14m. 열반에 드는 부처의 모습. 생과 사를 초월한 평온함 표현
④ 소형 좌불(동굴 불상)
수행 공간적 성격. 개인 수행자 중심의 불상
4. 예술사적 특징
하나의 바위를 깎아 만든 완전한 일체형 조각. 장식 최소화, 비례·균형·정신성 강조
인도 굽타 미술의 영향 + 스리랑카 고유의 절제미
5. 불교적 의미
외형적 장엄함보다 내면의 해탈 강조. 왕권의 과시보다 정법(正法)의 구현이 목적
폴론나루와 불교의 정신적 정점
6. 관람 시 유의사항
신발 착용 금지. 불상에 등을 보이고 사진 촬영 금지
한낮 직사광선 시간대는 표정 감상 어려움
7. 핵심 요약
갈 비하라는 ‘보여주기 위한 불상’이 아니라,
‘수행자를 변화시키는 불상’으로 설계된 공간입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가이드가 야자수를 하나씩 제공한다. 필리핀에서 먹을 때는 느끼하여 무슨 맛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는데 여기 야자수는 약간 단맛도 느껴지며
갈증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서 호텔로 복귀했다. 가이드는 수영장을 이용해도 괜찮다고 하였지만 이미 땀도 다 식어서 물에 들어갈 마음은 나지 않았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식당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했다. 맥주를 한 병 주문하여 이미선과 나누어 마셨다. 호텔 시설도 좋고 분위기도 좋으니까 맥주 한잔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맥주 가격이 9,000원이나 하네. 스리랑카의 경제가 엉망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비쌀줄은 몰랐다. 대통령이 곡간 사정은 무시하고 막 퍼주는 선심 정책을 펼쳐 경제가 망가졌단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에 편승하여 항만시설, 공항, 고속도로, 발전소 등 대형 공사를 빗을 내서 벌이는 바람에 외채의 50%는 중국 관련 부채라고 한다. 함반토타 항구의 운영권을 99년간 중국에 넘겨주었다는 뉴스도 나왔다. 결국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고 IMF구제금융 신세를 지고 있는데 완전한 복구와 지속가능한 성장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숙소로 와서 샤워를 하고 오늘도 일찍 자리에 들었다. 집이 아니어도 잠이 쉽게 드니까 천만 다행이다. 회사 다닐 때는 몸이 피곤해도 잠을 이루지 못해 고전을 했는데... 스트레스가 이렇게 무섭다니까.
1월 22일 (목)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하고 8시 10분에 버스에 올라서 ‘담불라 석굴 황금사원’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제법 걸어 올라가니 사원이 나타났다. 이곳은 큰 바위산 허리 부분의 동굴을 이용하여 석굴을 만들고 5개의 방으로 구분하여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스리랑카 사원에는 와불이 많은데 누워있는 자세는 부처님이 열반에 드는 모습이라고 한다. 여기에도 1번 석굴에는 길이 14.3m의 열반상이 안치되어있다. 2번 석굴은 내부 공간이 크고 면적도 넓다. 이곳은 천장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다. 벽화는 불교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스리랑카의 역사적 사건도 담겨 있다. 특이한 점은 바로 바닥 중앙에 있는 항아리인데, 이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기 위함이다. 이 물은 성수로 여겨 불교의식이 있을 때마다 사용한다. 3번 석굴에는 다양한 불상과 벽화가 조성됐는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왕의 형상이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한 모습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는 왕의 불심을 엿볼 수 있다. 4번 석굴은 ‘서쪽 사원’으로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가장 서쪽에 있는 사원’이란 뜻이다. 현재는 벽과 천장에 벽화가 가득하고 내부에 ‘소마 차이티야(Soma Chaitya)’라고 불리는 불탑이 있다. 5번 석굴은 ‘새로운 신의 사원’(Deva Alt Vihára)으로 불리지만 원래는 창고로 쓰였던 석굴이라고 한다. 현재는 와불과 더불어 10구의 불상 외에도 힌두 신상이 조성되어 있는데, 다섯 개의 석굴 사원 중 벽화의 조성 기술이나 보존상태가 가장 안 좋다.
현재 다섯 개의 석굴 사원에는 불상 153구와 왕의 상 3구, 그리고 힌두 신상 4구가 안치되어있다. 이 상들 모두 처음부터 조성되어 내려왔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상당수는 후에 조성했거나 개·보수할 때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담불라황금사원의 진면목은 조각보다는 벽화에서 찾아야 한다. 유네스코에서 1991년 이곳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도 벽화의 중요도 때문이다.
『담불라 석굴 사원(Dambulla Cave Temple, 황금 사원)은 스리랑카 중부에 위치한 불교 유적지로, 1세기 BCE부터 조성된 동굴 사원군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1991)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스리랑카에서 가장 잘 보존된 석굴 사원으로 평가받습니다.
1. 핵심 포인트
위치: 스리랑카 중부 담불라(Dambulla)
구성: 5개의 주요 동굴
불상 수: 약 150여 점(좌상·입상·와불 등)
벽화: 총 면적 약 2,100㎡—부처의 생애와 불교 설화 묘사
시대: 기원전 1세기~18세기까지 지속적 확장
2. 동굴별 특징
데바라자 비하라: 14m 길이의 와불이 중심.
마하라자 비하라: 가장 규모가 큼—대형 불상과 정교한 벽화.
마하 알루트 비하라: 후기 양식의 장식적 벽화.
파스차마 비하라: 상대적으로 소규모, 조용한 분위기.
데바나 알루트 비하라: 근대기에 추가된 동굴.
3. 방문 팁
복장: 어깨·무릎 가리는 복장 필수(신발 벗고 입장).
시간대: 오전 일찍 방문하면 덜 붐빔.
동선: 주차장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므로 편한 신발 추천.』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이동하여 ‘알루비하라’로 갔다. 알루비하라 사원은 기원전 3세기 불교가 전래된 이후 승려들의 거주지로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경전을 문자로 기록한 패엽경이 이곳에서 만들어지면서 성스러운 사원으로 여겨져 불탑을 만들었다. 여기에도 와불이 계신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석굴의 높이가 높지 않다 보니 누운 와불을 길고 크게 만들어서 사원의 위엄을 갖추었다고 한다.
『알루비하라 사원(Aluvihara Rock Temple)은 스리랑카 불교사에서 결정적 의미를 지닌 유적지입니다. 핵심 내용만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1. 위치
스리랑카 마탈레(Matale) 인근, 담불라에서 남쪽으로 약 25~30km
캔디(Kandy)와 담불라를 잇는 주요 내륙 교통축에 위치
2. 역사적 중요성
기원전 1세기경 조성
아누라다푸라 왕조 시기, 왈라감바후 1세(Vattagamani Abhaya) 재위 중
스리랑카 불교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발생지. 삼장(팔리어 불경)의 문자화
그전까지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던 팔리어 삼장(Tripiṭaka)을 처음으로 문자로 기록한 장소
전란과 기근으로 구전 전승이 단절될 위험에 처하자, 승려들이 결집하여 기록
→ 불교 경전 전승 체계의 결정적 전환점
3. 사원의 구성과 특징
화강암 바위산을 활용한 석굴 사원, 여러 개의 동굴과 암벽 사당으로 구성
동굴 내부:
불상(좌불·와불), 지옥도, 윤회도 등 교학적 성격이 강한 벽화,
후대에 건립된 소규모 불전과 승방 포함
4. 종교·문화적 의의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의 교학 중심지. 불교 경전의 표준화·보존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현장
단순한 참배지를 넘어 불교 문헌사(文獻史)의 성지
5. 담불라·미힌탈레와의 관계
담불라: 불교 미술·석굴 건축의 정수
미힌탈레: 스리랑카 불교 전래의 출발점
알루비하라: 불교 경전 문자화의 현장
요약하면, **알루비하라 사원은 “불교 경전이 말에서 글로 옮겨진 곳”**이라는 점에서, 스리랑카 불교사 전체를 규정한 핵심 유적지입니다.』
다시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캔디’로 갔다. 캔디로 스리랑카의 종교·역사·문화가 응축된 핵심 도시다. 식당으로 가서 점심 식사를 했다. 가는 도시마다 식당 간판은 보이지 않지만 가이드와 운전기사는 어떻게 알고 잘도 찾아간다. 가이드가 경치가 좋은 식당이라고 자랑을 하였는데 좌석에 앉아서 보니 그저 그런 풍광이다. 좋은 경치에 대한 기준이 다른가 보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빵과 주스를 먹고 있는데, 이미선은 준비한 쌀국수를 꺼내는 것이다. 이 식당에 설치된 수통에서 hot water를 받았는데 뜨거운 물이 아니라 미지근한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미지근한 물로는 쌀국수를 불릴 수가 없다. 국물만 조금 떠먹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최대규모의 식물원이라는 ‘페라데니아 식물원’으로 갔다. 18만 평에 달하는 넓은 면적에 4,000종 이상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열대 및 약용식물, 야자수 등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있는 나무는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이라고 한다. 다양한 종류의 난초가 있는 난초 하우스가 유명하다. 하루 30cm까지 자란다는 버마 대나무는 직경이 20cm가 넘는 것도 많았는데 대나무가 너무 굵으니까 보기 흉하다. 오래된 고목은 수령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너무 굵고 커서 징그럽다. 원형 잔디밭도 넓게 조성되어 있었는데 외국 정상급 손님들이 방문하면 기념 식수를 하고 명단을 안내판에 적어 놓는다고 한다. 태극기는 보이지 않았다. 벤자민고무나무는 참 희한하다.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는데 땅으로 내려온 가지는 다시 뿌리를 내리면서 지지대 역할을 한다. 서로 다른 나무에서 나온 가지가 만나면 마치 연리지 나무처럼 합쳐지는 모양도 특이하다.
『페라데니야 식물원(Peradeniya Botanical Gardens)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학술적·관광적 가치가 높은 국립 식물원입니다. 핵심 사항을 정리합니다.
1. 위치와 개요
위치: 스리랑카 캔디(Kandy) 서쪽 약 6km,
마하웰리 강(Mahaweli River)에 둘러싸인 반도형 지형
면적: 약 60헥타르(150에이커)
설립: 1821년(영국 식민지 시기 정비)
2. 역사적 배경
원래는 캔디 왕국의 왕실 정원
영국 통치하에서 열대 식물 연구·수집 목적의 식물원으로 체계화
스리랑카 국립 농업·식물학 연구의 출발점
3. 주요 식물 컬렉션
① 난초 정원(Orchid House)
약 300종 이상의 난초, 스리랑카 토착종과 열대 희귀종 전시, 개화 시기에는 식물원 하이라이트
② 야자수 가로수(Avenue of Royal Palms)
키가 30m 이상 자라는 왕야자, 식물원의 상징적 경관
③ 대나무 숲
거대 대나무(높이 20m 이상), 아시아·남미산 희귀종 포함
④ 향신료·약용식물 구역
계피, 정향, 육두구 등, 스리랑카 전통 의학과 연결
4. 학술적·문화적 가치
열대 식물 8,000종 이상 보존·전시, 식물 분류학·농업 연구의 핵심 기관
조경 설계가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영국식 경관 정원
5. 관광 포인트
잘 정비된 산책로와 잔디 광장, 캔디 시내보다 기온이 낮아 쾌적, 반나절 일정으로 적합
6. 캔디 관광 동선에서의 위치
불치사 → 캔디 호수 → 페라데니야 식물원
불교 유적 + 자연 경관을 결합한 대표 코스
7. 요약
스리랑카 최대 식물원, 왕실 정원에서 출발한 역사, 관광·학술·휴식 기능을 동시에 갖춘 공간. 정리하면, 페라데니야 식물원은 캔디의 종교·역사 관광에 자연과 학문적 깊이를 더해주는 필수 방문지입니다.』
식물원을 나와서 민속춤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장은 조금 전에 식사를 했던 식당이다. 식당 건물이 도로에서 보면 지하 4층, 지상 2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공연장은 지상 1층에 마련되어 있었다. 극장식 공연장이 아니고 평면 바닥에 의자 갖다 놓고 전면 무대에서 무희들이 공연을 하는 것이다. 가이드가 주는 안내문을 보니 모두 12개 작품을 공연한다고 되어 있다. 장구처럼 생긴 전통 악기와 관악기를 입에 물고 7,8명이 나와서 시연을 했다. 무대가 좁고 시야가 가려져서 강한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작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사람들이 나와서 공연을 하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50여 분 구경을 하고 나왔다.
6시쯤 되어서 ‘MYST BY CINNAMON 호텔’로 들어갔다. 이 호텔은 시내에 있고 호텔 바로 옆에 대형 마트도 있었다. 건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식 호텔이라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기분도 좋았다. 623호를 배정받아 들어갔더니 방도 넓고 시설이 수준급이다. 마트 구경을 하려고 가서 캔맥주 2개를 5,000원에 샀다. 호텔보다는 당연히 저렴하지.
식당으로 가니 반찬 종류가 꽤 많다. 그렇지만 내가 선호하는 음식은 몇 개 되지 않으니 내가 더 답답하다. 이미선은 이것저것 먹어보라고 권하지만 맛과 향에 이상이 없는 몇 가지만 들어다 먹고 끝냈다.
수영장이 9층에 있었다. 온수로 채워져 있어서 늦은 밤에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날씬한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물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내려왔다. 젖은 수영복을 말리는 것도 귀찮은 일이다.
우리 숙소가 있는 6층에는 테라스가 설치되어 있었다. 마트에서 구입한 캔맥주를 들고 테라스로 갔더니 우리 팀 남성 2명이 자리를 선점하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도 합석하여 같이 얘기를 나누었다. 여행 다녀온 경험담을 들려주는 자리라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1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고 들어왔다.
오늘은 우리 혜인이의 8번째 생일이다. 전체 가족 카톡방에 올려서 축하 덕담을 구했다.
1월 23일 (금)
오늘은 일정에 여유가 있는지 가이드는 9시에 출발하겠다고 했다. 1시간의 틈이 있으니 한결 수월하네. 그래도 습관대로 7시에 식당으로 갔다. 고급호텔답게 식당도 수준급이다. 골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널렸지만 나는 오늘도 계란오물렛과 빵, 우유로 아침 식사를 했다.
불치사는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보관하는 사원이다. 시내에 자리잡고 있어서 신자들의 방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를 입장하려면 당연히(?) 신발과 모자를 벗고 들어가야 한다. 사람도 많았지만 목에 쇠사슬을 칭칭 감은 큰 코끼리를 몰고 가는 사람도 보였다. 이 사원 소유의 코끼리인가 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악기 소리가 요란하다. 어제 민속춤 공연에서 들었던 소리다. 여기는 자원봉사를 하는 신자들이 많다고 하는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자발적으로 하는지 모르겠다. 1층 내부를 둘러보는 중에 벽에 걸린 ‘황금 사리함’ 액자가 눈에 띄었다. 이 황금 사리함이 바로 불치사의 핵심인 치아 사리를 보관하고 있는 성물이고, 사람들은 이 성물을 보기 위하여 2층으로 줄지어 올라가는 것이다. 직접 성물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고 하여 나는 액자 사진을 몇 장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 불치사에는 불교 박물관이 있었다. 입적하신 주지 스님이 불교 관련 온갖 물건을 모으셨다고 한다. 보관 장소가 협소하여 귀중한 문화재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 놓은 것이 안타깝다. 시외에 넓은 사원도 많던데 그리로 이전하면 안 되나?
밖으로 나오니 넓은 호수가 있었다. 캔디 호수라고 한다. 1807년 캔디 왕국에서 조성하였는데 지금은 캔디 도심의 상징적인 휴식 공간이다. 4층 규모의 흰색 건물은 유명한 퀸즈 호텔이다. 영국 여왕이 묵었던 호텔이라고 한다.
『불치사(佛齒寺)는 스리랑카 불교 신앙의 정점에 해당하는 성지입니다. 정식 명칭과 핵심 의미를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1. 정식 명칭과 위치
정식 명칭: 스리 달라다 말리가와(Sri Dalada Maligawa)
위치: 스리랑카 캔디(Kandy) 시 중심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캔디 역사 도시의 핵심 구성 요소)
2. 불치(佛齒)의 의미
불치란 부처 석가모니의 치아 사리. 스리랑카 불교에서 가장 신성한 성물
전통적 인식:
“불치를 보유한 자가 정통 왕권을 가진다” → 종교적 성물인 동시에 왕권 정당성의 상징
3. 역사적 배경
불치는 4세기경 인도 칼링가 지역에서 스리랑카로 전래
이후 아누라다푸라 → 폴론나루와 → 캔디로 이동
각 시대의 수도에 봉안되며 국가적 보호 대상이 됨
현재 건물은 주로 17~18세기 캔디 왕국 시기의 양식
4. 건축과 내부 구조
캔디 전통 건축과 남인도 양식의 결합, 흰색 석조 외관, 목조 장식, 황금 지붕
내부 핵심 공간: 불치 봉안실, 7중으로 된 황금 사리함(Dagoba 형태)
※ 일반 참배객은 사리함을 직접 보지 못하며, 의식 시간에만 봉안실 앞에서 예배
5. 종교의식 (푸자, Pooja)
하루 3회 정기 의식: 새벽, 오전, 저녁
북과 나팔 연주, 공양 봉헌, 국내외 불자들이 끊임없이 참배
6. 캔디 페라헤라와의 관계
**에살라 페라헤라(Esala Perahera)**의 중심 사원
불치의 상징 사리함 복제품을 코끼리에 모시고 대행진. 국가적·종교적 최대 행사
7. 종교·문화적 위상 요약
스리랑카 불교의 최고 성지, 왕권과 불교가 결합된 상징 공간
현재도 살아 있는 예배와 의례가 이어지는 사원
결론적으로, 불치사는
**“부처의 사리가 봉안된 사원이자, 스리랑카 국가 정체성을 형성한 신앙·권력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시간 남짓 달려서 ‘누와라엘리야’로 갔다. 대표적인 휴양 도시로 해발 1,900m의 고산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서늘한 기후를 가진 지역이며, 기후·차 문화·식민지 유산이 결합된 곳으로 작은 영국으로도 불리고 있다. 가이드는 오늘도 전망이 좋다는 식당으로 안내했다. 역시 ‘전망 좋다’는 인식은 차이가 있구나. 그려려니하고 넘어가자. 이 식당에서는 테이블에 김치도 내어놓았네. 상추도 놓여있었지만 찍어 먹을 장은 없다. 수통의 물이 뜨거운 것을 확인하고 쌀국수에 받아서 오랜만에 입맛에 맞는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산업 ‘홍차 재배 공장’으로 갔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BLUE FIELD라는 공장으로 1840년부터 가동하였다고 한다. 차 재배 농장도 아주 넓었고 여기서 생산한 차를 가공하여 상품으로 만드는 공장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는 공장 안으로 들어가서 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경했다. 녹차의 향긋한 냄새가 좋았다. 밖으로 나오니 차를 판매하는 매점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차들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가격이 생각만큼 저렴하지는 않았다. 기념으로 몇 가지만 사려다가 포기했다. 집에는 평생 먹어도 남을만큼 많은 차가 있잖아.
시내로 내려와서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우체국 휴양 숙소를 구경했다. 붉은 벽돌 외관과 하얀 격자무늬 창틀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축 양식이다. 뽀족한 박공지붕과 경사진 기와 지붕은 영국 시골 별장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으로 들어가니 많은 사람들이 엽서를 구입하여 소식을 적어서 우체통에 넣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붉은색의 우체통(POST OFFICE)이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건너편 ‘빅토리아 공원’으로 갔다. 대체로 관리가 잘되어 있었고 큰나무들도 제법 많았다. 여기는 도심 속의 공원이라 누구라도 들어와서 한가롭게 거닐 수 있다. 공원이 크지는 않아서 30여 분 산책을 하고 나왔다.
『빅토리아 공원(Victoria Park)은 누와라엘리야 도심에 위치한 대표적인 고원 도시 공원으로, 휴식·자연 관찰·식민지 유산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공간입니다.
1. 위치와 개요
위치: 누와라엘리야 시내 중심부, 면적: 약 11헥타르, 조성 시기: 1897년
명칭 유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2. 역사적 배경
영국 식민지 시기 조성된 영국식 도시공원, 고산 휴양지 누와라엘리야의 도시 경관 계획 핵심 요소, 현재는 스리랑카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 공원
3. 자연·식생 특징
고산 기후에 적응한 온대성 식물 중심
주요 수목: 참나무, 편백, 소나무 계열, 장미, 진달래, 베고니아 등 화단 식물
계절에 따라 꽃 구성이 바뀌어 경관 변화가 뚜렷함
4. 조류 관찰 명소
스리랑카 고원 조류 관찰의 거점
관찰 가능 종: 노랑꼬리푸른까치(고유종), 딱새, 솔새류, 벌새류, 조류 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장소
5. 이용 포인트
평탄한 산책로로 가벼운 도보 관람에 적합, 벤치와 잔디 광장 다수
누와라엘리야의 서늘한 기후를 체감하기에 최적
6. 주변 관광지와 연계
누와라엘리야 시내 중심:
그레고리 호수, 누와라엘리야 우체국(영국식 건축), 골프 클럽, 시내 도보 동선에 포함 가능
7. 성격 요약
영국식 고원 공원, 조류·식물 관찰 명소, 관광 동선 중간 휴식 공간
정리하면, 빅토리아 공원은 누와라엘리야의 ‘작은 영국’ 이미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도심 녹지 공간입니다.』
메인도로에서 좁은 길을 따라 300m 남짓 들어가니 ‘ARALIYA RED NUWARA ELIYA 호텔’이 나타났다. 제법 괜찮아 보이는 호텔을 이런 곳에 지었네. 카운터 앞에는 번쩍번쩍 빛나는 황동 코끼리에 장군이 올라탄 공예품 등 몇 가지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호텔 오너의 취향이 유별나구나.
523호를 배정받아 올라갔다. 이 숙소도 깔끔하니 괜찮다. 이번 스리랑카 여행에서 숙소는 여태껏 다녔던 여행 중에서 단연 으뜸인 것 같다. 다행이네.
식당은 6층에 있어서 걸어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천정 인테리어가 색다르네. 직사각형 공간에서 길이 방향으로 창문쪽은 높이 2.5m, 중앙부분은 높이 5m의 천정을 ‘ㅅ’ 형식으로 설치해 놓은 것이 이채롭다. 음식은 어느 호텔이나 비슷하다. 적당히 챙겨 먹고 나왔다.
그럭저럭 여행도 막바지로 달리고 있다. 내일은 엘라로 가서 나인브리치를 구경하고 5시간 버스를 타고 벤토타로 간다. 버스 타는 시간이 길어서 8시에 출발한다고 한다. 일찍 자리에 들었다.
1월 24일 (토)
7시 50분까지 가방을 챙겨 로비로 내려오면 된다는 가이드의 말을 우리 팀원들은 너무 잘 지키는 것 같다. 조수는 로비 입구에 놓여진 가방을 반드시 주인의 확인을 거쳐 버스에 싣는다. 이렇게 하면 가방을 분실할 수가 없지.
엘라로 가는 길은 대부분 내리막길이다. 두 시간쯤 달려서 엘라에 도착했다. 엘라는 ‘Nine Arches Bridge’를 구경하기 위하여 잠시 들르는 조그만 산악 마을이다. Nine Arches Bridge는 기차가 다니는 철교인데 영국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하다가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철근 공급이 어려워져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때 철도국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스리랑카인이 나서서 공사를 이어가겠다고 했고, 인근 주민들과 힘을 합쳐 돌벽돌과 시멘트만을 이용해 다리를 완공하였다고 한다.
깊은 숲속 해발 1,000m에 이르는 계곡에 있기 때문에 20여 분 밀림 속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갔다. 건설한 지 100년이 넘은 다리는 타원형 곡선을 이루고 있었고 9개의 아치형 교각에는 세월의 검은 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 철근도 없이 시멘트와 벽돌로 저런 교량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교량을 보려고 이런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내려오다니... 기대에 조금 못 미친다. 그래도 내려왔으니까 사진도 찍고 터널을 건너기도 했다.
『나인 브리지는 통상 **나인 아치 브리지(Nine Arches Bridge)**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스리랑카 엘라(Ella)의 대표적 철도 교량입니다. 정확한 명칭과 핵심 정보를 정리합니다.
1. 정식 명칭과 위치
정식 명칭: 나인 아치 브리지(Nine Arches Bridge)
위치: 스리랑카 엘라(Ella) 인근, 엘라역–데모다라역 사이
별칭: 하늘의 다리(Bridge in the Sky)
2. 건설 배경과 역사
건설 시기: 1919~1921년경 영국 식민지 시대 철도 인프라의 일부
특징적인 설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철강이 부족해지자 철근 없이 석재와 벽돌만으로 건설되었다는 이야기로 유명
3. 구조적 특징
아치 수: 9개, 길이: 약 90m, 높이: 약 24m, 재료: 석재·벽돌·시멘트
울창한 숲과 계곡을 가로지르는 곡선형 교량
4. 관광 포인트
기차 통과 시점이 최고의 촬영 타이밍
아침 시간대: 안개가 걷히며 고원 풍경이 드러나 사진 품질 우수
접근 방법: 엘라 시내에서 도보 트레킹. 철길을 따라 접근(주의 필요)
5. 여행 동선에서의 의미
캔디–누와라엘리야–엘라 철도노선의 하이라이트, 자연경관과 식민지 시대 토목 기술의 결합
6. 명칭 관련 정리
‘나인브리치’ → 구어적·축약 표현, 공식·정확한 명칭은 나인 아치 브리지
정리하면, 나인 아치 브리지는
스리랑카 고원 철도 풍경을 상징하는 대표적 구조물이자, 엘라 여행의 핵심 명소입니다.』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오늘도 쌀국수를 준비하였고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있어서 나만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조금 쉬었다가 바로 버스에 올라 ‘벤토타’로 갔다. 벤토타 가는 길은 고속도로가 있어서 운행시간이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4시간이나 걸렸다.
벤토타 강으로 가서 ‘Backwater Trip’을 즐겼다. 강변에는 보트를 대여하는 곳이 여럿 있었다. 보트는 5인승부터 20인승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우리 팀원은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가이드가 지정하는 20인승 보트에 올랐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여러 가지 구경을 하였다. 수생식물들이 얽혀 숲을 이루고 있는데 그 사이로 보트가 지나갈 수 있는 물길이 있었다. 맹글로브 숲이라고 하는데 어류 산란지, 침식 방지 등의 역할을 한다. 양생 동물도 관찰할 수 있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사공의 예리한 눈으로 물도마뱀, 원숭이 등을 발견하면 보트를 세우고 보게 한다. 강가에도 부처님을 모신 곳이 있다. 이 나라는 불교가 거의 일상생활인 것 같다. 20분 정도 올라가니 강폭이 엄청나게 넓어져서 마치 바다처럼 보인다. 낙동강 하류도 폭이 넓지만 이렇게 넓지는 않은데... 30분 정도 올라갔다가 돌아왔다. 1시간을 꽉 채운 즐거운 뱃놀이였다.
『벤토타 백워터 트립(Bentota Backwater Trip)은 벤토타 강 하구와 맹그로브 수로를 따라 진행되는 대표적인 자연 체험 프로그램입니다. 해양 휴양과 대비되는 정적·생태 중심 체험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1. 개요
장소: 벤토타 강(Bentota River) 하구 및 내륙 수로,
형태: 소형 보트(모터보트 또는 전통 보트), 소요 시간: 보통 1~2시간
2. 주요 볼거리
① 맹그로브 숲
복잡하게 얽힌 수로, 열대 습지 생태계의 핵심, 침식 방지·어류 산란지 역할
② 야생동물 관찰
물도마뱀(모니터 리저드), 악어(비교적 소형, 관찰 위주), 수상 조류(왜가리, 물총새 등)
③ 현지 생활 풍경
강변 어촌 마을, 전통 어로 방식, 코코넛 가공 모습(코스에 따라 포함)
3. 체험 성격
속도감보다는 관찰·휴식 중심, 가족·중장년층에게 적합, 해변 액티비티 후 균형 잡힌 일정
4. 진행 방식
현지 가이드 동승, 정해진 루트 또는 협의에 따른 맞춤 루트, 일부 코스는 코코넛·시나몬 시연 포함
5. 최적 시간대
이른 아침 또는 늦은 오후, 기온이 낮고 동물 활동이 활발, 정오 시간대는 체감 더위로 만족도 하락
6. 유의사항
자외선 차단 필수, 모기 기피제 준비, 보트 가장자리 이동 시 안전 주의
악어 관찰 시 촬영만, 접근 금지
7. 여행 동선 내 위치
벤토타 리조트 투숙 중 반나절 일정, 해변 휴식 + 백워터 트립 조합이 일반적
정리하면, 벤토타 백워터 트립은
**“리조트 해변과는 전혀 다른, 스리랑카 열대 습지의 조용한 일상과 생태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입니다.』
‘PALMS BEACH RESORT 호텔’로 갔다. 바닷가에 지은 이 호텔도 정말 마음에 든다. 302호를 배정받아 가방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야외 수영장도 멋지고, 누워 쉴 수 있는 안마의자도 많았다. 신청하면 타월도 무료로 준다고 한다. 백사장에는 배구네트가 설치되어 있고 젊은 친구들이 배구를 즐기고 있었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 소리도 참 좋다. 이런 곳에서 하루쯤 푹 쉬었다가 가도 좋겠네.
식사하러 식당으로 갔다. 여기도 우리 팀의 좌석이 지정되어 있어서 혼선 없이 자리를 잡았다. 이것저것 접시에 담아 먹고 있는데 와인 2명이 테이블로 배송되었다. 우리 팀원 중에서 가장 연로하신 이 선생님이 쏜 것이라고 한다. 여행 출발하기 전에 건강 검진을 받고 담당 의사의 조언에 따라 술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검진 결과를 보니 우려했던 부분이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기쁜 마음에 한 잔 권하는 것이니까 사양하지 말라고 하신다. 나도 한 잔 가득 받아서 즐겁게 마셨다.
바닷가 야경도 너무 아름답다. 발코니 문을 조금 열어놓으면 파도 소리를 음미하면서 잠을 청할 수 있을 텐데 모기의 출현이 겁이 나서 문을 열지는 못했다.
1월 25일 (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세수와 화장을 하고 이미선과 같이 바닷가로 나갔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백사장을 걸었다. 눈에 보이는 백사장의 길이가 2km쯤 되나 보다.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니어도 1시간쯤 걸었으니까. 이 바닷가에는 어떻게 관리를 하는지 오물도 없다. 이렇게 멋진 바다는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오늘은 콜롬보로 이동하여 시내 구경을 하고 오후에는 공항으로 가야 한다. 그래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9시 반까지 로비로 나오라고 한다.
콜롬보로 가는 길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바람에 편안하게 올 수 있었다. 시내로 들어와서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가이드는 ‘포트지구’를 설명해 주었다. 부자 동네를 지날 때는 집도 어리어리하다. 외국공관들이 밀집한 거리를 지나면서 중국관과 미국관, 한국관 등을 설명해 주었는데 중국관이 가장 크게 잘 지었다.
『포트 지구(Fort Area, Colombo Fort)는 콜롬보의 역사적 기원과 현대 금융·행정 기능이 겹쳐 있는 핵심 지역입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합니다.
1. 위치와 개요
위치: 콜롬보 도심 서부 해안 인접, 갈레 페이스 그린의 북동쪽
스리랑카의 행정·금융 중심지
2. 명칭의 유래
‘Fort’는 실제 요새에서 유래, 16세기 포르투갈이 최초 요새 건설
이후 네덜란드, 영국이 순차적으로 확장·재편, 현재는 요새 구조는 소실, 지명만 잔존
3. 역사적 변천
포르투갈 시대: 해상 무역 거점, 네덜란드 시대: 상업·행정 중심
영국 시대: 근대적 도시·금융 지구로 재편, 독립 이후: 국가 핵심 업무 지구 유지
4. 주요 기능
중앙 정부 부처, 중앙은행, 상업은행 본점, 항만·세관 관련 기관, 철도·교통 허브
5. 주요 랜드마크
① 콜롬보 포트 기차역: 전국 철도망의 출발·도착점
② 중앙은행 건물: 스리랑카 금융 정책의 중심
③ 구 식민지 건축물: 고전적 영국식 석조 건물 다수, 법원, 구 정부청사 등
6. 인접 지역과의 관계
페타(Pettah): 전통 시장·상업 지구, 갈레 페이스 그린: 시민 휴식 공간
포트 시티(Port City Colombo): 현대적 인공 금융·주거 지구
7. 관광적 성격
관광지라기보다는 도시 구조 이해용 지역, 근대 스리랑카 행정·식민지 유산 관찰에 적합
8. 성격 요약
역사적 요새 지구의 후신, 현대 스리랑카의 행정·금융 심장부
식민지 유산과 현대 도시 기능의 중첩
정리하면, 포트 지구는
**“콜롬보가 항구 도시에서 근대 국가 수도로 발전한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핵심 공간”**입니다.』
시내에 있는 ‘강가라마야 사원’으로 갔다. 이 사원은 영국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사원이다. 모셔진 부처님들도 돌로 조각을 한 것이 아니라 만든 재료는 무엇인지 몰라도 예쁘게 색을 칠하여 반짝반짝 빛이 난다. 불당에는 크고 작은 부처님들을 사방에 엄청 많이 모셔놓아 정신이 없다. 이렇게 꾸밀 수도 있구나. 옆으로 돌아가니 계단식으로 배치된 수많은 불상을 볼 수 있었다. 한자리에 이렇게 많이 모신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 신도들이 많아서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도 잘 들리지 않았다.
『강가라마야 사원은 스리랑카 콜롬보 중심부 베이라 호수(Baira Lake) 인근에 위치한 대표적인 테라와다 불교 사원입니다. 종교적 기능과 함께 박물관·교육·문화 공간의 성격을 함께 지닌 복합 사원으로,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중요한 명소입니다.
1. 핵심 정보
위치: 콜롬보 2구, 베이라 호수 옆
창건: 19세기 말(1885년경)
종파: 테라와다 불교
2. 특징
* 건축 양식의 혼합
스리랑카 전통 양식에 태국·인도·중국 요소가 결합된 독특한 구조.
* 방대한 불교 유물 컬렉션
불상, 경전, 공양구, 왕실 기증품, 고대 동전·시계·장식품 등 다양한 유물을 전시.
* 세마 말라카(Seema Malaka)
베이라 호수 위에 떠있는 명상 공간. 태국 양식의 목조 구조로 사진 명소이자 의식 장소.
* 현대적 역할
승려 교육, 사회봉사, 문화행사 등 콜롬보 불교 커뮤니티의 중심 기능 수행.
3. 방문 팁
복장: 어깨·무릎 가리는 단정한 복장 필수
신발: 입구에서 벗고 입장
관람 포인트: 본당 → 박물관 구역 → 세마 말라카 순으로 이동 추천
마지막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다. 스케즐 상으로는 한식으로 되어 있었지만 한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중식으로 바꾸었단다. 현재 스리랑카에는 1000명 정도의 한국인이 있으며, 콜롬보에는 절반 정도 살고 있단다. 그 정도 수준으로는 한식당을 운영하지 쉽지 않겠구나. MOON RIVER CHINESE RESTAURANT로 갔다. 구석에 있는 큰방에 회전식 테이블이 있어서 우리 팀원 모두 자리를 잡았다.
나오는 요리는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무슨 국인지 몰라도 향이 없어서 밥을 말아 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먹성 좋은 아줌마들은 나물 한 그릇 비우고 더 달라고 한다. 잘 먹는 모습이 보기도 좋다.
시내로 나오니 바다가 보인다. 바닷가로 내려가니 바로 ‘갈레 페이스 그린’이다. 도심에 푸른 바다와 잔디가 있고 사람들이 여유롭게 걸어다니는 모습은 참 곱다. 수십 층 대형 빌딩도 있고 좌우 대칭인 쌍둥이 빌딩도 있다. 입면을 이상하게 디자인한 건물도 있는가 하면 박공지붕에 기와를 얹은 낮은 건물도 있다. 그러나 빌딩군은 그리 많지는 않다. 현대화 과정이 진행 중이라고 보면 되겠다.
『갈레 페이스 그린(Galle Face Green)은 콜롬보 도심 해안에 위치한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도시형 해변 공원으로, 일상·역사·현대 도시 문화가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핵심 사항을 정리합니다.
1. 위치와 개요
위치: 콜롬보 시내 서쪽 인도양 연안, 길이: 약 500m 이상의 해안 잔디 공원
바다와 도심(포트·콜롬보 시내)을 연결하는 공개 공간
2. 역사적 배경
영국 식민지 시기 조성
원래 목적: 군사 퍼레이드 및 사격 훈련, 총독 관저(현 대통령 관저) 앞 공지
이후 시민을 위한 해안 공원으로 기능 전환
3. 현재의 역할과 분위기
콜롬보 시민의 일상 휴식 공간, 주말·저녁 시간대에 가장 활기참
연인, 가족, 관광객, 조깅 인구가 혼재
4. 주요 풍경과 활동
① 인도양 일몰
콜롬보 최고의 선셋 명소, 붉은 하늘과 파도, 도시 실루엣이 대비
② 스트리트 푸드
노점 음식 밀집, 대표 메뉴: 코투 로티(Kottu Roti), 튀김 스낵, 신선한 코코넛 워터
③ 레저 활동
연날리기, 산책·조깅, 바닷바람 감상
5. 주변 주요 랜드마크
갈레 페이스 호텔(1864년 개관, 식민지 유산), 원 갈레 페이스 몰(One Galle Face Mall)
콜롬보 항만·금융 지구 인접
6. 여행 동선에서의 의미
긴 이동이나 유적 관람 후 가벼운 마무리 코스, 콜롬보의 전통과 현대를 동시에 체감 가능
7. 성격 요약
도심 속 해안 공원, 시민 생활 중심지, 역사·관광·현대 문화의 접점
정리하면, 갈레 페이스 그린은
**“콜롬보 시민의 삶이 가장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해안 공간이자, 스리랑카 수도의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스리랑카 마지막 방문지는 ‘켈라니아 사원’이다. 부처님이 스리랑카를 세 번 방문하셨는데 마지막으로 방문한 설법 장소로 전해지는 불교의 성지다. 사원 내부에 그려진 벽화들은 금빛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주로 부처님의 일대기나 경전을 만드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고 한다. 마당에 있는 보리수 나무 주위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릇에 물을 담아와서 경건한 마음으로 나무에 붓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
『켈라니아 사원(Kelaniya Raja Maha Vihara)은 스리랑카 불교에서 전통·신앙·국가 의례가 결합된 핵심 사원입니다. 요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합니다.
1. 위치와 개요
위치: 콜롬보 북동쪽 약 10km, 켈라니 강(Kelani River) 인근
정식 명칭: 켈라니야 라자 마하 비하라야, 콜롬보 인근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성지 중 하나
2. 종교적 중요성
스리랑카 불교 전승에 따르면 부처가 생전에 직접 방문한 3대 성지 중 하나
방문 목적:
나가족(Nāga) 왕들 간의 분쟁 중재, 이 전승으로 인해 매우 높은 신성성 부여
3. 역사적 배경
기원전 수세기 전부터 신앙의 중심지, 현재 사원 건물은 여러 차례 파괴와 재건을 거침
현존 주요 구조는 19~20세기 재건, 영국 식민지 시기에도 불교 신앙의 상징적 거점 유지
4. 건축과 예술적 특징
① 본당과 대형 불상
안정된 좌불상, 전통 싱할라 불교 건축 양식
② 벽화
스리랑카 근대 불교 미술의 대표작, 화가 솔리야스 멘디스(Solias Mendis) 작품
내용:
부처의 생애, 스리랑카 불교 전래사, 자타카 이야기
5. 켈라니아 페라헤라
개최 시기: 매년 1~2월경, 콜롬보 지역 최대 불교 행렬, 코끼리 행렬, 전통 무용, 북 연주
캔디 페라헤라에 비견되는 국가적 행사
6. 문화·국가적 위상
종교 공간이자 국가 의례의 상징, 정치·사회적 주요 행사와 연계
콜롬보 시민 불교 신앙의 중심
7. 요약
부처의 방문 전승이 있는 성지, 근대 스리랑카 불교 미술의 보고, 수도권 최대 불교 사원
정리하면, 켈라니아 사원은
**“부처의 현존 전승, 불교 미술, 현대 국가 의례가 한 공간에 결합된 콜롬보권 불교의 중심 사원”**입니다.
모든 일정을 무사히 끝내고 공항으로 갔다. 항공권을 받아보니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도 UL470기로 올 때와 비슷한 오래된 기종이다. 스리랑카 현지인들이 많아서 빈 좌석은 없어 보인다. 35C와 35E 좌석을 받았는데 비행기에 올라서 좌석을 바꾸어야 했다. 부부라고 분명히 얘기했는데 좌석을 왜 이렇게 배정했는지 모르겠네.
인천공항까지 7시간 반쯤 걸렸을까. 모니터 화면이 부실하여 영화 한 편도 보는 둥 마는 둥,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6시 50분에 도착하여 화물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7시 10분이다. 마산 가는 공항버스가 7시 20분에 있어서 많이 기다리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극강의 한파가 몰아치는 동안 우리는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불교 유적 순례를 즐겁게 하고 왔다. 평소 스리랑카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보니 지명도 낯설고 유적지에 대한 지식도 없었지만 날씨가 좋았고 숙소도 마음에 들어서 멋진 여행이었다. 스리랑카는 여름에도 기온이 우려할 만큼 많이 올라가지 않아서 여행에 큰 지장은 없다고 한다. 여행사에서도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여 사철 여행이 가능한 국가로 인식이 된다면 스리랑카의 어려운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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